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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겁에 질려 무일푼으로 나가지만…

[기고] 무덤에 앉은 자의 소회

판사는 카페 ‘라테킹’을 강제집행하도록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9월 25일 일이다. 퇴직금에 대출금까지 보탠 ‘라테킹’은 겨우 3년 만에 모든 게 끝났다. 쫓겨날 일만 남았다. 법원 집행관은 얼마나 많은 용역들을 끌고 와 강제집행을 단행할 것인가. 청주에서 대형 하수도 도관을 생산하는 주)동양타일, 주)쿼리스톤 회장이기도 한 건물주는 이미 여러 차례 세입자를 쫓아낸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집행관에게 30명의 용역을 붙여줄지, 아니면 50명의 용역을 붙여줄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두렵다. 집행관은 어제 오지 않았다. 오늘 저녁일까, 아니면 내일 아침일까. 아내는 불안과 떨림을 참을 수 없다며 집행관에게 연락을 취했다. 집행관은 “서울빌딩 라테킹이요? 독한 건물주 만나셨네. 10월 중순에 갈 테니 그때까지 편히 장사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10월이 시작되면서 단 하루도 ‘라테킹’을 비우지 않고 있다. 밤에도 ‘라테킹’에서 잠든다. 그런다고 용역들을 앞세운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막기는커녕 그냥 묵사발이 된 채 집기를 들어내는 꼴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길밖엔 없겠다. 결국 그리 될지라도 벌써부터 카페 ‘라테킹’을 포기할 순 없다. 여긴 내 무덤이 돼야한다.

여기서 들려나가면 살 길도 없다. 직장을 그만 둘 때는 퇴직금이라도 있었다. 퇴직금으로 모자라 대출금까지 들인 ‘라테킹’에서 들려나가면 보리바쿠 깔고 길바닥에 나앉는 길 외에 어떤 길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서울빌딩 건물주는 3층짜리 내 건물 허물고 14층으로 재건축할 계획인데 웬 말이 많냐고 한다.

매월 3층 건물에서 들어오는 임대료가 7000만 원, 14층으로 올리면 임대료는 매월 20억 원을 상회한다. 그러니 재건축은 필연일 수 밖에! 강제집행하기 전에 군소리 달지 말고 모조리 나가라, 그게 건물주의 으름장이다. 다른 세입자들은 겁에 질렸거나, 철거민 소리를 듣는 치욕을 감내할 수 없다고 한다. 권리금 4억에 인테리어 비용 1억을 들인 2층의 ‘와라와라’ 레스토랑은 영업을 시작한 지 1년5개월 만에 그냥 나간다. 1층의 ‘교촌치킨’은 1년8개월 만에 그냥 나간다. 가수 L이 주인이라고 해서 소문난 ‘팔자막창’은 2년7개월 만에 그냥 나간다. 1억9000만 원을 들인 2층의 ‘생맥주창고’도 그냥 나간다. 나머지 상가들도 예외 없이 그 길을 따른다. 오직 하나, ‘라테킹’만이 이대로는 죽어도 못 나간다고 선언했다.

▲ ‘라테킹’ 전경. ⓒ엄홍섭

자영업자의 처지가 이런데도 지난 9월24일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세월호특별법을 희석시키느라 법무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보면 임차인은 5년 동안 영업할 권리를 갖는다. 그건 기존의 상가법 10조와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5년 이내에 임차인을 쫓아낼 경우 건물주가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는 것뿐이다. 재개발, 재건축일 경우 예외로 둔다는 단서조항도 그대로다.

어쨌든 가난뱅이 돈 빼먹기 급급한 박근혜 정부조차 5년도 안 된 세입자를 쫓아내는 건 죽으라는 거니까, 건물주가 적정한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 말고 상가법 개정안은 모두 그대로다. 상가세입자를 영구 보호하는 일본이나 영국의 경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상가세입자를 14년 이상 보호하는 프랑스나 30년 이상 보호하는 독일의 경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단서조항 없이 10년 이상은 보호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5년은 변함없이 5년이다. 심지어 재건축으로 쫓겨나는 ‘라테킹’처럼 단서조항조차 그대로 두었다.

직장을 그만 두거나 직장에서 쫓겨난 자들의 마지막 몸부림, 그게 자영업이다. 오늘 이 나라 자영업자는 700만 명에 이른다. 자영업자당 두 식구라고 해도 1400만 명에 이른다는 얘기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앞을 기약할 수 없는 기형사회가 돼버렸다. 하도 식상한 얘기지만 이제라도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그건 생의 막바지에 몰린 자영업자의 몫이 아니다. 개혁은 노동 없이 배불리는 건물주의 몫이 돼야 한다. 개혁은 노동자를 살벌하게 자영업으로 내몰아대는 기업의 몫이 돼야 한다.

밤이 깊어간다. 기온이 무섭게 하강한다. 10월의 한기 속으로 또다시 두려움이 밀려든다. ‘라테킹’ 밖 오가는 행인들이 모두 용역만 같다. 몸까지 덜덜 떨린다. 비정한 세계 안에서 밤은 순순히 깊어간다. 오직 혼자다. 여기는 내 무덤이다. 길바닥에서 보리바쿠를 깔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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