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한 파업'도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을 확대하는 것이 헌법상 기본권리인 노동자의 파업권을 심각하게 제한할 뿐만 아니라, 예고된 파업은 업무방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스스로 허무는 모순된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대법원 3부는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을 이끈 이모(46) 씨 등 전국철도노동조합 간부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3건의 원심을 잇따라 깨고 지난달 20일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관련 기사 : 대법원, 철도파업 잇따라 유죄 취지 파기 환송)
철도노조는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른 한국철도공사의 인력 감축 등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고,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원심은 이들에게 적용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했다. 철도노조가 파업 전 미리 계획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사측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예고되지 않은 파업'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던 판례에 따른 것이다.
당시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격성'이란 개념으로 요약된다. "파업이 회사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과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당시 판결은 업무방해죄가 노동자의 파업을 막는 주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의 '전격성'이란 기준은 인정하면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재판부는 "회사 측이 노조의 파업 예고에도 실제 강행을 예측할 수 없었고, 당시 파업으로 한국철도공사의 사업 운영에 심대한 혼란과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며 업무방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요약하자면, 노조가 파업을 수차례 예고하고 사측이 대비도 했지만, 사측이 실제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유죄라는 것이다.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스스로 뒤집어…법원이 법원조직법 위반했다"
이번 철도노조 판결로 법원이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까다롭게 했던 판례를 스스로 뒤집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맡고 있는 권두섭 변호사는 2일 오후 민주노총과 정의당 심상정·서기호 의원실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요지를 인용하는 등 당시 판결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결론에 있어선 전혀 배치되는 주관적 결론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사용자인 철도공사가 (파업을) 예측해 비상수송대책을 세우고 대체인력을 준비해 심지어 파업 자제를 호소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대법관이 '예측하고 싶지 않은' 파업이었던 것"이라며 "대법관의 옹호받기 어려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념이 불러온 참사가 이번 판결"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사측이 '몰랐다'고 우기면 모든 파업이 불법이 되는 것이란 지적이다.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대법관 4명만 참여하는 소부의 해석에 따라 뒤집힌 것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 변호사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다시 변경하려면 법원조직법 7조에 따라 다시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이 사건 판결은 법원조직법을 위반해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고, 이는 대법원이 스스로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번 판결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전원합의체로 다시 회부해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측 '파업 대비 문서' 법원 제출…"재판부, 증거 자료도 안 봤나"
노동계 역시 "사측이 파업을 예측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자료만 봐도 철도공사가 노조의 파업을 예측해 대비했다는 증거가 충분했음에도, 재판부가 "사측이 실제로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선고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증거 자료도 안 봤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철도공사 노사협력팀장 전모 씨가 노조의 순환파업 직전인 2009년 10월30일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보면, "11.5일 부산·대전·영주·순천 지역 파업, 11.6일 서울지역 파업"이라고 명시해 파업의 구체적인 날짜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또 문건의 '공사 조치 사항'엔 △비상수송 대책 수립 시행(10.30) △필수유지업무 근무자 지명 통보 시작(10.30) △언론 보도자료 배포(10.30) △쟁의행위 관련 관계기관 비상수송대책회의 참석(10.29) 등 구체적인 공사의 대응책도 담겼다.
특히 철도공사는 11월4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철도노조가 11월5일 서울 외 지역, 6일 서울지역에서 불법 파업을 벌이지만 열차 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자료는 모두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로 법원에 제출됐다.
2009년 파업 당시 사건을 대리했던 고경섭 노무사는 "철도노조는 경고파업과 전면파업을 예고했고 철도공사는 그 직전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등 오히려 파업을 유도하는 식으로 도발했다"면서 "철도공사가 파업을 하리라고 예상치 못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려우며, 교섭 통로가 막혀 있는데 노조 입장에선 파업 외 어떤 수단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노동계 반발…"아예 파업하지 말라는 얘기"
이번 판결이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권두섭 변호사는 "철도노조는 필수유지업무를 100% 유지하면서 파업을 진행했고, 철도공사가 투입하는 대체 인력의 업무수행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업권 보호와의 균형을 이루는 범위 내에서 쟁의권을 행사했다"면서 "당시 파업이 공익을 과도하게 침해하거나 사용자의 사업 운영의 '막대한 손해 또는 심대한 혼란'을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재판부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철도파업 당시 대체인력 4300여 명이 투입됐으며, 필수유지업무 인력 9600여 명이 유지됐다. KTX와 광역전철은 파업 전 기간 100%, 일반 여객은 70% 가까이 유지됐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필수유지업무를 모두 지키며 예고된 파업을 해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면, 아예 노조에게 파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박근혜 정권에서 보수화된 대법원이 헌법상 권리인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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