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 9월은 특별한 달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1년 9월 24일, <프레시안>은 처음 세상 빛을 봤다. 척박한 언론 환경 속에서 태어난 <프레시안>은 아스팔트 도로 사이에 핀 작은 새싹처럼 늘 위태로웠다. 매년 돌아오는 게 생일이건만, 기자들에게 <프레시안>의 생일이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때문일 터이다. "올해도 죽지 않고 버텨냈구나" 하는.
올해도 <프레시안>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 생일은 의미가 더욱 크다. "올해도 죽지 않고 버텨냈구나"라고 안도할 식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번 생일엔 지난 1년간 간난(艱難)을 함께한 프레시안의 '또 하나의 가족', 바로 소비자 조합원과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대의원 회의에서는 직원 조합원, 소비자 조합원들이 고루 참여한 가운데 지난 1년을 함께 견뎌낸 감격(?)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 결과 '일일 호프'를 개최하기로 의견이 모였다. 조합원들끼리만 자축할 게 아니라, 예비 조합원들을 일일호프에 초대해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을 알리자는 것.
대의원회의 이후 직원 조합원 2명, 소비자 조합원 7명으로 기획단이 꾸려졌다. 기획단은 요새 휴대폰 메신저에 대화방을 만들고 누굴 초대할지, 어떤 이벤트를 할지 한창 격론을 벌이는 중이다. 행사 날짜가 10월 18일이라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가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소비자 조합원 대표 한 명을 소환했다. 2030 조합원 모임에서 '교주'로 불리며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종길 조합원(33)이다. 일일호프 분위기를 미리 느끼기 위해, 지난 5일 안 조합원과 낮부터 술잔을 기울였다. 편집자.
"일일호프 이름은 '닥치고'. 박세열 기자 연행도 각오"
프레시안 : 왜 일일호프를 열기로 했나.
안종길 : 처음엔 조합원들끼리 모여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는데, 기왕이면 <프레시안>에도 수익이 될 만한 이벤트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나온 아이디어다. 또, 조합원들끼리만 얼굴 보는 것도 좋지만, 조합원이 아닌 분들을 초대해서 프레시안 협동조합을 알리면 더욱 의미 있지 않겠나.
프레시안 : 일일호프 이름은 정했나.
안종길 : 정했다. '닥치고' 일일호프다.
프레시안 :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겨냥하는 이름이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데?
안종길 : <프레시안>을 떠올리면 발랄한 것보단 무게 있는 느낌이 좀 들지 않나. 그래서 이번만큼은 좀 발랄하게 가보자고 농담처럼 얘기하다가 나온 게 '닥치고'다. 정치적인 의미는 음….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알아서 생각하시라.
'닥치고'라는 이름에서 어떤 정치인이 연상된다면, 그래서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해도 괜찮다. 기획단 중 한 명인 박세열 직원 조합원이 연행을 각오하고 있다(웃음). 만일 그런 상황이 생기면 박세열 조합원 보석금 마련을 위한 일일호프를 또 기획할 거다. 그렇게 계속 일을 벌여도 좋을 것 같다.
프레시안 : 티켓이 오늘 나왔더라. 사무실에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던데. 어떻게 다 팔 건가.
안종길 : 기획단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티켓을 팔 것인가. 아니면 초대장 형식으로 할 것인가. 만약 티켓을 팔 거면 보여줄 게 있어야 하는데. 무리수를 마시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파는 건 기자들의 몫…. 오지랖 좀 부탁….
제가 대학교 때 일일호프를 많이 해봤다. 대학 행사인데도 순이익을 250만 원 찍었다. 그때 노하우를 살려보겠다. 또, 제가 이런 모임을 몇 번 해봤는데 사람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자리가 필요한 것 같더라. 그런 수요가 있고, 제가 뚫고 있는 모임도 있다. 너무 걱정 말라.
프레시안 : 이벤트가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 걸 준비하고 있나.
