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두 명의 남성인질이 죽임을 당했지만 '23명 가운데 21명의 무사귀환'은 나쁘지 않은, 아니 썩 괜찮은 성적표다.
"그 무엇보다 인질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반복된 발언에도 부합할 뿐더러 정부도 그에 걸맞는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했고 결과도 좋았다'며 박수치고 넘기기엔 이번 사태가 남긴 숙제는 풀어내기가 어렵고도 무겁다.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은 없다
'아프가니스타니즘'이라는 미국 저널리즘의 조어(造語)가 있다. 언론이 가까운 곳의 중요한 일은 제쳐놓고 먼 곳의 사소한 일들에 호들갑을 떠는 과도한 의미부여에 대한 비아냥이라고나 할까?
1970년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일반인들에게는 세상의 끝에 있는 나라,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라로 인식됐기 때문에 이런 조어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이후 아프가니스타니즘이란 말은 그 원래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알 카에다-오사마 빈 라덴-탈레반-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메이커가 돼버렸다.
9.11 이후 우리 인식 상에서 아프간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나긴 했지만 '바미안 석불에 대포를 쏘는 탈레반들', '여자 눈도 못 내놓게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우는 나라' 같은 '해외토픽'식 좌표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나 지난 41일의 기억으로 인해 이제 한국사회의 아프가니스타니즘도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선원들이 피랍되고 나이지리아 공사현장에서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피랍되는 2007년, 우리에게 지구상 그 어느 곳에도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은 없다.
'선진조국'에 대한 욕망이 치러야 할 댓가
한국 정부와 탈레반이 합의한 공식적 피랍자 석방조건은 연내 철군과 선교금지다. 다른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가지 다 받아들일 만한 조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여행금지지역을 하나 더 선정하는 방식으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아프가니스타니즘이 사라졌는데 인위적으로 아프가니스타니즘의 울타리를 치는 건 모래밭에 고개를 처박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하는 타조 꼴에 불과하단 말이다.
9.11 이후 미국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명목으로 제 나라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던 '인민의 자유'를 희생시키고 있지만 안전도가 그리 높아진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불안이 증폭되고 있을 뿐.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까?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한국인의 몸값은 높아졌다. 한국인이 피랍되면 뉴스와이어나 국제기구들도 움직이니 매력적인 타겟일 수밖에 없다. '국력과 경제력의 상승'과 '미국 주도의 대테러 동맹의 충실한 일원'이 된 이후 따라오는 당연한 청구서다.
'수출이 얼마고 경제규모가 세계 몇 위'라고 자랑하다가 WTO같은 다자간 무역기구에 가선 '개도국 대우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행동으로 빈축을 사는 것처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자부하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우리는 힘도 없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다'고 하소연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단 이야기다.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면 다할수록 재외 국민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이런 아이러니컬한 현실이 물론 현 정부의 탓만은 아닐테다. '부국강병'에 대한 욕망이 치러야 할 댓가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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