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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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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의 시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권위의 은행' 노벨상, 유쾌하게 비틀다

매년 10월 초순 그 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알려질 무렵, 하버드대학의 샌더즈 극장에서 열리는 시상식 하나가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시상 부문에는 노벨상 대상인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평화 외에 공공의료, 공학, 학제 간 연구 등의 여러 부문이 있다. 1991년 '명랑과학' 잡지를 표방하는 <황당 연구 연대기>(Annals of Improbable Researches) 편집자 마크 에이브러햄스가 창설한 이 상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서서 시상식 진행을 맡아줄 만큼 큰 호응을 얻으며 해마다 많은 웃음을 과학계에 선사하고 있다.

고귀하다는 뜻의 'noble'에 'ig'를 붙여 반대말을 만드는 데 빗대 'Nobel'에 'Ig'를 붙인 것은 물론 노벨상에 대한 패러디다. 하지만 날선 비판이 아니라 부드러운 풍자의 분위기다. 수상 기준을 초기에는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될" 연구로 제시했지만 근년에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웃게 만들고, 이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로 바뀌었다. 1995년 평화상을 "정치인들이 서로 치고 차고 때리는 것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 것보다 생산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공로"로 타이완 의회에 수여한 것(대한민국 국회는 분발할 필요가 있다!), 1996년 문학상을 '소칼 사태'(학술지의 권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뉴욕대학의 물리학교수 앨런 소컬이 일부러 제출한 가짜 논문을 게재함으로써 일어난 논쟁)에 휘말린 <소셜 텍스트>지에 수여한 것, 1999년 과학교육상을 진화론 교육과 관련하여 콜로라도 주와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에 수여한 것 등은 초기의 투쟁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차츰 '재미있는' 기준으로 옮겨왔다. 2006년에는 창설자 에이브러햄스도 이렇게 말했다.

"이 상의 목적은 특이한 연구에 각광을 비추고 연구자의 상상력에 명예를 헌정하며 과학, 의학과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키워주는 데 있습니다."

시상 내용에 재미있는 것이 참 많다. <Wikipedia>의 "이그노벨상 수상자 명단"(List of Ig Nobel Prize winners)만 들여다봐도 한참 재미있다. 한국인으로는 1999년 환경보호상을 코롱사의 권현호(Hyun-ho Kwon)가 받은 것이 눈에 띈다. 향수를 따로 뿌릴 필요가 없는 신사복을 발명한 공로라고 한다.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과학자는 소련 출신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연구 활동을 해온 안드레 가임 한 사람뿐이다. 역시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2007년 이후 중요한 과학상을 휩쓸다가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기에 이르지만 수상 경력의 첫머리에 2000년의 이그노벨상을 올려놓는다. 전자기 부양효과 연구 실험에서 하필 개구리를 공중부양 시킨 것이 이그노벨상 수상 자격이 되었다. 노벨상을 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에 똑같은 가치를 둡니다. 이그노벨상은 제가 농담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약간의 겸손은 언제나 좋은 것이죠."

▲ 안드레 가임에게 2000년 이그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개구리의 공중부양. 기사 중의 다른 사진과 아무 관계없음.

2010년 12월 노벨상 수상자들의 심포지엄에서 류샤오보의 옥중 평화상 수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인권 상황에도 개선이 있었다는 사실에 아무리 엄격한 인권옹호론자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사실을 왜곡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요?"

<Wikipedia>의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항목 중 시상식 설명도 무척 재미있다. 야유는 언제나 환영이다. 무대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도록 객석에 종이도 준비해둔다. 진행자의 전형적 폐막 멘트는 이런 것이다.

"금년에 상을 놓치신 분들은 내년에 분발하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상을 받은 분들은 더 많이 분발하셔야겠습니다."

안드레 가임 말고도 이그노벨상을 노벨상과 연결시킨 사람이 또 하나 있다. 하버드대학 물리학과의 노교수 로이 글로버는 시상식마다 수시로 빗자루를 들고 나와 무대에 쌓인 종이비행기 치우는 일을 자청해서 '빗자루 장관'(Keeper of the Broom)이란 공식 직함까지 얻은 사람인데 2005년에 그 역할을 못했다. 노벨상 받으러 스톡홀름에 갔기 때문이다. 80세 나이에 그가 노벨상을 받은 공적은 38세 때인 1963년 발표한 양자역학 논문이었다. 노벨상 받은 이유를 스스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기자가 물었다면 "오래 산 덕분"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노벨상은 생존 인물에게만 주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그노벨상은 초창기의 투쟁적 자세를 완화시키며 노벨상을 보완하는 쪽으로 역할을 키워왔다. 겉보기로는 비판정신의 약화일 수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비판정신의 성숙과 심화를 그 변화에서 읽는다. 노벨상의 권위주의에 분노하는 단계를 넘어 그 한계를 굽어보며 그 한계 안에서나마 노벨상의 역할을 인정하는 초연한 자세로 느껴진다.

노벨상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지만, 대개는 응당 받을 사람에게 주지 못했다거나 줘서는 안 될 사람에게 줬다거나 하는 기술적 기준에서의 비판이다. 노벨상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은 흔하지 않다.

받을 사람에게 주지 못한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마하트마 간디다. 간디는 1937, 1938, 1939, 1947년에 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노르웨이노벨위원회가 영국 눈치를 보느라고 지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독립 후인 1948년 지명이 당연시되었지만 그 해 1월에 서거했고, 노벨위원회는 그 해 평화상을 공석으로 하면서 "생존 인물 중에 적합한 사람이 없다"는 발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간디에 대한 추모의 뜻을 표현했다.

