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안토니오 알타리바 글, 킴 그림, 길찾기, 2013)의 안토니오 알타리바(Antonio altarriba, 스페인) 작가와 <체르노빌의 봄>(길찾기, 2013)의 엠마뉘엘 르파주(Emmanuel Lepage, 프랑스) 작가가 8월 15일 부천 만화박물관 인터뷰룸에 모여 앉았다.
알타리바 작가는 바스크대학교 불문과 교수이자, 스페인어권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소설가다. 그가 글을 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원제 El Arte de Volar)은 2010년 스페인 만화대상을 수상했다. 한 노인의 자살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주인공 안토니오의 삶이 스페인 내전과 세계대전을 통과하며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준다. 알타리바 작가의 아버지를 다룬 자전적 작품이다. 합법으로 가장한 살인, 바로 전쟁 속에서 서로를 죽이며 살아야 했던 민중의 삶과 물신주의가 팽배했던 스페인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관련 기사 : "빨갱이 죽어야"라던 아버지께 이 만화를 권하다)
르파주 작가는 <게릴라들>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만화가다. 그는 '행동하는 예술'을 추구하는 동료들(데생악퇴르: 활동하는 데생)과 함께 체르노빌에서의 작업을 계획, 4년에 걸친 작업 끝에 <체르노빌의 봄>(원제 printemps a Tchernobyl)을 세상에 내놓았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지옥이라고, 지옥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핵 참사의 비극 속 인간 존재의 고귀함을 표현해냈다. 1986년 4월 이후 22년간 봄이라고는 없을 것으로 믿어왔던 체르노빌에도, 그곳만의 봄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관련 기사 : 봄은 방사능의 계절! 한국은 자유로운가?)
두 작가가 한국을 찾았다.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고,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았다. 한국 사회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화백인 손문상 작가와 최규석 작가가 이들을 만났다. 손문상 작가는 이라크 전쟁 르포집 <바그다드를 흐르다>를 그리고, 인권만화 <사이시옷>, <어깨동무> 등에 작품을 실었다. 최규석 작가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자화상인 <대한민국 원주민>을 그리고, 현재 네이버에 웹툰 <송곳>을 연재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작가로서의 고민을 서로 털어놓았다. 신자유주의, 전쟁, 표현의 자유 등,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대담 전문. 편집자
손문상 : 근본적인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처한 현실에 대해 작가로서, 기억을 기록해내는 사람으로서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타리바 : 내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잔혹한 경험을 자주 겪은 사람은 트라우마가 심하다. 집단수용소와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심리적인 문제, 수치심 같은 것이 섞여 있다. 후손들이 그런 고통을 받길 원치 않기 때문에 추한 역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그런 기억을 정리하는 사람이 본인도, 아들도 아닌, 손자 세대인 경우가 많다. 집단 고통의 기억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증언자가 있고, 또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분도 문제다. 내가 삶과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중 가짜 기억들과 싸우는 일이다.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스페인에서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에 의해 추방된 이야기였고, 사람들이 경멸조로 말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왜곡된 기억들과 싸울 필요가 있었다.
르파주 : 만약 아버지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알타리바 씨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알타리바 :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경우, 돌아가시기 전에 기억을 정리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당신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200페이지 정도 되는 원고를 남겼다.
르파주 : 아버지가 하고자 한 얘기를 책으로 만든 거군요.
알타리바 : 그렇다. 아버지의 자살은, 만약 자연스럽게 돌아가셨다면 내게 주지 않았을 무엇인가를 내게 줬다.
손문상 : 그런 주제에 대해 최규석 작가도 아버지를 다뤘다. 한국에서 우리 부모 세대는 원치않았던 전쟁, 원치 않았던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저희 아버지도 알타리바 작가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데(1910년대 생), 워낙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삶을 기록해내지는 못했다. 내 아버지는 일제 식민지 시절에 결혼하셨고, 북한 쪽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내려와 남쪽에서 나를 낳았다. 부모님의 고향은 지금 갈 수 없는 북쪽이다. 지금 한국의 삶은 그런 토대 위에서 세워져 있지만, 과거를 돌아보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 같다. 그 토대 위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야기들을 찾아, 지금 우리 삶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짚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 같다.
