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출근해 보니, 사무실 여기저기에 귤이 보였다. 어느 조합원이 보낸 제주 유기농 귤이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귤을 까먹으며 '이 주의 조합원으로 누구를 하지?' 생각하다가 당첨된 조합원. 바로 귤을 보낸 정신영숙 조합원이다.
"아 진짜요? 완전 영광이네요."
수화기 너머로 청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영숙 조합원은 고등학교 한문 교사다. 지난 7월부터 <프레시안> 독자 참여형 코너인 '조합원, 다큐에 빠지다' 구성원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레시안 조합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독자와 기자가 함께 다큐멘터리 감독을 인터뷰하는 코너인데,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터라 참여하게 됐다.
정신영숙 조합원은 '다큐 모임'에 푹 빠져 있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둔 조합원들이 모여서 그런지 첫 모임부터가 "따뜻했다"고 기억했다. 평소 흠모하던 '다큐의 거장'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독자 조합원들이 직접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질문지를 짜기에 "모임이 있는 날이 기대되고, 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특히 다큐 감독 인터뷰 내용을 기사로 정리하는 이명선 기자를 칭찬했다.
"인터뷰 명단에 계신 분들이 다큐 쪽 거장들이었어요. 정말 좋았어요. 올해 이명선 기자를 만난 게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사실 '조합원 다큐에 빠지다' 코너는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 모임 '신나는 다큐 모임'과 '인디스페이스'가 기획한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행사에 <프레시안>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명선 기자가 전해왔다.)
정신영숙 조합원은 '다큐 모임' 인연으로 인맥이 넓어졌다고 좋아했다. 정신 조합원은 교사 연수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프레시안 인맥으로 강연을 꾸려서 동료 교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손문상 프레시안 화백도 강연자 중 하나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십시일반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창비, 2003)의 공동 저자인 손 화백은 '청소년 인권 교육'을 주제로 강연했다.
"다큐 모임을 하면서 이명선 기자가 다리를 놔주면서 갑자기 제 인맥이 넓어진 거예요. 손문상 화백이 직접 오셨고, 선생님들 반응들이 좋았어요. '일반적인 교사 연수와 다른 독특하고 즐거운 연수였다'고요. 덕분에 제가 (교사 모임 사이에서) 엄청 인기 기획자가 됐어요. 대단한 사람들을 안다고 다들 부러워하더라고요. 다 프레시안 덕분이에요. (웃음)"
정신 조합원은 "태준식 감독 강연도 준비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성사가 안 돼 아쉬웠다"며 "지난 10월 프레시안 일일호프 행사 때 최규석 작가 친필 사인 작품을 경매로 샀는데, 다음엔 최규석 작가를 교사 연수에 섭외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정신 조합원은 의정부 고등학교에서 일한다. 이명선 기자로부터 의정부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독특한 졸업사진을 남기기로 유명하다는 귀띔을 받았다. 졸업사진 얘기를 꺼냈더니 "엄청나죠?"라며 '깨알 같은' 제자 자랑이 이어졌다.
반대로 학교 교사로서 힘든 점을 물으니 이번엔 한숨부터 나온다. 입시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학생들이 너무 바빠졌다고 했다. 요즘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제와 수시 때문에 대학생처럼 '스펙'도 쌓아야 하면서, 동시에 '수능 점수'도 관리해야 한다. 대학이 요구하는 '스펙'이 정형화되다 보니, 특정 대학이 요구하는 특정 봉사활동, 어학연수 등을 맞춤형으로 준비한다고 했다.
"소소한 것일 수 있는데, 제가 담임할 때 아이들한테 학교 뒤뜰에서 1박 2일 동안 야영하자고 제안했어요. '모의고사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 없어요'라고 할 때, 그럴 때 아쉬워요. 애들이랑 놀면서 재밌게 공부하고 싶은데.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가 바뀌어서, 공교육 안에서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구년이라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지만, 정신영숙 조합원은 요즘 연구 보고서를 쓰느라 바쁘다. 바빠서 빠져야 할 때도 있지만, 그녀는 앞으로도 '다큐 모임'처럼 좋은 조합원 모임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냥 전화를 끊기 아쉬워, 마지막으로 귤의 출처에 대해 물었다. 알고 보니 귤은 강정 귤이었다. 판매 수익은 강정 마을에 매겨진 벌금을 충당하는 데 쓰인단다. 강정 마을 주민이 바빠서 귤에 약을 못 쳤는데,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유기농 귤이 됐다고 한다.
"맛있게 드시고, 괜찮으시면 주문하시라고. (웃음) 강정마을 주민 중에 아는 분이 귤 농사를 지었는데, 바쁘고 게을러서 약을 못 쳤대요. 못생겨지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유기농 귤이 됐어요. 강정마을이 벌금 문제 때문에 심각해졌더라고요. 벌금 때문에 마을 회관을 팔아야 하지 않느냐, 그런 얘기도 했대요. 벌금 모금 차원에서 많이 사 주시고, 맛있게 먹는 귤이 강정마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겠죠. (웃음)"
짧고 아쉬운 수다가 끝나고, 정신 조합원이 보내준 귤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유기농 귤이어서인지 모양은 투박했지만, 맛만은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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