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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진가들이 착목한 한국 사회의 '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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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진가들이 착목한 한국 사회의 '본모습'

온빛 다큐멘터리 기관지<포토노트> 제1호 출간에 부쳐

다큐멘터리 사진가 집단 온빛이 창립한 것은 2011년이니 올해가 4년째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모임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밝힌 바 있지만, 참여 회원 면면을 보면 아무래도 고전적 의미의 좌파적 성향을 가진 사회 참여 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하는 집단으로 보인다. ‘온빛’이라는 말은 우주 안 모든 빛의 입자 즉 광자(光子)를 뜻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온 누리에 빛’이라는 의미로 빛과 어둠의 이분법 위에 세워진 좌파의 계몽주의적 사명감이 그 안에 중의적으로 포함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온빛이 추구하는 바는 <포토노트>의 기획자이면서 편집인인 사진가 이상엽이 <포토노트>에 인용한 글에 잘 드러난다. “사진은 막대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 사진가들에게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참된 이미지를 기록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져 있다. 오랫동안 사진은 조형주의자들의 헛된 영향 때문에 고통 받아 왔다. ‘포토리그’는 미국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사용하려는 정직한 사진가들 손에 카메라를 되돌려 주려는 것이다.” 제호인<포토노트> 또한 1936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 뉴욕에서 여러 사회 참여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모여 만든 ‘포토리그(Photo League)'의 동인지인 'Photo Note'에서 따왔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포토노트> 제1호는 사회 참여 다큐멘터리라는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 사진가 집단 온빛의 기관지이자 동인지의 첫 출발이다.

▲강정마을 '알점방' 주인 김도실(76)씨가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김종원(1935년생)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남편은 가족 15명이 몰살당한 뒤 평생 '신경성 우울증 노이로제'로 고통받았다. ⓒ김흥구
그런데 막상<포토노트> 제 1호를 펼쳐보면 그들이 담은 콘텐츠는 미국의 좌파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다루었던 만큼 균질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을 뜯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은 소위 지상 사진전이라 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전시가 여덟 꼭지가 있는데, 전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덟 가운데 넷은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의 특집을 구성하고 다른 넷은 하나의 주제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주제의 포트폴리오이다. 그리고 여덟의 절반인 넷을 이미지 없는 글에 할애하였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물론 그 넷 가운데 둘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이니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나머지 둘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비율로 봤을 때 전체적으로 사진 동인지로서 균형이 잘 잡힌 구조라 할 수 있겠다.

특집 ‘국가란 무엇인가’에는 강정 해군기지(김흥구), 삼성반도체(신웅재), 밀양 송전탑(최형락), 세월호(손문상) 라는 2014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거시사의 네 문제가 들어가 있는데, 이보다 더 적확하고, 절대 포괄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2014년을 살아 버텨 나아 온 한국인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면, 정말 듣고 싶은 대답이 있다면, ‘진정 국가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한다. 그 절절한 애 끊는 심정을 빠트리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채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절절한 목소리로 묶어 냈다. 특히 최형락의 고발은 포토저널리즘이 사회 다큐멘터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잘 보여준다.1) 바로 이 사진으로 던진 네 가지의 비극의 역사에 대한 물음이 바로 이<포토노트>를 탄생시킨 연유다.

한 편, 특집 외 ‘포트폴리오’라는 범주에 묶인 네 편의 작품은 특집에서 다룬 시선과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여기에는 가족의 삶에 관한 것 둘, 장소에 관한 것 둘을 실었다. 강제욱은 자신의 장기 프로젝트를 동행하는 자신의 아내를 현장에서 연출하여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다큐멘터리 작업의 새로운 방식이 가능함을 보여주고,2) 임종진은 타인의 가족을 그 삶 안에 들어가 참여 관찰하면서 촬영하는 방식을 통해 전통 방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3) 둘 다 모두 거시적 사회 문제에 대한 고발과 저항의 정신이나 계몽성에 기울지 않고, 좀 더 다른 시선을 통해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이 향후 얼마나 인문학과 연계될 수 있을지의 여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둘은 박정민과 이경희의 작품으로 장소성에 대한 고찰이다. 박정민은 사대강이라는 거시적 문제를 다루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 문제의 고발이라기보다는 풍경과 권력의 문제를 다루었고,4) 이경희는, 비록 그 완성도는 아직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한 장소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다른 성격을 지니는지에 대한 재현의 의미를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들이 모인 이 여덟 개의 포트폴리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온빛 다큐멘터리는 편집인 이상엽이 지향하는 바보다는 회장 권태균이 프롤로그에서 적시하는 바와 같이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과 예술적 표현을 통한 기록을 함께 지향하는 집단으로 성격 규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춘천 집에서 딸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가 신웅재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고통에 관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웅재

