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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모두 성유보가 되겠습니다"

[포토스케치] 11일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故 성유보 선생 영결식과 노제

8일 타계한 한국 언론의 큰 별 故 성유보 선생의 영결식과 노제가 11일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오전 7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한 장례행렬은 8시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들러 노제를 치른 뒤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한겨레 신문은 선생이 초대 편집위원장(편집국장)을 역임한 언론사다. 수많은 원로, 현역 언론인이 참석한 가운데 9시 30분부터 서울광장에서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어 장례행렬은 만장을 들고 동아일보 앞까지 행진해 노제를 지냈다. 동아일보는 선생이 기자생활을 시작해 39년 전 '동아투위 사태'로 해직될 때까지 일한 곳이다. 선생은 끝내 복직되지 못했고 평생을 언론자유와 민주 언론을 위해 일해 왔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 11일 오전 故 성유보 선생의 노제 행렬이 서울광장에서 동아일보로 향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날 모인 추모객들의 일성은 오늘의 망가진 언론에 관한 것이었다. 선생이 평생을 바쳐 지켜려 했던 언론의 가치가 퇴보해 버린 현실에 대한 개탄이었다. 권력 감시 본연의 역할보다 굴종과 복종부터 배운 부끄러운 언론에 대한 배반감과 수치심에 관한 것이었다. 싸웠고 쫓겨났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 결국 스러진 동료의 배웅길이었지만 스스로 또한 끝까지 그러하리라는 확인이었다. 젊은 언론인이 목격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길과 눈빛으로 가리키는 충고이자 조언이었다. 백발 성성한 원로 언론인들은 하나 같이 결연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오늘의 언론이 비쳐 있었다.

이날 한겨레신문사에서 서울광장, 동아일보 앞에서 치러진 노제 행렬을 사진에 담았다.

▲ 한겨레신문사에서 치러진 노제. 뒤로 신문을 만드는 윤전시설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한겨레신문사 7층 편집국. 선생은 초대 편집국장을 포함해 두 번의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호상인사하는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회장(왼쪽)과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넋풀이 ⓒ프레시안(최형락)
▲ 권오훈 KBS 새노조 위원장은 이날 추모사에서 "이명박 정권 5년과 박근혜 정권 2년 동안 모두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때 성유보 선생은 투쟁의 현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고, "우리 언론인 모두 성유보가 되겠다"는 말로 결의를 드러냈다. ⓒ프레시안(최형락)
▲ 눈시울을 붉힌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그는 조사에서 "고인은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포로수용소 같은 언론 환경에 괴로워하는 후배들을 보고 가슴 아파했다. 우리는 1970년대 유신독재시절 동아투위 위원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되새기며 현역 언론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며 과감한 싸움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헌화하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장례행렬은 고인이 언론 자유를 외치다 해직당한 동아일보 앞에서 노제를 치렀다. '내릴 수 없는 깃발'이라고 쓴 만장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 동아일보 앞 노제. ⓒ프레시안(최형락)
▲ 동아일보 앞 노제. ⓒ프레시안(최형락)
▲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전 동아투위 위원장). 그는 "박정희 정권이 광고탄압을 할 때 국민들이 성금을 들고 달려와 격려 광고를 하던, 국민의 사랑을 받던 1등 신문이 동아일보였다"면서"그러나 잇속을 차리기 위해 134명을 해고한 동아일보는 권력의 품에 안겨 3류 신문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지금도 걸핏하면 색깔론을 들먹이며 국민을 위협하는 흉기가 돼 있다"고 비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함세웅 신부. 그는 영결식 조사에서 "저는 성유보 선생과 동아투위, 조선투위 기자들과 지학순 주교, 민청학련 사건에 투신하신 모든 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성당에서 밖으로 나오게 됐다"며, "성유보 선생을 비롯한 고난의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종교인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낸 길잡이이며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동아일보 앞 노제에 참석한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가운데) ⓒ프레시안(최형락)
▲ 백발 성성한 원로 언론인들이 오늘의 언론을 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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