알타리바 : 최규석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고 들었다. 이 작품(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그렸을 때 아버지와 관계는 어땠나. 어떻게 아버지의 삶에 들어가게 됐나?
최규석 : 나는 요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다. 아버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기간이 1년 정도 있었다. 1년 동안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데 불편한 상태로 지낼 수 없지 않나. 정치 이야기처럼, '지금'을 이야기하면 우리 부자는 싸우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즐겁게 얘기할 수 있고 내가 화내지 않을만한 얘기는 아버지의 옛날 얘기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본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산업화 기간을 살아왔다. 한국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셨던 분이다. 제가 아버지에 대해 크게 감정 변화를 겪었던 것은 아버지 세대의 젊은 시절과 지금 시절이 전혀 다른 세계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다. 예를 들어 밀림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갑자기 뉴욕에서 일상을 영위해가야만 하는 상황과 같은 것 아닌가.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작품을 그렸다.
알타리바 : 아버지와의 관계가 작품을 만든 후, 바뀌었나?
최규석 : 그런 대화를 계속하면서 친해진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아버지 자체를 내 삶에서 밀어냈었다면, 지금은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가 몇 군데 마련된 상태다. 예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도 글을 쓸 수 있는 교육을 많이 받으셨다면, 좀 더 제 작품이 철학적으로 깊이를 가질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도 있다. 아버지의 삶 속에서 역사의 단편들을 잡아내며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창작 안에서 현실을 어떻게 그려내야 하는가?
손문상 : 알타리바, 르파주 두 작가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동아시아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있었던 주요 사건과 유사하고 일맥상통한 측면이 있다. 알타리바 작가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서 나온 배경처럼, 한국에서도 이념을 둘러싼 잔악한 전쟁들이 있었다. 르파주 작가의 <체르노빌의 봄>에서 묘사된 것처럼, 핵 문제도 큰 이슈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 때 핵무기가 실제 사용됐다. 후쿠시마 사태는 체르노빌 사태에 비견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현재 중국에는 우리 서해와 맞닿은 인접 지역에 핵발전소가 21개가 있다. 건설 중인 핵발전소만 28개가 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리원자력 발전소는 가동 연한이 끝났는데, 정부는 사용 가능 시기를 연장시키려고 하고 있다.
르파주 : 프랑스에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원전 수명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시켰는데, 이것을 최근에는 무려 50년으로 연장시키려 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핵발전소의 안전성, 신뢰와 관련된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 온 지는 일주일도 안 됐는데,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한국 사회 안에 어떤 큰 저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청광장처럼, 사람들이 저항하고 있는 장소들에 가봤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참가자들도 저에게 한국 사회의 이슈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한 그 안에서 (예술가들이)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이 창작 안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알타리바 : 한국에는 굉장히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불만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시민들과 사회 지도층 사이에 균열이 큰 것 같다. 프랑스는 조금 덜하겠지만, 스페인에서도 점점 더 지도층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처럼 스페인에서도) 사람들이 과연 정부가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게 맞는가, 소수의 엘리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손문상 : '창작 안에서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셨는데, 한국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런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작가로서 우리의 현실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작품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 시사만화는 인기가 떨어진다. 최규석 작가가 그린 노동 운동 관련 만화도 '명랑물'에 밀려 잘 읽히지 않는 현실이 있다.
르파주 : 그렇다. 우리는 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굉장히 적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독자들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밖으로 나갈 때는 만화 독자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독자를 끌어오도록 해야 한다.