안종길 : 우선 경매 이벤트. 목표물은 박원순 서울 시장의 양복 재킷이나 예전에 화제가 됐던 다 닳은 구두. 안 되면 펜 하나라도 주워와 달라. 이런 것도 있다. 정치부 기자 생활 6년을 경험한 박세열 조합원의 때 묻은 손…. 그리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등 토크쇼 섭외를 하고 있다. 또 이대희 직원 조합원이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를 섭외했다더라. 간간이 노래 공연이 있을 거다.
프레시안 : 안 조합원도 밴드 준비 중이지 않나. 보컬이라고 들었는데, 일일호프에서 노래 부를 건가.
안종길 : 시키면 노래 하나 정도는….
프레시안 : 또 재밌는 게 뭐가 있나.
안종길 : 잔재미를 주려고 한다. 이를테면 안주 이름. 제일 웃긴 게 '댓글 부대찌개'(기자 웃음). '산소 돈까스'도 있고…. 호프집에서 부대찌개가 안 된다고 했는데, 서 조합원이 웃기다고 하니 제가 사장님을 설득해보겠다.
프레시안 : 그날 저의 임무는 무엇인가.
안종길 : 평소대로 술 열심히 마셔달라(웃음). 독자들도 기자들과 술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걸 원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몇 명이나 왔으면 좋겠나.
안종길 : 이런 거는 뻥튀기를 할수록 좋다. 지금 조합원 수의 딱 두 배만 왔으면 좋겠다.
"뱃살은 늘었지만… 조합원 생활, 제 도시 생활의 원동력"
프레시안 : 안 조합원은 일일호프 기획단 일도 하지만, 2030 조합원 모임을 거의 이끌다시피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 2030 조합원들 사이에서 '교주'라고 불리던데, 이유는?
안종길 : 2030 조합원 대화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아무래도 좀 썰렁했다. 그래서 아는 컴퓨터 사용 팁 같은 걸 던졌더니 사람들이 '오~'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제가 스스로 '반신반인'이라는 '드립'을 치면서 그렇게 됐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조합원이 되고, 또 2030 모임 활동을 한 뒤 자신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안종길 : 우선 겁나게 재밌다. 물론 삶의 질은 더욱 피폐해졌고, 술로 인한 뱃살은 늘어나고 있지만. 저에게는 도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정치적 이야기도 가감 없이 풀어낼 수 있고 다들 관심사도 비슷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 버틸 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기 힘들지 않은가. <프레시안> 협동조합, 특히 2030 조합원 모임은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이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요새 부쩍 '독신 협동조합'이라는 걸 만들자고 부추기고 있다. 정확히 뭐하는 조합인가.
안종길 : 말 그대로 독신들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거다. '셰어하우스'처럼 한 공간에서 살면 더욱 좋고. 혼자 살면 자기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조합원들끼리 아침마다 서로 공동 벨을 만들어서 누르든 해서 생사 확인을 하는 거다. 음식도 나눠 먹고. 처음에는 농담처럼 한 얘긴데 점점 진지하게 제 머릿속에선 상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프레시안 : 2030 조합원들과 다들 친하지만, 유독 최형락 직원 조합원과 끈끈한 연을 맺고 있다. 부부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왜 그렇게 붙어 다니는 건가.
안종길 : 사람이 참 때 묻지 않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이 말을 굉장히 진지하게 했다. 편집자). 최형락은 뭐니뭐니해도 '사진'이다. 최 조합원의 사진을 보면 무언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원래도 사진에 관심은 있었지만, 최 조합원 기사 사진이나 사진전 전시된 작품 보고 저도 거금을 들여 사진기를 사게 됐다.
요새 제가 최 조합원 제자가 됐다.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남들이 안 찍는 사진을 찍고 싶다. 어제도 새벽 세 시에 술 마시고 동네에 왔는데 종이상자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봤다. 할아버지가 종이상자를 들고 그쪽으로 걸어오더라. 그걸 보고 한참 서서 셔터를 눌렀다. 같은 인간이고, 같은 국가, 같은 지역에 사는데 같은 시간에 나는 흥청망청 놀고 오고, 저 할아버지는 왜 저 고단한 일을 할까.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프레시안 : '최형락 제자' 안종길의 사진이 궁금하다. 일일호프 때도 사진 찍어달라. 노래도 기대하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