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기도 파주에 사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임진각으로 하나 둘 씩 모여들었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서다. 트랙터 옆에는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지킵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 현수막에 적힌 글귀 그대로 이들은 이날 스스로 대북전단을 막아냈고 정부는 수수방관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총격사건이 벌어진 이후 파주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 "현행법상 제지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방치했다.
정부의 말대로 정말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헌법에 근거한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까? 법적으로 막을 근거는 없을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문제는 없는지,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근무하며 남북 간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통일맞이 정책실장 김창수 조합원에게 자문을 구했다.
김 조합원은 우선 정부가 말한 표현의 자유와 관련,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기준이 있다"면서 "헌법 21조 4항에는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했으며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다"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며 "미국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을 때'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돼있다"며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발생하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 △남북 합의사항 이행 역행 △내부의 혼란과 충돌 야기 등이 21조 4항에서 지적한 사례이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에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조합원은 "따라서 정부가 전단 살포를 막는 것이 오히려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조합원은 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검열하지 말아야 한다"며 카카오톡 등 SNS는 검열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를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건(카카오톡 검열) 하면서 막아야 할 것 (전단 살포)은 안 막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해 ABC도 모르는, 기본도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북전단 살포가 25일 무산되면서 이제 관심은 북한이 정부가 제안한 2차 고위급접촉에 호응해 나올지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김 조합원은 "전단 문제와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2+2)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2+2회의에서 북한의 인권과 북핵 문제를 강한 어조로 거론한 것을 두고 북한이 시비를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김 조합원은 최근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 배경과 상세한 내용을 담은 <협상의 달인>(한국미래발전연구원, 2014년 10월 펴냄)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이 NLL(북방한계선) 문제 때문에 이념적 논쟁이 돼버렸는데, 정상회담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협상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김 조합원은 "이념의 관점이 아니라 협상의 관점에서 당시 정상회담 대화록을 본다면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정상회담이 이념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자양분으로 쓰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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