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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왜 '죽어가는 산업'에 돈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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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왜 '죽어가는 산업'에 돈 쓰나"

[인터뷰] 존 번 델라웨어대 교수가 말하는 '에너지 정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한국 안에서도 원자력 발전소(핵발전소) 안전 문제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월성, 고리 등 노후 원전에선 사고가 잇따른다. 수명이 끝난 원전을 연장 가동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인근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고리원전 주변 주민에게 갑상선암(갑상샘암)이 발병한 책임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있다는 판결이 나온 게 지난달 17일이다. 그보다 조금 앞서 실시된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는 참가 주민의 85%가 반대표를 던졌다. 원전의 위험성은 이제 상식이 됐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핵발전)에서 벗어나자는 '탈핵'에 대한 공감대는 여전히 약한 편이다. 원전은 불안하지만, 딱히 대안은 찾기 힘들다는 게 흔한 생각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존 번 미국 델라웨어대 석좌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는 원전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 그는 서울시에 "1억870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의 옥상이 있는데, 이 중 환경적 조건을 충족하는 30%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면 도시 전체가 주간에 사용하는 전력의 60%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먼 훗날에나 상용화될 수 있는, 이른바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가능하다. 다만, 개인이 태양광 패널을 구입해서 설치하는 건 아직 무리이므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게 존 번 교수의 주장이다. 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구성원이며, 기후 변화를 공론화한 공로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그를 지난 10일 국회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지만, 그는 전문가의 역할에 선을 긋는다. 원자력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원전에 이해관계가 걸린 기득권 집단, 이른바 '핵 마피아' 문제를 푸는 것도 결국 원전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날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존 번 미국 델라웨어대 석좌교수.ⓒ프레시안(손문상)


"원전 피해 지역 주민과 대도시 주민이 직접 교류해야"

프레시안 : 박원순 서울시장이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호응은 미미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탈핵'에 대한 공감대가 약한 탓일 게다.

존 번 : 에너지 이슈라는 게 기본적으로 복잡한 문제다. 시민에게 와 닿게끔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을 서울시가 주도하면서 보통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다른 국제도시들과 비교해도, 서울은 분명한 목표와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지난 6월에도 서울을 방문했는데, 당시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의 일환으로 태양광 발전과 관련한 청책(聽策) 토론회를 열었다. 젊은 학생들부터 전문가들까지, 각계각층의 시민이 개진한 의견이 수렴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앞으로도 공동체와 지역 기반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

프레시안 : 한국은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핵에 대한 감수성은 낮은 편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의 경우, 고리 원전에서 아주 가깝다. 고리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원전 문제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아 보인다.

▲존 번 미국 델라웨어대 석좌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존 번 :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서울에 왔었다. 사람들은 그 사고의 영향이 있을까 상당히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대형 원자력 사고가 세 번 있었다. 그 중 최근이 후쿠시마 사고다. 사고 직후엔 원전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다가 자연스럽게 관심이 식는다. 언론 역시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는다. 시민들에게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알리려면,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와 역할이 중요하다.

또 원전지역 주민들과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주민과의 소통과 상호작용(interaction)이 잘 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대도시 주민들은 원전 사고가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원전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인식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예로 들어 보자. 뉴스를 통해 사건을 접하는 것과 희생자 부모들과 직접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원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후쿠시마 사태는 일본인들에겐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다. 농작물 생산은 물론, 지금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데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원전 피해 지역 주민과 교감이 있어야 한다.

"서울 옥상 면적 30%에 태양광 발전 설치, 주간 전력 60% 생산"

프레시안 : 대안에너지로 태양광 발전이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도 태양광 관련 투자가 한 때 활발했다. 그러나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존 번 : 서울시의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했을 때 얼마나 많은 전력을 얻을 수 있을지를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다. 건물이 밀집한 서울시의 경우 1억870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의 옥상이 있는데, 이 중 환경적 조건을 충족하는 30%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면 도시 전체가 주간에 사용하는 전력의 60% 이상을 생산할 수 있다.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로도 가능하다. 태양광의 잠재력이 이 정도라는 얘기다. 화력발전이나 원자력 등 다른 전력 생산 방식보다 훨씬 잠재력이 크다. 또 설치하는데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이걸 서울시가 정책적 계획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미국엔 '지속가능 에너지 공익사업체(Sustainable Energy Utility, SEU)'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런 식의 태양광 발전 모델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사업을 통해 전기를 적게 쓴 만큼 아낀 돈으로 지속가능 에너지 사업에 재투자를 하는 식이다.

