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공무원 사회에 근무하자마자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한 것은 바로 공무원 사회의 모든 보고서가 ‘-함’이나 ‘-음’으로 글을 끝맺음하는 문장 형태라는 사실이었다. 그 뒤 필자는 틈이 나는 대로 이와 관련된 문제를 관찰하고 연구하였다(물론 기존에 이 문제와 관련된 선행 연구나 조사는 전혀 부재 상태였으므로 모든 과정은 필자 혼자서 해야 했다. 따라서 여기에 기술하는 분석이나 판단 역시 당연히 필자 개인의 견해이다).
공무원들의 ‘개조식’ 보고서, 일제 잔재로서 권위주의 사회의 토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각종 보고서로 작성할 때 거의 100%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취한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 방식은 일반적으로 문장을 짧게 끝내고 요점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해되면서 공직 사회의 공문서는 물론 기업의 보고서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 구조가 우리 사회 관료 집단의 권위주의적이고 무책임성을 증폭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작동되어왔다고 생각한다.
글이란 어떤 형식과 틀에 의하여 쓰느냐에 따라 그 내용 또한 상이하게 되며, 동시에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 역시 달라진다. 관행화된 특정의 문장 형태는 그에 따른 관행화된 특정의 문화와 의식구조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것을 어떤 집단에서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특수한 집단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의 의식도 총체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즉, 문장의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며 나아가 글쓴이와 읽는 사람의 생각마저 규정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개조식’ 문장은 결국 관료 집단 및 기업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 문화와 무책임성의 의식구조를 만들어낸 중요한 토대로 작동해왔다.
'-함', '-음' 문장은 일제 잔재
그런데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형태의 문장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에 이식, 강요되었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이다.
일본에서도 사라진 천황 시대의 권위적 유산 ‘문어(文語)’
반면에 우리나라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하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후 일본의 법률이나 교과서 등 서적을 그대로 직역하면서 일본 문장을 그대로 모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를테면 우리의 산학(算學: 수학) 교과서 등에도 ‘-함’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공문서의 경우에도 일본의 공문서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였고, ‘-함’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이 그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내각을 비롯한 각급 기관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 일본인 고문이 모든 문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그 일본인 고문 중에는 일본 포병 소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도 ‘-함’, ‘-음’으로 끝맺음하는 이러한 문장 방식은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법률만이 아니라 공문서에서도 완전히 폐지되어 현재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함’, ‘-음’으로 끝맺는 보고서 문화, 권위주의와 책임소재 실종 초래
‘-함’, ‘-음’, ‘-임’ 등으로 끝맺는 문장 방식은 우선 우리 국어의 온전한 문장 구성을 저해하고 기형화시킴으로써 우리 국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한다. 또한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작위적으로 글을 ‘강제’ 완료시키면서 오히려 글이 번잡해지거나 비문(非文)이 출현하고 의미 전달도 잘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함’, ‘-음’, ‘-임’ 등으로 끝맺는 문장 방식은 우선 우리 국어의 온전한 문장 구성을 저해하고 기형화시킴으로써 우리 국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한다. 또한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작위적으로 글을 ‘강제’ 완료시키면서 오히려 글이 번잡해지거나 비문(非文)이 출현하고 의미 전달도 잘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특히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정상적으로 글을 완료하지 않고 스스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을 지향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다.
또한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대부분의 경우 주어가 생략된 채 전개됨으로써 글의 내용이 과연 글쓴이의 주장인지 아니면 타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인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기에 부합하는 문장 구성이기 때문에 결국 보고서 작성자의 책임 소재가 실종된다.
마지막으로 이 개조식 문장은 정식으로 주석을 표시하지 않은 채 타인의 주장과 논리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표절에 둔감한 사회를 조장시키게 된다.
문체(文體) 개혁 운동이 필요하다
이제 문장 혹은 문체(文體) 개혁이 실천되어야 한다. 이 역시 국가 기본의 재구축을 위한 일환이다. 그리하여 일제 잔재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권위주의와 무책임성을 초래하는 ‘-함’과 ‘-음’ 방식의 개조식 문장을 지양하고 ‘-다’로 끝나는 서술식 문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공직사회의 ‘개조식 보고서’ 형식은 하루바삐 개혁되어야 한다.
모르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바로 알면서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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