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점점 많은 '탈핵' 도서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시민 단체와 연구소, 병원, 정당, 학교 곳곳에서 탈핵을 위해 분투해 온 21명 저자들의 글을 모으고 다듬어 펴낸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오마이북, 2014년 11월 펴냄)은 올해 나온 탈핵 도서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무엇보다 핵발전과 방사능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널리 그리고 잘 알리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두 개의 큰 대상은 '핵발전 신화'와 '방사능 괴담'이다. 이것들은 한국의 역대 정부 그리고 현 정부와 핵산업계에서 활용해 온 공격과 방어의 단골 무기다. 핵발전이 이렇게 좋고 필요한 것인데 평범한 사람들은 잘 모르니 이른바 핵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두라는 것이었고, 방사능이 위험하다고들 얘기하는데 이는 다 사람들이 잘못 알아서 그런 것이니 핵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안심하라는 것이었다. 이 알고 모르는 것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시민들의 선택지는 신화와 괴담 사이에 갇혀버리고 말 것이다.
이 책에서 큰 묶음을 지어 던지고 있는, 예를 들어 후쿠시마의 사람들은 괜찮을까,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안전할까, 핵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또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까, 그리고 핵에너지의 대안이 정말 가능할까 등의 질문들은 각각 매우 절실한 내용들이지만 어느 하나도 일정한 지식 없이는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핵발전과 방사능에 대한 지식의 양이 어떤 임계치를 넘어 쌓인다면 그때부터 비판과 논쟁, 그리고 대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은 비교적 손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탈핵 시민' 또는 비판적 '에너지 시민'은 고상하고 정교한 교육 한 번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작은 지식들이 쌓인 결과로 형성될 수 있다고 할 때, 이 책은 바로 그런 목적으로 쓰인 탈핵 종합 참고서다.
탈핵을 앞당길 매력적인 종합 참고서
다음으로, 핵발전과 방사능에 대한 각론적 지식들은 끝없이 넓고 깊다는 것을 알려준다. 방사능 오염 시 세슘 치료제로 쓰이는 프러시안 블루는 한국의 지자체와 핵발전소, 진료 센터 등에 총 278병이 비치되어 있는데 주요 대학병원에는 두 병씩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한국이 핵발전 사고 시 방호 대책이 충분히 세워져 있는지 따져 묻기 어려울 것이다. 또, 먼저 탈핵의 길로 들어선 독일의 재생에너지 잠재량과 전기 요금 제도를 알지 못한다면 한국의 빈약한 재생에너지 지원 제도와 핵발전에 대한 일방적 지원 실태를 따져 묻기 어려울 것이다. 이토록 알아야 할 것들이 끝이 없어 보이지만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소위 원자력 전문가들도 자신의 좁은 전공 영역 말고는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며, 이 책부터 공부를 시작하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좋은 정보를 멋지게 가공하면 훨씬 잘 전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이지 곳곳에 삽입된 '인포그래픽'은 어지간한 일간지와 주간지의 그래픽 이상의 수준이어서 우리의 눈높이를 높여준다. 정보공개센터에서 펴내어 이 책의 준비판 역할이 된 <누크노크 똑똑똑>에서부터 활용되었던 인포그래픽이 더욱 다채로워진 것이다. 핵폐기물 처리가 얼마나 어렵고 고려할 요소들이 많은 과정인지, 방사능이 어떻게 인체 장기에 해를 입히는지 등등, 어떤 그래픽들은 끔찍하고 무서운 원리를 너무도 예쁜 캐릭터로 쏙쏙 이해되도록 전달한다. 아울러, 각 장의 끝마다 주제와 관련된 영상물과 읽을 만한 책들, 기사들의 목록을 정리해 실은 것, 탈핵용어사전을 색인을 겸하여 부록으로 실은 것도 미덕이다.
이 책을 눈 가고 손 가는 아무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하여 일별하고 나면, 더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기도 하거나와 핵발전이 이렇게 복잡하고 누구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는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더욱 뚜렷해질 것 같다. 이 책이 중·고등학교 교실마다 비치되면 정말 좋겠다. 자신이 읽고 난 후 사무실마다, 미용실마다, 그리고 휴게실과 동아리방마다 한 권씩 흘려두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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