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고(故) 신해철 씨가 S병원에서 장 유착으로 복강경 수술을 받았을 때는 지난 10월 17일이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10월 27일 신 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11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고 신해철 씨의 법률 대리인인 서상수 변호사는 네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첫째, 고인은 장 수술을 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병원이 동의 없는 '위 축소 수술'을 하면서 심낭에 천공(구멍)이 생겼다. 둘째, 퇴원 전에 찍은 엑스레이에서 구멍이 보였는데도, 병원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셋째, 10월 22일 심전도 검사 결과, 고인의 심박수가 정상이 아니었는데도 후처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넷째, 심정지 이후 심폐소생술이 늦었다.
신해철 씨의 사망이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신해철 씨가 사망하기까지의 궤적을 추적하고,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물었다. 편집자
신해철 사망, 이젠 '환자 안전'이다
프레시안 : 경찰이 S병원을 압수수색했지만, 수술 동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 누락된 자료가 무엇인가?
서상수 : 10월 22일 아산병원으로 전원하고 소속사가 23일 가족들과 의무기록지 등 자료를 복사해 왔다. 그 기록을 보니 활력증후 기록지, 수술기록지, 수술 동의서, 검사기록지 등 상당 부분이 빠져 있었다. 가족들이 병원에 다시 가서 "수술기록지는 왜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간호사가 "원장님이 한 수술은 수술기록지를 작성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서 못 받았다고 한다. 아마 임기응변으로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 수술기록지를 받지 못한 채로 신해철 씨는 10월 27일 사망했다.
이후 검찰에 고소하고 11월 1일 경찰이 S병원을 압수수색했는데, 그때서야 수술기록지를 확보했다. 그런데 막상 확보하고 보니, 의미 없는 기록지였다. 수술 과정이나 마취 과정 등에 대해 적어 놓은 내용이 너무 부실했다. 경과도 너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둘 다 문제다. 처음에 유족이 요구했을 때 기록지를 주지 않은 것도 문제고, 그 기록이 너무 부실한 것도 문제였다.
수술은 10월 17일에 했는데 병원 측이 23일까지 수술기록지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혹은 있었는데 안 줬거나 둘 중 하나다.
"수술 동영상 확보 못했다"
프레시안 : 수술 동영상도 확보하지 못했다던데.
서상수 : 그렇다. 복강경 수술할 때 의사는 배에 구멍을 뚫어서 카메라와 수술기구를 넣고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한다. 이 과정에서 대개는 수술 동영상을 동시에 저장한다. 그래서 신해철 씨 사망 다음날인 10월 28일 병원에 가서 수술 동영상을 달라고 했는데, 병원 홍보 담당자가 "못 준다. 법적 절차를 밟으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소속사와 유족이 "절대 훼손시키지 마라. 절차를 밟아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유족 측은 증거 보전 절차 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이 11월 1일 병원을 압수수색했는데 동영상이 없다고 한다. 없는 이유를 물으니 "원래 저장 기능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경찰이 병원 담당자 등에게 물었는데 다 없다고 해서 더는 진전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일했던 전직 간호사가 제보한 바에 따르면, 그 병원은 수술할 때마다 동영상을 찍는다고 한다. 그 병원 원장이었다면 신해철 씨에게 위 축소 수술을 했을 때 당연히 동영상을 저장했을 것이다. 성공하면 "내가 수술해서 살 뺐다"고 홍보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어쨌든 경찰은 진료기록 서버는 복원했는데, 별도로 저장한 동영상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의료사고, 연예인이라서 같은 점과 다른 점?
프레시안 :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정위원이면서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다. 다른 사건에 비교해서 이 사건은 어떤가? 연예인이라서 다른 점이 있거나, 연예인이어도 변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나?
서상수 : 일단 언론의 관심이 달랐다. 사망 이후 의료사고라고 부각되는 데 언론의 관심이 크게 기여했다. 일반인 같으면 기사 한 줄 나오겠나.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고소하고 압수수색이 바로 된 경우는 전례가 거의 없다. 리베이트라면 모를까, 의료사고로 고소하니 바로 다음날 영장 나온 전례가 내 기억에는 없다. 이 사건이 워낙 언론의 주목을 받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국과수 부검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국과수가 부검 중간 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는 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중간 결과일 뿐이고, 최종 결과도 안 나왔는데 "의료 과실이 의심된다"는 취지로 브리핑했다. 연예인 사건이고 언론 관심이 증폭되니 다르더라.
게다가 대한의사협회도 "공정하게 감정하고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연예인 사건도 다를 게 없는 점도 있다. 기록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병원이 기록을 잘 내주려고 하지 않고,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대응 방식은 똑같다.
"사고가 나면, 일단 자료를 확보하고 전문가에게 연락하라"
프레시안 : 신해철 씨 사건으로 의료사고가 주목받았다. 의료사고를 겪은 가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또 완만한 조정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위해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에 대해 조언해 달라.
서상수 : 첫째, 바로 진료 기록을 복사하라. 둘째, 의료 전문 변호사나 혹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와 상담하라. 그래야 대충 뭐가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의심된다고 무조건 행동하면 안 된다. 전문가와 상담해야 다음에 뭐해야 할지 나온다.
제도적 문제를 말하자면, 지금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충분히 자세하게 볼 수 없는 시스템이기는 하다.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상대적으로 덜 검증된) 비급여 진료도 많이 이뤄진다. 신해철 씨도 개복 수술이 아니라, 비급여인 복강경 수술을 받았지 않나.
제도적 개선책으로는 의료사고가 나면 입증 책임을 환자가 아닌 의사가 지도록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수술할 때 수술 영상만큼은 의무적으로 찍고 기록에 남기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그래야 진료기록 확보 문제로 환자와 병원이 싸울 일이 줄어든다.
또 하나, 우리도 미국식 사법제도의 관행을 따르지 말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사과했다고 해서 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면 유족에게 두 번 상처 주는 일이 자주 생긴다.
정리하면, 의사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수술할 때 동영상을 찍어 남기도록 법제화하자. 그러면 오히려 의료사고가 아닌데 의료사고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불신하니 몇 년째 소송하고 서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나.
"의료분쟁조정중재 제도 바꿔야"
프레시안 : 환자나 가족들은 긴 소송까지 가기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송까지 가지 않고도 의료 사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2012년부터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생겼다. 문제는 병원 측이 조정에 응하겠다고 답하지 않으면 조정이 자동으로 각하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동 조정이 되도록 하는 '의료분쟁조정중재법 개정안(이하 중재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이 '신해철법'이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서상수 : 사실 우리나라에 조정을 강제하는 법은 없다. 절차상 조정을 거치라고 권할 수는 있지만, 분쟁 당사자가 응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은 없다.
다만, 현행법은 조정에 참여할 의사가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각하된다는 점은 문제다. 일단 조정을 진행시키되, 의사들이 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면 조정 불성립으로 종결하면 된다.
현행법이 이상한 점이 또 있는데, 의사가 참여하겠다고 답하면 '조사에 응할 의무'가 부여된다. 의사가 참여하겠다고 답하고 조정에 참석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그러니 의사들 중에 60%가 안 하려고 한다. '우리가 왜 과태료를 물어가면서까지 중재에 참여해야 하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중재원이 수사 기관도 아닌데, 자료를 내거나 참석하는 것을 의무로 만들면 안 된다. 양쪽 다 잘 참여하게 유도해야 한다.
중재원이 살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좋다. 중재원을 살려야 한다. 물론 그러면 의료 소송 전문 로펌에는 별로 안 좋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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