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 직접 내려와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오전 11시13분부터 약 43분간 진행된 간담회는 예정에 없던 것으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불과 30여 분 전에 예고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신정아 씨와 연루된) 변양균 전 정책실장 문제에 관해선 참 할말이 없게 됐다"며 자괴감을 표했다. 노 대통령은 정윤재 전 의전수석과 관련해서도 "검찰수사결과 심각한 불법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측근 비리라고 이름을 붙여도 제가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측근들 문제에 관해선 이처럼 '맥빠진 모습'을 보였지만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결기와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후보를 겨냥해 "손학규 씨가 요새 하는 것을 보니까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신당도 '이른바 범여권'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명박 후보 고소 건과 관련해) 이상한 논평을 내놓았던데 자신들의 대선승리를 위해 남의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원칙없는 기회주의자들의 싸움에 저는 별 관심이 없다"고 단언했다. 범여권과 계속 대립각을 세워가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향해선 "참여정부의 핵심가치를 아무 근거도 없이 공격했다"면서 "근거가 없으면 불법적 선거운동이니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한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와 관련해 나는 한 번도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했다.
"측근비리라고 이름 붙여도 부인하지 않겠다"
춘추관 2층에 마련된 공식브리핑룸이 아닌 1층 자료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노 대통령은 "시끄럽고 민감한 일들이 많으니까 (기자) 여러분들이 궁금한 일이 많을 것"이라며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제가 직접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해서 나왔다"고 입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대체로 그동안 민감했던 문제라고 한다면 취재제도개선에 관한 문제가 하나 있었고 그다음에 청와대에서 이명박 후보를 고소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나라당도 논평했지만 다른 여러 당도 각기 논평을 내놓았고 흔히 범여권이라고 말하는 통합신당도 입장을 내놓았다"면서도 "그 점에 대해서 저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변양균 실장 문제가 제일 큰 이슈가 돼버려 여러분의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지적했지만 어제 청와대 발표내용과 사전에 파악한 내용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정윤재 전 비서관 문제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노 대통령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먼저 노 대통령은 "정윤재 전 비서관은 1987년 이전부터 내가 잘 아는 사람이고 내가 1988년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 연설기법에 관해 도와준 인연에서부터 시작해 아주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고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의 측근임을 인정했다.
노 대통령은 '그 사람이 주선한 자리에서 뇌물이 건네졌고 고위공무원이 구속됐으니까 그 점에 관해 부적절한 행위였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그 정도로 책임이 끝나는 일인지 그 밖에 숨겨진 일이 뭐가 있는지는 저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심각한 불법행위가) '있을거다 없을거다'는 짐작은 제 가슴 속에만 가지고 있지 표명할 수 없다"면서 "이것은 검찰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검찰수사 결과 그에게 심각한 불법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측근비리라고 여러분들이 이름을 붙여도 제가 변명하지 않겠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말을 아낀 것은 '깜도 안되는 의혹, 소설 같은 보도'라는 직설적 옹호에서 상당히 후퇴한 모습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점에 관해선 저와 그 사람과 관계로 봐서 제가 사과라도 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 사실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고 수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제 입장을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믿음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노 대통령은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 관련해 "제가 참 난감하게 되었다. 제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참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렇게 말씀드려야 겠다"고 말했다.
그는 "믿음을 무겁게 가졌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변 전 실장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대체로 저는 제 판단에 대해서 비교적 좀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처신해왔던 편이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그 문제에 대해서 제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무너진 것"이라며 "그래서 무척 당황스럽고 힘들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자신이 받은 충격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지금도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 어떤 방향으로 말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역시 좀 어렵다"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것도 검찰수사를 기다려서 결과가 확정되는 데로 정리를 해서 국민들께 제 입장을 말씀드리려 한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전날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 '가까운 사이'라는 보고를 듣고 격노하며 사표를 수리했었다.
그 이전에 노 대통령은 변 전 실장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자 "깜도 안되는 의혹"이라고 그를 옹호하면서 "(언론 보도에 대해)소설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나와 언론의 갈등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며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었다.
"권력누수? 공직사회는 잘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측근 문제에 관해서 이처럼 여러 지적을 인정하는 모습이었지만 '임기말 레임덕이다'는 지적은 강하게 부인했다.
노 대통령은 "(현 상황이) '권력누수다 아니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 문제"라며 "아무것이나 권력누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권력누수라는 용어가 대단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권력은 법치권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정통성 있는 현 정부에선 권력누수, 레임덕이라는 개념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주장인 셈.
노 대통령은 "그 동안 권력누수에 대해 주로 이야기되던 것은 (여)당에 대한 통제력, 국회에 대한 통제력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와 일반사회에 대한 통제력 이런 것고 또 공직사회 특히 공권력적 조직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 권력누수의 개념으로 논의된 것 같다"면서도 "(변양균, 정윤재 등의) 사고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권력누수라고 보는데 대해선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지금도 공직사회는 법에 따라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변 전 실장과 관련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전해철 민정수석을 비롯해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배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