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에는 1인 시위하던 모습이 담겼다. 서울시 버스중앙차로 승차대를 함께 청소하던 동료 김영일 씨가 직접 고른 사진이었다. 동료의 장례식을 앞두고 김영일 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상복을 입을 자격도 없어서 못 입고 있습니다. 제가 챙기지 못해서 형님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서울시도 탓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동료를 내가 챙기지 못했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 뿐입니다."
김 씨가 먼저 보낸 동료는 최연식(47) 씨다. 최 씨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고시원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최 씨는 연탄불을 피우면서 연기가 옆 방으로 가지 않도록 테이프로 방 안을 '밀봉'한 채 목숨을 끊었다. (☞관련 기사 보기 : 서울 버스중앙차로 청소 노동자, 숨진 채 발견)
최 씨의 죽음을 알아낸 것은 동료들이었다. 몸이 아프다던 최 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최 씨가 머물던 고시원을 찾아간 것이었다.
살아있던 최 씨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도 김영일 씨였다. 김 씨는 "서울시청 앞에서 마지막으로 봤다"고 말했다. 김 씨가 고른 영정 사진 속에서 최연식 씨가 들고 있던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시 하청에 재하청, 우리는 서울시 노예가 아닙니다."
"서울 중앙차로 승강장, 최악의 불법파견 피해자입니다."
"서울시에 '2차 하청' 신분만 벗어나게 해달라 요구했지만…"
이들은 서울시에서 필요로 하던 일을 해 왔지만, 하청에 재하청, 2중 하청 구조의 밑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런 구조 탓에, 이들의 요구는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서울시는 업체와 해결하라 했고, 업체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동조건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전원이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프레시안> 보도로 이들의 이런 현실이 알려진 후, 이들은 다시 예전처럼 일할 수 있게 됐지만 2중 하청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관련 기사 보기 : "버스 승차대 지붕 청소, '안전' 요구하니 '해고'")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시의회가 나선 중재 과정에서 "서울시에 직접 고용만 될 수 있다면, 모든 처우를 서울시 교통운영과에 위임하고 초단기 계약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이 "서울시가 문제 해결을 등한시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서울일반노조 관계자는 "나중에는 '직접 고용'이 아니어도 좋으니 2차 하청 신분만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역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고된지 보름이 넘어 다시 일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신분은 2차 하청업체 소속이었던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가 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게 해결을 요구한 청소 노동자에게 절망을 안겨준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한 까닭이다.
이화민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이 한 번이라도 찾아오거나, 아니면 저 위에서라도 미안하다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같은 청소 노동자 출신이었던 홍희덕 전 의원은 "국회 그만두고 외부 활동에 잘 안 다녔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의정부에서부터 왔다"며 "박근혜 정부야 노동자의 처지에 관심 갖기를 기대할 수도 없지만, 인권 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이 이들의 요구를 매정하게 안 들어준 것은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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