▲ 팽목항, 진도 2014 ⓒ손문상

여덟 편의 지상전에는 다큐멘터리 사진전이 취할 수 있는 여러 태도가 모두 나타나 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경희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사진가는 각자가 취한 대상 사건에 대한 장문의 텍스트가 들어 있다. 사진은 사진으로만 말한다는 세간의 헛된 평을 철저히 무시해버린 셈이다. 원래 사진은 단독으로 말을 할 수 없음에도 너무나 많은 말이 생성되어 이미지 하나만으로는 해석의 자유로움을 낳고 나아가 사진가의 의도를 왜곡하는 해석이 난무하다. 따라서 이미지보다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사진 이미지에 자세한 텍스트를 다는 방식을 선호하곤 한다. 이론의 여지없이, 그것이 옳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각 사진마다 캡션을 일일이 달아줘야 하는가의 문제는 또 다르다. 손문상이나 임종진과 같이 사진을 언제 어디서 무엇을 찍었는지 정도에 대한 캡션을 달아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지만, 김흥구 같이 그 정도를 넘어 이미지의 해석까지 내려버린다면 그것은 사진 독자의 감성을 위축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5)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해야 하는 일이란 이미지를 잘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는 사진을 통해 뭔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진 이미지에 가치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란 그 대상이 거시적인 것이든 미시적인 것이든 구조에 관한 것이든 일상에 관한 것이든 간에 사건의 전말을 기록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 이미지가 창조적인 데 기운 나머지 일반적 통념과 거리가 먼 이미지 자체에 시선을 과하게 붙잡아 매면 그에 따라 의미 전달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해석이 분명한 이미지에 분명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1948년 4월 3일로부터 66년 '학살'이 지나간 제주에 '파괴'가 찾아왔다. 시간은 그저 흐르지 않았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의 불법성을 감시하는 평화활동가의 목 위로 대형 크레인 줄이 겹쳐지고 있다. 국가 폭력에 목 졸려 질식돼 온 제주도의 과거와 오늘. 2013년. ⓒ김흥구

▲ 여주 남한강 2011. 사진가 박정민의 'Down by the River'는 4대강 사업 뒤로 남겨진 풍경들을 찍은 작업이다. ⓒ박정민

▲ 밀양 송전탑 부지에서 주민들을 진압한 직후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여경들. 밀양 2014 ⓒ최형락

<포토노트> 제1호의 뿌듯함과 아쉬움은 두 편의 사진 없는 에세이에게 간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하고 그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해야 한다. 따라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하니, 곧 인문학적 사유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당위성을 알리거나 담론을 논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자기 스스로 느끼고 고뇌하는 사유의 글이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자.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우선 갖추어야 할 것이 사진 기술이나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닌 자기 성찰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포토노트> 제1호가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 세계를 꾸준히 열어가기 위해서는 노익상의 ‘카나리아-바람을 찾아서’와 같은 글을 계속 연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이런 종류의 절절한 일지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 과연 이런 수준의 수상록이 유지될 수 있을지가 <포토노트>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반면, 박평종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상황’은 식상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이 좋은 글임은 분명하고, 사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 쯤은 읽어봐야 하는 수준 있는 글임에도, 몇 년 전에 발표했던 글을 수정 보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포토노트> 첫 호를 구성하는 글로서는 신선도가 떨어진다. 같은 주제를 다룰지라도 학술적이지 않으면서 좀 더 경쾌한 현장성을 제시하는 글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부여 금강, 웅포대교, 2013. ⓒ박정민
<포토노트>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서글프다. 종이 매체의 영향력이 크게 약해지고, 사이버 매체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사람들이 사회와 역사, 진실과 거짓, 진보와 수구에 대한 관심이 멀어져 간다. ‘매그넘’같은 거대 사진 통신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사진을 찍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서 그들이 소망하는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서의 사진 활동도 점차 위축되어 갔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의미 있는 일이 생겼다. 2009년 용산참사 후 몇몇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사진으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모임을 만들었고 그들이 해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주제를 선정해 그것을 기록한 사진들을 모아 달력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까지 이어져 왔는데 한 해도 빠짐없이 예약 판매가 마감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포토노트>는 넓은 의미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프로젝트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들이 도구로서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 사진이 다시 한 번 사회 변혁을 추동해내는 매체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하여 사진가들이 갤러리나 미술관을 지향하는, 그래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운신 폭이 갈수록 사라지고, 사회 문제에 대해 냉담해지는 비인간적 파편화 된 사회의 물꼬를 돌려 사람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사진가들이 앞장서고자 하는 것이다. 존재의 위기를 사회 변혁에서 찾아 돌파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처절하게 아름답다. 그들의 몸부림에 이제 우리가 화답을 해야 할 시점이다.

▲ 영도 영선동, 변호인 2013, 양유성. 사진가 이경희의 Film Map 연작은 부산의 영화 촬영지를 소재로 한 작업이다. ⓒ이경희

▲ 가족사진 2011. 정화. 제주도. 사진가 강제욱의 My Wife 연작이다. ⓒ강제욱

▲ 온 가족이 화천시장에서 장을 보고 온 날, 선이골 식구들은 수박 파티를 열었다. 2002년. 사진가 임종진은 햇수로 14년 째 이 가족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임종진

<각주>

1) pp. 38-9.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말하는 좋은 예.

2) p. 76. 강제욱은 지구의 환경과 기후 변화, 물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데 제주, 필리핀 등의 일본군 진지 작업은 그 맥락 안에서 진행된다. 가장 소중한 의미를 지닌 가족 - 아내 -을 가장 큰 의미를 두는 대상에 투입하여 전혀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다큐멘터리 작업일 수 있다.

3) p. 98은 2002년 찍은 사진이다. pp. 106-7은 2012년 찍은 사진이다. 두 사진을 앞과 뒤에 배치함으로써 사진가가 지금까지 그 가족의 작은 역사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기록하였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4) pp. 82-83. 다큐멘터리의 기록성에서 인문학적인 성찰과 예술적 감성이 더 강조된다.

5) pp. 22-23. 김흥구가 달아놓은 네 줄의 캡션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3일로부터 66년. ‘학살’이 지나간 제주에 ‘파괴’가 찾아왔다 / 시간은 그저 흐르지 않았다 / 강정 해군기지의 불법성을 감시하는 평화활동가의 목 위로 대형 크레인의 줄이 겹쳐지고 있다 / 국가 폭력이 목 졸려 질식돼 온 제주도의 과거와 오늘”. 사진가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줄을 쓰지 않았어야 했다. 따라 붙은 텍스트를 읽은 후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사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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