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박수칠 수도, 일어나 소리지를 수도 없었다. 참사 206일 만에, 그것도 너무나 부족한 모습으로 국회 본회의를 가까스로 통과하는 세월호특별법.
그 전 과정을 지켜보며 몇 가족들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입 속에 가두고, 대신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시작이야"라며 힘 모으는 이들의 볼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7일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본회의는 당초 예정보다 늦은 오후 2시 47분에 개의했다. 2시부터 방청석에 자리를 잡은 유가족 150여 명은 차분한 표정으로 회의 시작을 기다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본회의를 방청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서산중앙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눈길을 끌었다. 가지런히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들을 보며 한 유가족은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학생들이 웃고 장나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상정합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이 같은 말로 법안이 상정됐고, 곧 이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이 법안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며 "우리 위원회에서 제안한대로 의결해 달라"고 했다.
"세월호법은 위헌"이란 하태경 의원 발언 끝에 새누리당 "잘했어"
얼마나 어렵게 본회의까지 온 법안인가. 곧바로 표결로 들어갈 줄 알았던 법안은 그러나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반대 토론으로 잠시간 지체됐다.
그는 "세월호특별법안은 '위헌' 소지가 높아 이대로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반대 토론을 벌였다.
처음엔 숨죽여 그의 말을 듣던 가족들은 어느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숨 쉬고 가슴을 두들기고 탄식하고 있었다. 세월호법은 "형사소송법 체계에 대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 끝에 "아이고 또 저 얘기…", "왜 오늘까지" 등의 탄식도 방청석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하 의원이 반대 토론이 끝내고 발언석에서 내려갈 때엔 새누리당 쪽 의석 누군가가 "잘했어"라고 소리 질러 가족들에게 또 한 번 비수를 꽂았다.
소리 죽여 흐느끼는 가족들…"손 놓지 말고 함께해 달라"
하 의원의 반대 토론 뒤엔 정진후 정의당 의원과 정청래·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정 의원은 여야 원내지도부가 특별법안을 합의하고 이틀 뒤인 지난 2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발표했던 입장문을 다시 내려갔다.
"성역없는 진상규명으로 나아가는 데 무수히 많은 장애물과 방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특별법은 우리 출발점입니다. 가족들의 손을 놓치 말고 함께해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이 즈음부터 가족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가족들의 모습을 본회의를 방청하던 학생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빼고 지켜 봤다.
정의화 "박수 치지 말라"…"대통령 왔을 땐 그렇게 치더니"
가족들은 정 의원의 이 같은 찬성 토론 이후 자신들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박수였다. 누구도 주도하지 않았고, 가족들뿐 아니라 방청 중이었던 일반인들 중에서도 손뼉을 치는 이들이 보였다.
그러나 이는 바로 "본회의 중에는 소란을 떨지 않는 게 관례이니 이를 지켜달라"는 정 의장의 제동에 가로막혔다.
이에 방청석 주변을 오가고 있었던 국회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손뼉 치는 가족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박수 치시면 안 됩니다. 좀 지켜 주세요."
한 아버지가 말했다. "박근혜 올 때는 그렇게 박수 치더니…"라고 말이다. 박 대통령이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로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던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의원들은 '경제'만 59번 외친 대통령 시정연설 중에 27차례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진후 의원을 뒤 이어 정청래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위헌을 말하지 말라"며 "가장 큰 위헌은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이어 "진상규명을 더는 늦출 수 없어 오늘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키지만 그간 유가족이 겪었을 고통과 모욕, 멸시는 우리가 반드시 유가족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규 통진당 의원은 "위헌시비가 왠말이고 정치적 계산이 왠말이냐"는 찬성 토론을 마친 후 가족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석에서는 고함이 나왔고 가족들은 손뼉을 쳐 호응했다.
반대 12명 전원 새누리당…가결 선언에도 자리에 앉아 눈물
표결은 순식간에 끝났다. 전자 투표를 하는 덕에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곧바로 전광판에 재적 의원 수와 찬성, 반대, 기권 숫자가 표시됐다. 251명 재적 중 찬성 212명, 반대 12명, 기권 27명.
세월호법에 반대한 의원 12명은 모두 새누리당 의원들이다. 최봉홍, 김정훈, 황진하, 이헌승, 한기호, 조명철, 안홍준, 김용남, 김종훈, 김진태, 박민식, 그리고 하태경 의원.
입술을 깨물어가며 소리 죽여 울던 가족들은 정 의장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한 후 의사봉을 세 번 두들기자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석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몇 가족들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법 통과 몇 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말했다.
"아무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다 살 거라고 믿었던 304명의 희생자와 실종자들, 어떻게 그들을 앞에 두고 '위헌'이라고 협박할 수 있습니까. 국회에서 그 긴 시간 농성할 때 단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절 한번 했다고 야유하는 것을 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 분통 터지고 답답하고 서럽습니다."
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몇 년이라도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역 없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따뜻하게 보듬어주신 많은 국민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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