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두부 자르듯…
행사장을 채운 6000여 명의 지지자들의 정 중앙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줄을 지어 물리적인 충돌의 사전 차단에 나섰다. '질서유지' 완장을 찬 이들은 행사장 전체에 약 150여 명이 투입됐다.
한 경호원은 "우리는 한나라당 당원이 아니다"면서도 소속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 책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경호원은 "우리는 '대한특수경호대' 소속"이라고만 밝혔다.
삼엄한(?) 경계 덕에 이날 연설회에서 별다른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막대풍선, 피켓, 꽹가리, 북 등의 응원도구에 대한 반입을 일체 금지하겠다는 당 지도부의 지침도 대체로 잘 지켜졌다.
"박근혜가 깨끗하냐" vs "땅 투기꾼 물러가라"
경호 인력에 의해 정확이 양분됐으나 양 진영의 지지자들은 관중석 곳곳에 '지휘자'를 배치하는 등 뜨거운 열기 속에 조직적인 응원전을 벌였다.
운동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도타기' 응원은 경호원들의 '저지선'에 이르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상대 측 후보가 입장할 때도 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사전행사에서 강재섭 대표가 단상에 오르자 이명박 후보 측의 지지자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 박근혜 후보 측의 지지자들은 박수도 치지 않은 채 냉담한 반응을 보내는 등 분위기는 크게 엇갈렸다.
박 후보 측의 일부 참석자들은 "강재섭 물러가라", "입 다물게 해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 '경선 룰' 논쟁부터 최근의 '연설회 일정 논란'에 이르기까지 '당 지도부의 이명박 쏠림현상'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박 후보가 연설에서 "깨끗한 후보가 돼야 한다"면서 각종 비리의혹에 휘말린 이명박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하자 박 후보 측의 지지자들은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한 반면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에선 "박근혜가 깨끗하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이명박 후보가 연설에서 "저 이명박을 죽이는 일은 '경제 죽이기'다. 같은 식구끼리 상처를 내선 안 된다"며 박 후보 측을 겨냥하자 이 후보 측 지지자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박 후보 쪽에선 "땅 투기꾼 물러가라"는 고함이 나오기도 했다.
"씁쓸하지만…어쩔 수 없었다"
양 캠프의 소속 의원들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행사 시작 전 박근혜 캠프의 한선교, 김재원, 송영선 의원은 촬영기자들을 위해 행사장 가운데 마련된 스탠드에 올라 율동을 곁들인 열정적인 응원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명박 캠프 측의 한 의원은 "차분하게 진행하자더니 저게 무슨 짓이냐"고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도 캠프에 소속된 일부 의원들과 실무진들은 무전기까지 동원해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관리하며 조직적인 응원전을 이끌었다.
행사장에는 "8월20일, 화합과 승리의 한나라가 되는 날"이라는 대형 플랭카드가 걸렸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양 진영의 지지자들이 보여 준 '극단적 분열상'을 과연 경선과정에서 봉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 씁쓸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이렇게 전문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양 진영을 갈라놓지 않으면 어떤 사고가 발생할 지 장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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