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언론 특권의 해소는 이 시기에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언론이 지니고 있는 특권적 지위와 유착의 문화를 해결하는 것은 참여정부와 언론의 숙명적 대결"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달 31일 PD연합회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언론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이른바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의 정당성을 옹호한 바 있는 노 대통령은 3일 '제 44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 참석해 예의 지론을 반복했다.
노 대통령은 '갈등과 대립', '지역주의 해소' 과제 해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하면서도 이른바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을 비롯한 '언론개혁'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결기를 드러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비호 의혹을 받고 있는 변양균 정책실장, 건설업자와 국세청 고위간부 간 부적절한 만남을 주선한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소설 같다. 이런 느낌을 받는 부분도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저와 언론의 갈등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앞으로 (언론과) 대화하려 한다"고 말을 맸었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사의 보도, 편집국장과 책임있는 대화를 나누자는 제의"라고 설명했다.
"신정아와 정윤재 의혹 보도, 소설 같은 느낌"
지난 달 31일 PD연합회 행사에서 "나를 편들어 주던 진보언론들도 일색으로 저를 조진다"며 전 언론과 대립각을 형성했던 노 대통령은 이날도 "참여정부와 언론간의 숙명적 대결" 등의 어구를 사용해 현 정부의 대언론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PD연합회 행사에선 격정적 어조로 15분 간의 축사예정시간을 40여 분 정도 넘긴 노 대통령이지만 이날 축사는 23분 정도에 그쳤다. 어조도 지난 번 보다는 한 단계 낮아진 듯한 느낌.
노 대통령은 먼저 "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몇 가지 견해를 말씀드리겠다"며 언론 일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날 많은 의혹제기가 있었고 이는 언론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중 대부분이 혐의가 없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일부는 의혹을 제기할 만한,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유전 게이트', '행담도 사건' 등을 "의심할 만한 기본적 사실이 있었던 사건"으로 꼽은 노 대통령은 "그 뒤에 '바다 이야기', 노지원 게이트(노 대통령의 조카)는 기본적 사실이 부실한 가운데 제기된 의혹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요즘 신정아 씨, 정윤재 씨, (저의) 처남 권기문까지 떠오르는데 이만큼 언론을 장식할 정도로 기본적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가…소설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31일 행사에서도 "깜도 안 되는 의혹이 많이 춤을 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대통령 눈치 안보고 검찰이 알아서 수사를 잘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같은 공개적 예단에 대해 '부적절 하다'는 지적은 적지 않다.
"갈등과 대립, 지역주의 해소 실패했지만 언론 특권 해소는 역사적 과제"
노 대통령은 언론과 자신의 대립각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저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는 사람이 '제발하고 대선 국면에서라도 대통령이 언론과 맞서고 갈등을 안 일으켰으면 좋겠다'라고 충고하는 분들이 있다. 솔직히 너무 괴롭다.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저는 물러서지 못하고 있다. 역사발전의 숙명적 과정에서 저와 언론이 이 시점에서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까지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갈등과 대립, 지역주의 해소도 실패로 역부족이었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지만 특권과 유착의 구조를 해소하는 과제는 말끔히 정리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하면서 "언론도 특권을 가지고 있어 이를 해소하는 것이 이 시기의 피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자유 확보는 감히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싶다"면서 "시장권력으로부터 자유, 언론사주로부터 기자의 자유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가 우리 앞에 놓여진 숙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한 호주 언론재벌 머독을 언급하며 "언론재벌이 지배하는 세계적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사주와 자본으로부터 기자의 자유가 주된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권력은 선출된 정통성에 근거를 가지고 소신껏 일하고 5년 뒤에 심판을 받지만 언론이 정통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누구로부터 심판을 받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단 향한 대화제의 잘 될까?
노 대통령은 '취재지원선진화방안'에 대해 "합의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인식을 공유하기 어려우면 양심과 사실,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해결하자"면서 "언론이 사유재산이 아니고 사회적 공기라면 공정한 기회를 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주장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 들어가면 수십 편의 주옥같은 글이 있는데 왜 언론에는 나오지 않는가 이 자리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실 문제나 (부처)사무실 무단 출입 문제는 쟁점이 아닌 것 같다"면서 "공무원 접촉 문제는 구체적 요구가 있으면 대화하고 합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정정당당하게 토론하자. 지난 번에는 (언론이) 토론을 거부하지 않았냐"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역시 "이날 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대화 제의"라면서 "일선 기자가 아닌 책임있는 보도편집국장들에 대한 대화제의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들이 이같은 대화 제의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변화'를 거부하는 주류 언론의 보수성 외에 기자실 폐쇄에 대한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노 대통령과 대화를 통한 실익이 있겠냐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이날 "토론에서 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고 잘못된 것이라면 그 때는 한 발 더 물러서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스스로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은 굳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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