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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2ℓ? 물 타령하다 진짜 물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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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2ℓ? 물 타령하다 진짜 물먹는다!

[낮은 한의학] 수독과 메니에르 병

의사 입장에서 제일 긴장하는 순간 중 하나는 단골 환자가 지인 손을 끌고 올 때다. 물론 이렇게 지인 손을 끌고 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또 그렇게 같이 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대개 같은 질환으로 고생한다. 드문 일이지만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용하다는 의사를 찾았다가 병이 낫기는커녕 심해져서 친분이 깨지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니 긴장이 될 수밖에.

지난주에 바로 그런 일이 있었다. 주치의처럼 한의원을 찾으며 진료를 받던 한 환자가 친구의 손을 이끌고 한의원을 찾았다. 어지러움과 귀의 먹먹함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를 보다 못해 한의원에 데려온 것이다. 겉보기에 목소리도 크고 몸집도 큰 그 환자의 나이는 육십 정도. 하지만 베개를 두 개나 포개고 조심스럽게 눕는 걸 보니 어지럼증이 중증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단다. 자고 일어나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는 물론이고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어지러워서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도 고역이라는 것. 머리를 낮추면 더 어지러움을 느껴서 신발을 신거나 심지어 구부리는 자세마저도 자신에게는 무서운 일이라는 하소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거기다 귀의 먹먹함에 난청, 귀 울림(이명) 증상까지….

어지러움과 귀의 난청, 이명이 같이 오는 것은 대부분 몸이 허약하거나 피로가 쌓여서 온다. 그래서 묻고 답하며 그 원인을 추적해 봤지만 또렷한 원인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문답을 계속하다 물 마시는 양을 묻자 환자가 이렇게 답한다.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대로 하루 2리터씩 꼭 챙겨먹는단다.

ⓒcdn.phys.org

순간 환자 앞에서 혀를 찰 뻔했다. 최근에 환자들과 문답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물마시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이 환자처럼 하루 2리터씩 마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물론이고, 물을 많이 마시지 못한다며 마치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양 말끝을 흐리는 경우도 많다. 물마시기가 곧 건강이라는 등식이 사람들 머릿속 깊숙이 박힌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많이 마신 물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 환자가 그런 경우처럼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환자의 증상은 '메니에르 병'에 가깝다. 메니에르 병은 귀속에 있는 림프관 내에 림프액이 고이면서 해당 장소가 붓는 증상이다. 한마디로 귀속에 물이 고이면서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다.

이 때문에 현대 의학에서도 메니에르 병의 치료는 림프액 즉 물을 빼주는 이뇨제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한의학 역시 접근 방법이 다르지 않다. 한의학은 메니에르 병을 귀속에 물이 고여서 생기는 '수독(水毒)'의 일종으로 보고서, 택사나 복령 같은 이뇨 성분이 든 약물을 처방한다.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메니에르 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귀에서 소리가 나고 귀가 먹먹해진다며 귀를 바늘 같은 것으로 찔렀다고 하는데 전형적인 메니에르 병의 증상이다. 가끔 고흐의 그림의 빙글빙글 도는 소용돌이 역시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자기의식의 렌즈로 본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 의학도 메니에르 병의 정확한 원인을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즉 귀속에 림프액이 고여서 메니에르 병의 증상(어지러움, 난청, 이명 등)이 생기는 건 알았는데, 도대체 왜 정상 상태에서는 흡수되어서 없어야 할 물이 귀에 고이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메니에르 병의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인체의 균형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바로 이런 균형을 깨는 일 중 하나다. 이 환자 역시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심으로써 어지럼증, 난청, 이명 등을 유발한 것이다.

상식과는 어긋나지만, 물이 원인이 되어 건강을 해치는 경우는 대부분 물을 많이 마실 때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생존에 꼭 필요한 만큼의 수분은 어떤 식으로든 흡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물 말고도 다른 음료 그리고 먹을거리의 대부분이 수분을 함유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통해서 몸이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이 환자처럼 과음할 수 있다. 갈증이 나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다고 억지로 물을 마시면서 탈이 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열이 많거나 목이 말라서 마시는 물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속이 냉해서 설사를 잘하고 복통이 자주 나는 경우에 마시는 물은 오히려 신체에 부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흐 역시 물은 아니지만 '압생트'라는 술을 물처럼 즐겨 마셨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섭씨 36.5도의 체온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이 체온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몸 밖으로부터 들어온 이물질을 몸속에서 데워야 한다. 그런데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찬물이 계속해서 몸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 물이 데워지기는커녕 위장의 온기를 빼앗고, 그것이 제 기능을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한의학에서는 물로 인해 몸속의 균형이 깨지면 몸 곳곳의 물길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범람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귀의 림프액이 제대로 흡수가 안 되고 범람해서 붓는 메니에르 병과 그로 인한 여러 증상도 이런 문제 중 하나로 인식한 것이다. 실제로 이뇨 성분의 약제로 몸속의 수분을 밖으로 배출하면 증상이 완화되니 놀라운 일이다.

메니에르 병의 경과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한두 번의 어지럼증과 청력 감소 후에 증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수년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어지러움이 발생하고 청력이 점차 떨어져 심하면 한쪽 귀, 최악엔 양쪽 귀의 기능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 환자에게 이런 설명을 쭉 해주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건강의 핵심은 자기 관찰입니다. 물의 적고 많음 역시 그 척도는 자신입니다. 자기가 목마를 때 또 몸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물을 적당히 마셔야지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무조건 많이 마시는 물은 독이 될 뿐입니다. 넘치지 않게 적당히, 이것은 세상사나 물먹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 환자는 일주일 뒤에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어서 다시 한의원을 찾았다. 환자의 밝은 얼굴을 보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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