이미 미국의 경우 델라웨어나 워싱턴DC, 캘리포니아, 펜실베니아 등에서 이런 모델을 적용해 지속가능 에너지 발전을 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런 방식으로 지속가능 에너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워낙 큰 규모의 사업이기에 일단 서울시의 한 지역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볼 수도 있겠다.

▲존 번 미국 델라웨어대 석좌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 지역에서 생산해야"

프레시안 : 한국에선 몇 년째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이 진행됐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을 지나가는 전기의 주요 소비자도 아닌데, 다른 대도시 지역의 전기 소비를 위해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강자의 편리를 위해 약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구조다. '정의(正義)' 문제다. 하지만 국내에선 밀양 주민의 이 격렬한 반대가 '에너지 정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존 번 : 발전소나 송전탑 등 에너지 생산 시스템은 결국 정부 돈으로 만든다. 그 돈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다. 이 국민의 세금으로 송전탑을 지을지, 아니면 지속가능 에너지에 투자할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부족하고, 그럴 만한 역량도 부족한 편이다. 왜 그런가? 그 문제가 바로 '에너지 정의' 이슈다.

결국 정책 결정은 정치, 경제 권력에 의해 이뤄지기 마련인데, 원전 지역 주민이나 밀양 주민들에겐 권력이 없기 때문에 송전탑과 같은 시설이 들어선다. 예컨대 서울 강남지역엔 송전탑이 들어서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 정의' 이슈다.

에너지 빈곤과 관련한 조사를 했다. 서울에서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이들은 에너지 소비에 소득의 13%를 쓴다. 이들이 에너지 빈곤층이다. 반면, 소득 상위 10%의 사람들은 에너지 소비에 소득의 2%만을 사용한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 역시 '에너지 정의'다.

현재는 모든 에너지 시스템의 설계와 운용을 중앙정부가 담당한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정의'가 요원해진다. 지역 기반의 민주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지역과 생산하는 지역이 따로 있는 형태다. 그러니까 에너지 생산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일어난다. 한국 실정에 맞게 지역 기반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그 지역에서 만든다면, '에너지 정의'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에 깔린 철학은, 단순히 발전소 하나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정의를 높이는 차원이기도 하다. 원전에 의존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에너지 정의'를 점점 떨어뜨린다.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통해 '에너지 정의'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원전을 하나 줄이면, '에너지 정의'는 올라간다.

"원전 더 지으면 신용등급 떨어진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원전 수출에 목을 맸다. 모순된 행태인데, 원전 수출을 경제 성장의 한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책 기조는 지금도 유지된다. 원전 관련 산업은 여전히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꼽힌다. 생태적인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의문이 든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많은 나라들이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 조심스러워졌다. 이는 세계적으로 원전 수요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 수출이 과연 경제성이 있을까.

존 번 : 미국은 원자력발전을 최초로 시작한 국가다. 그러나 원전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보조금 때문이었다. 원전 건설비용에 일단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고, 사고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금에도 보조금이 투입된다. 결국은 국민의 세금인 셈이다.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는데, 이런 보조금이 없다면 원전은 경제성이 없다고 본다. 한국 정부도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원전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역시 경제성이 없다고 본다.

원전은 죽어가는 산업이다. 미국엔 두 개의 커다란 원전 건설회사가 있는데,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과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Electric Company)다. 이들 역시 주문을 제대로 따내지 못한 지 오래다. 신용평가기관 역시 원전에 부정적이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탓이다. 원전을 더 지으면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겠다는 경고를 한 적도 있다. 투자자들도 이제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쪽에 흥미를 갖는다. 원전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원전 수출에 기대를 거는 한국 정부의 태도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이 원전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4배가량 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재생가능 에너지가 더 낫다.

"'핵 마피아' 깨려면, 원전 지역 주민들이 나서야"

프레시안 : 한국에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 '핵 마피아'로 불리는 이해관계자들이다. 산업 당사자와 전문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정치인 및 관료들이다. 이들의 결속과 기득권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마피아'라고 불린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존 번 : 미국에서 신규 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일단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고, 또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핵 마피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원전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지역 주민들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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