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거짓 해명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결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까지 "할 말 없게" 만든 청와대 일부 참모들에 대한 인책론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아랫사람에게 워낙 '믿고 맡기는' 스타일인데다가 언론과 정치권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당사자를 두둔하는 경향도 강하지만 이번엔 문제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특히 청와대 감찰부서인 민정수석실은 시스템 면에서나, 인적구성 면에서 전면적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한 사람은 없다"면서도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여러 생각이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특히 전해철 민정수석은 사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휘하 비서관을 수석으로 승진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선이 한참인 정치권에서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불러들이는 것도 마땅찮아 보여 후속 인사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대통령이 친 가이드 라인
이 같은 인책론은 검찰 수사를 통해 '변양균 스캔들'이 직권남용형 게이트로 발전하느냐 여부와도 별개다.
'게이트'로 비화될 경우 청와대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이전에 '변양균의 입'에만 휘둘렸을 뿐 내부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민정수석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물론 변 전 실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웠던 데다가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깜도 안 되는 의혹", "소설 같은 보도"라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쳤던 터라 민정수석실인들 별도리가 없었다는 동정론도 청와대 안에선 적지 않은 편이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변 전 실장이 장윤 스님과 만났던 관계라든지, 특히 신정아씨 문제 등은 개인적 관계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해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민정수석실은 변 전 실장과 장윤스님의 현지 통화 의혹에 대해서는 통화 내역 조사를 통해 규명하려 시도했었다.
하지만 조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동안 변 전 실장을 옹호하는 노 대통령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다.
도덕적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정시스템 미비
여러 배경과 정황으로 볼 때 민정수석실 등이 혼자 책임을 뒤집어 쓸 문제는 아니지만 변 전 실장의 거짓해명에 20여 일 동안 청와대가 온통 휘둘린데 대한 변명으론 부족해 보인다.
천 대변인은 "민정수석실의 권한의 한계가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의 강제력이 없고 예외적 사건을 제외하곤 민간인 조사도 못한다, 특별한 문제가 발견하기 전에는 통화내역도 조사 못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사정 권력을 놓았다'고 자부하는 현 정권 하에선 어쩔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권력핵심부 개개인을 마냥 신뢰할 뿐이지 실제로 사건이 터지기 전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는 고백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사안은 노 대통령과 측근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유의 도덕적 자신감, '제 식구 감싸기 경향'으로 인한 자정시스템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결국 참모들에 대한 인책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10월 초 개편이냐, 조기 개편이냐
비서실 개편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당장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날 천 대변인은 "(인사 문제는) 진실의 윤곽이 드러난 이후에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면서 "검찰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었을 때 최종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다 끝난 다음에 참모들에 대한 인책이 고려된단 말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천 대변인은 "수사가 다 끝난 후가 아니라 큰 틀의 윤곽이 잡힌 후 그 이전에 있었던 일의 경중도 좌우되고 그런 것을 다 포함해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
또 전날 한나라당이 비서실장, 민정수석, 대변인 사퇴를 주장한 마당에 당장 교체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결국 추석과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10월 초가 비서실 개편 시기로 점쳐지고 있다. 어차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참모들을 고려하면 임기 종료 시, 나아가 퇴임 후 까지 노 대통령을 보좌할 진용을 꾸려야 하고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참모들도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다만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수준까지 변양균-신정아 파문이 확산될 경우엔 조기 개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 2005년 1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의 역대 최단시간 낙마 후 김우식 당시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추천위 멤버 6명은 일괄사표를 제출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 가운데 박정규 당시 민정수석,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의 사표만 수리하고 김우식 전 실장, 김병준 당시 정책실장, 이병완 당시 홍보수석, 문재인 당시 시민사회수석의 사표는 반려했었다.
이번에도 이같은 수순이 원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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