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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 고비 넘으니…금융권, 이제 '찍퇴' 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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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 고비 넘으니…금융권, 이제 '찍퇴' 칼바람

찍어서 "너 나가" 편법 정리해고…"근로기준법 위반"

금융권에 불었던 '명퇴(명예 퇴직)' 바람이 잦아드니, 이번엔 '찍퇴' 칼바람이 매섭다. 찍퇴란 회사가 대상자를 이른바 '찍어서' 퇴직시키는, 사실상 강제 퇴직이다. 보통 '희망 퇴직'이라는 외피를 쓴다. 명예 퇴직자 목표치에 미달한 금융사들이 이를 거부한 직원에게 면담을 통한 압박, 무연고지 인사 발령, 부진자 교육 등으로 퇴직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의 '명퇴' 바람이 잦아들자, 이제 '찍퇴(찍어서 퇴직)' 칼바람이 매섭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이 '희망 퇴직'의 외피를 쓰고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연합뉴스
금융권에 한창 인력 감축 바람이 불던 지난 7월, ING생명에서 임신 6주차였던 한 여직원이 3번째 퇴직 권고 면담 뒤 쓰러졌다. 육아휴직 중이거나 임신한 직원에 대한 희망 퇴직 강요가 집중되던 시기였다.

한 남성 직원도 사측으로부터 8차례 가까이 퇴직을 종용 받다 스트레스로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 해고된 케이블 수리 기사들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씨앤앰(C&M)의 대주주이자 외국계 사모펀드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한 뒤 6개월 만에 구조조정을 단행하다 벌어진 일들이었다.

희망 퇴직을 신청하는 사람이 적을 경우 황당한 '퇴직 마케팅'을 쓰는 금융사도 있었다. 퇴직을 빨리 신청하는 직원에게 수백만 원 상당의 여행 상품권이나 위로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후배를 위해 나가 달라"는 '읍소'부터, "안 나가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눈치 주기'는 기본으로 깔린다.

"희망 퇴직 가장한 '찍퇴', 편법 정리해고"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13개 금융사에서 5000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고용 동향'을 봐도 지난해 10월 86만1000명에 달했던 금융 및 보험업 취업자 수가 올해 10월 81만7000명으로 줄었다. 1년새 4만4000명의 일자리가 금융권에서 사라진 셈이다. 금융사들이 올해 신규 채용을 줄인 면도 있지만, 구조조정이 이 같은 대규모 '일자리 증발'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금융맨들의 최대 '고난의 시절'이란 얘기가 나온다. 한 생명보험사 직원은 "농담처럼 '하림 좋은 일만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자영업도 줄줄이 망해가는 마당에 치킨집 차려 나간다는 것도 옛말"이라고 토로했다.


감원 바람이 상반기에 끝난 것도 아니다. 지난달 26일 한화생명은 올해 말까지 한 달 동안 7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생명은 지난 5월 이미 300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해, 올해 잘려나간 인원 수만 1000명에 달한다.
문제는 회사가 퇴직자를 미리 선정해 이른바 '찍어서 퇴직시키는' 이런 관행이 사실상 정리해고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희망 퇴직'이라는 외피를 쓰고 법망을 피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 시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도록 되어 있다. 또 해고 회피 방법이나 해고의 기준 등에 대해 노조(혹은 근로자 대표) 측에 '50일 전에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하지만 찍퇴는 이런 절차조차도 완전히 무시한 '편법 정리해고'인 셈이다.

'미래 경영상 위기' 이유로 구조조정"금융감독원 '경영실태평가' 자료 공개해야"

금융사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명시된대로 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생명보험사들을 대부분 당기순이익에 흑자를 냈다. 전년보다 흑자 폭이 감소했다는 이유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물론 보험사의 특성으로 볼 때 경영 상황을 단순하게 당기순이익 등의 지표로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정적인 이익 특성을 나타내는 제조업이나 기타 산업과 달리, 보험업계의 경우 상품의 산정 단계에서부터 예정 이율, 예정 사망률, 예정 사업비율 등 비확정적인 요소가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생명보험사의 경영 상황은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평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업감독규정 제64조에 따라 보험사업자의 경영 건전성 여부 등을 감독하기 위해 매년 경영실태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1일 "생명보험사의 경영 상황은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시장 혼란'을 이유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명보험사들이 단순한 계량 지표에 의해 경영 위기를 과장해서 희망 퇴직을 빙자한 사실상의 정리해고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2005년 흥국생명의 정리해고가 '미래 경영 위기를 과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흥국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단 한 번의 적자없이 매년 흑자를 낸 우량 금융기관으로 꼽혔지만, 2005년 '미래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각 지점 정규직을 상당수 해고했다. 2004년 당기순이익(263억 원)이 2003년 당기순이익(533억 원)보다 감소해 미래의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것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흥국생명 경영실태평가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04년도 흥국생명은 2년마다 실시해 2004년엔 아예 평가 대상이 아니었던 '경영관리능력' 부문을 제외하면 전년도 대비 모든 등급이 상승했고 '종합평가등급'은 2003년 3등급에서 2004년 1등급으로 오히려 상승했다.

특히 흥국생명은 해고된 일부 직원들을 근로계약서도 없는 아르바이트로 다시 채용, 원래는 정규직이었던 직원들을 9년 동안 이른바 '알바'로 전락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기준 의원은 "생명보험사들의 '찍퇴'는 사실상 정리해고로, 이는 과거 흥국생명이 당기순이익 등 일반적인 경영 지표만을 악용해 정리해고를 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면서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라도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평가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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