2006년에 노벨위원회 서기 게어 룬데스타드가 한 말에 음미할 점이 있다.

"106년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 간디에게 평화상을 주지 못한 사실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노벨상 없는 간디'는 간디에게 흠이 되지 않지만, '간디 없는 노벨상'은 노벨상에게 남겨진 아쉬움이다."

이 말은 1964년 장-폴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면서 한 말과 표리를 이룬다.

"작가는 자신이 하나의 제도로 전환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 그 전환이 아무리 명예로운 모습을 가진 것이더라도."

노벨상 상금이 아무리 크더라도 역대 수상자의 쌓여진 권위가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상의 권위가 지켜지지 못한다. 노벨상은 하나의 '권위의 은행'이다. 상을 주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관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받는 사람은 노벨상에 깔려 있는 권위를 나눠 갖고, 주는 사람은 거래를 통해 권위의 재고를 늘린다. 간디 같은 고객은 노벨상의 권위를 크게 늘려줄 영양만점의 손님이고, 그처럼 질 좋은 고객을 많이 잡으면 키신저 같은 엉터리 손님이나(베트남-미 평화협상의 공로로 키신저와 함께 1973년 평화상을 지명받은 레둑토는 "진정한 평화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오바마 같은 먹튀 손님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할 여유가 생긴다. 사르트르는 그런 거래를 거절한 것이다.

▲ 노벨상 메달에 새겨진 알프레드 노벨의 초상. 백년이 넘는 노벨상의 '군림'은 20세기 세계체제가 빚어낸 것이었다.

노벨상을 적절한 사람들에게 주었냐고 따지는 것은 그 사업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무기상에게 부당이득 취득 여부를 따질 때 사업 자체의 윤리성은 문제 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와 '맹목적 경쟁의 시대'를 반성하는 입장에서는 노벨상에 학문적-예술적-정치적 권위가 집중된 현상 자체에서 문제를 느끼게 된다.

노벨상이 만들어질 때는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그 경쟁의 열기 덕분에 노벨상의 흥행이 성공할 수 있었다. 노벨상은 올림픽대회와 함께 20세기를 특징짓는 사업이었다. 아직도 손님을 많이 끌고 있기는 하지만 사양 산업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전 노벨문학상 발표를 기다리던 한국 출판계의 긴장은 이제 옛일이 되었다.

노벨상의 '폐단'을 꼬집는 글 하나를 1997년에 쓴 일이 있다. 노벨상의 쇠락을 나 자신 예견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금석지감을 느낀다.

상중상(賞中賞) 노벨상

퀴리부인의 딸과 사위 졸리오-퀴리 부부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은 1935년. 그 다음으로 프랑스인이 화학상을 받은 것은 1987년의 일이다. 물리학상은 1929년 브롤리가 받은 뒤 1991년 젠느가 받을 때까지 60여년 사이에 1966년의 알프레드 카슬러가 유일한 프랑스인 수상자였다.

방사선의 분석을 통한 원자구조 연구로 물리학상을 받은 카슬러의 이름은 독일식이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로렌 지방 출신이니 프랑스로서는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건진 셈이다. 수상이 결정된 뒤 수상 이유를 무엇으로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카슬러의 대답이 걸작으로 전해진다. "그 논문을 영어로 발표한 덕분 아니겠습니까." 노벨상이 영어권에만 편중된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불만을 대변한 말이다.

상과 벌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당근과 채찍이니 인간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늘 있어 온 것이다. 그런데 벌의 종류는 가두기, 때리기, 죽이기, 재산 뺏기 등 몇가지 되지 않는데 상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무슨 까닭일까.

인간의 두려움은 모두 비슷하지만 원하는 것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은 가지각색이지만 굶주림은 똑같이 두려워하지 않는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와 영위하는 모든 활동에 상이 따르게 되었으니 상의 다양성은 바로 가치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달리기 잘해 받는 상, 공부 잘해 받는 상, 착한 일 해 받는 상이 모두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곧 가치의 다양성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노벨상이 다른 모든 상을 압도하는 막중한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가치관의 획일화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인간성의 다양한 발현 방법이 고르게 존중받는 분위기에서는 한 가지 상이 모든 사람의 선망 대상이 될 수 없다. 1964년 사르트르가 수상을 거부하며 "노벨상은 작가 정신을 제도 속에 옭아 넣는다"고 비판한 것은 바로 이 불건전성을 지적한 것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을 보면 평화상 수상자를 낸 나라가 제일 많고 다음으로는 문학상이다. 구미 선진국에 집중된 학술분야에 비해 평화상과 문학상에는 정치적 배려가 따르기 때문이다. 인구와 경제력에 비해 노벨상과 인연이 멀었던 사실을 놓고 우리가 반성할 것은 빈약한 학술 정책이다. 상 자체를 따내려 목적의식을 가지고 달려드는 것은 바로 노벨상의 폐단에 빠지는 길이다.

이 자리를 빌려 출판인들에게 광고 하나. 이그노벨상에 관한 책 두 권이 2002년과 2005년에 출판된 것이 있는데, 구해 보지 못했지만 재미있고도 유익한 책들일 것 같다. 비슷한 방향의 책을 구상하는 분들은 검토해 보시길. 그리고 혹시 번역 출판하게 된다면 번역자로 나를 고려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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