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 중이다. '본인 동의'라는 전제가 붙지만 사실상의 기간제한 연장이다.
정부가 이런 법 개정 추진의 정당성으로 내세운 논리는 "당사자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29일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도 정부는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내놓았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가 수상하다. 정부가 누구에게 의뢰한 것인지, 설문 문항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공개된 3개 문항 결과 외에 총 몇 가지 문항의 설문을 실시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안 밝히는 것이 아니라 못 밝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베일에 쌓인 노동부의 설문조사…결과 해석도 '입맛대로'
29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여러 설문조사가 등장한다. 그런데 유독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과 관련된 설문조사만 그 구체적 내용이 베일에 쌓여 있다.
"12월 학계 전문가에게 의뢰해, 기간제 재직자 469명과 기간제 경험 구직자 712명(총 118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는 내용 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다. 설문을 의뢰한 '학계 전문가' 명단은 물론이고, 조사 대상 선정 방식이 무엇인지, 질문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몇 가지 조항에 대한 설문이 이뤄졌는지 등은 모두 밝히지 않았다.
공개된 설문 문항은 모두 3가지다. 그것도 결과만 나와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질문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질문지의 문항을 보지 않고 결과에 대한 해석을 정확하기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부가 밝힌 결과만 놓고 보면, 응답자의 65.4%가 "기간제한으로 인해 계속 근로가 어려웠거나 향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은 34.4%였다. 즉, 기간제한 때문에 오히려 오래 일하기가 힘들다는 하소연이 많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한 사업장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0%가 "기간제한은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5년이 14.8%로 두 번째로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3년(12.2%), 2년(11.8%), 4년(4.3%), 1년(3.8%)의 순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기간제한은 필요 없다"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 이 결과만 보더라도 현행 2년의 기간제한에 당사자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기간제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오민규 정책위원은 "만일 질문을 바꿔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전 근속의 최소 기간이 얼마였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하루'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지 않겠냐"며 "혹세무민이라는 말은 이럴 때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비공개 설문'을 해 놓고, 결과만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노동부는 뒤늦게 설문조사 관련 구체적 내용의 공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정위원회 논의도 예정돼 있고, 노사정 공동 실태조사도 예정돼 있는만큼, 설문 보고서를 전부 공개하면 이후 논의에 압박이 될 수 있어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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