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0일 남한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 전단을 향해 총격을 가하고 이에 남한 역시 대응 사격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 3명이 남한을 방문하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던 남북관계가 다시 긴장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10일 오후 3시 55분 경 부터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남한 민간단체가 날린 대북 전단을 향해 14.5㎜ 고사총 수발을 발사했다. 고사총이란 총격은 공중에 있는 적이나 물체를 격파하기 위한 이른바 '대공용' 무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후 4시 50분 경 민통선 일대 남한군 부대의 주둔지와 삼곶리 중면 일대에 고사총탄 수 발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이후 대응사격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오후 5시 30분부터 경고방송을 진행했으며, 이어 오후 5시 40분 경부터 북한군 GP 일대에 K-6 기관총을 이용해 40여 발의 대응사격을 가했다고 합참은 밝혔다.
대응사격 이후 10여 분이 지난 오후 5시 50분 경 북측으로부터 남한군 GP 상공으로 총성 수발과 함께 개인화기 총탄이 날아온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남한은 다시 북한군 GP 지역으로 소화기 9발을 다시 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양측 교전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며, 군은 오후 6시 10분 경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남북 양측 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공총격을 가한 것은 남한 민간단체가 보내는 대북전단, 이른바 '삐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이날 오전 정부의 자제요청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 장을 북측으로 살포했다. 또 이날 오후 2시 경에는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인 이민복 씨가 비공개로 대북전단 132만장을 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앞서 지난 9일 '남조선당국은 상대방을 중상모독하는 삐라살포놀음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만일 남조선당국이 이번 삐라살포란동을 허용하거나 묵인한다면 북남관계는 또 다시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것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도발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날 상황 발생 직후 내부회의를 즉각 소집해 북측의 의도와 상황의 심각성 등을 파악하고,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오후 6시 이후 북측의 추가 특이동향은 파악되지 않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는 개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전단 총격' 초강경 대응 이유는?
북한이 이날 '대북 전단 총격'이라는 초강경 대응을 벌인 것을 두고 '제한된 도발'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당장 인명 손실은 가져오지 않으면서 향후 대북 전단 살포가 가져올 수 있는 피해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해 우리 사회 내부의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제한된 도발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설사 북한의 이번 총격이 제한적인 도발이라 할지라도 남측을 향해 총격을 가한 것은 강도 높은 군사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향후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이같은 강경한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정 수석연구위원은 남북 대화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이 줄어드는 배경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한해 일시적으로 남북대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남한 정부가 금강산 관광 대가로 현금이 아니라 현물을 지급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거나 5.24 조치 해제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언급이 나오면서 북한의 기대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과 (이번 행위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및 대남 비서가 인천 아시안게임을 위해 남한을 찾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남북관계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10월 말에서 11월 초로 예정돼있는 2차 남북고위급 접촉도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