최규석 : 프랑스 사정도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웃음) 일본 만화 같은 스타일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르파주 : 사람들은 모험과 유머, 코믹,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프랑스에서도 일본만화는 30~40%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매우 크다. 어릴 적 만화 독자층이었던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 독자층으로 남아있지 않게 되는, 어릴 적부터 성인까지 독자층이 죽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림을 보여주자 그가 외쳤다 "이것이 체르노빌일 수는 없어"
최규석 : 르파주 작가가, 한국에 와서 사람들의 분노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사회적 문제들을 정치적 영역이나 시민 사회 영역에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이 별로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그 때문에 문화 영역에서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의 창작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사람들이 너무 정치적으로만 받아들여서 그에 관련한 질문만 하는 불편함도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에서 그런 느낌들을 받지는 않았나.
르파주 : 나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나는 프랑스에서 핵에 오염될지 모르는 아이들을 돕고 있듯, 그런 운동을 하는 기구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체르노빌에 크로키를 그리기 위해 파견됐었다. 우리는 한 반핵 단체로부터 여행비, 식비 지원을 받았다. 우리는 활동가들의 긴 연결고리의 맨 끝(현장)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체르노빌에 가서 크로키를 그려오면 활동가들은 그 그림을 팔아 체르노빌의 참상을 더 널리 알리게 되는 시스템이다. 그 기구의 회장은 여러 군데에 지원을 요청하며 체르노빌 크로키북 프로젝트를 설명했을 것이다. 거기에 동의한 사람들이 지원을 한 것이다. 즉 우리가 체르노빌을 향해 출발할 때에는, 우리가 뭘 그려야 할지 이미 결정돼 있었던 것이다. 출발 전에는 저도 그런 목적에 동의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것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행동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고, 체르노빌에 가서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체르노빌에 도착한 후, 나는 사람들이 내게 말했던 것(참상)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다른 것을 봤다. 질문이 생겼다. 내가 보는 것을 봐야 하는지, 사람들이 내게 말한 것을 봐야 하는지. 여기에서 저는 운동의 담론과 창작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최규석 :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르파주 : 예술적 창조가 현실보다 덜 끔찍하게 현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에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그리려고 했던 모습들은 크로키북에 담지 못했다. 내가 체르노빌에 가서 그렸던 것을 보여줬을 때 회장의 반응은 '이것은 체르노빌일 수가 없어'였다. (웃음) 체르노빌에서 만든 크로키북을 가져왔을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지원금을 댄) 그들이 원한 것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싸워야 했다는 점이다. 몇 년 후에는 그 갈등을 주제로 다시 만화책을 내기도 했다. 제 생각에 예술 작품은 정치적 의견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나에게 '이 책의 메시지가 뭐냐'고 묻는데 저는 메시지가 없다. 사람들에게 <체르노빌의 봄>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책에서 내가 얘기할 진실은 없다. 창작이라는 것은 똑같은 과정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알타리바 :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이야기들은 매수되고 조작돼 있다. 자유롭게 그리는 것만큼, 자유롭게 말하는 게 필요하다. 이야기 하나에는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그런 왜곡, 그리고 조작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에 갔다면 같은 사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르파주 : 예술 작업, 창작 작업은, 그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같은 시점에 진행될 수가 없다. 핵 문제, 방사능 문제는 특히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체르노빌 사건이 막 발생했을 당시의 이야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후쿠시마에 가면 참사가 났을 당시와 또 다른 이야깃거리들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매수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싸워라!
손문상 : 창작 작업을 할 때 항상 걸리는 문제가 있다. 과거 신문사 재직 시절에는 내가 그리고 싶은 내용과 '윗선'이 원하는 내용이 다를 때가 많았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걸리는 문제이기도 할 텐데,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시사만화를 통제하고 억압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경제 권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광고주 때문에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 하는 갈등 위에 서게 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얘기를 해보자.
알타리바 : 스페인에는 명확하게 검열이 있다. 보이는 검열과 보이지 않는 검열이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스페인 왕실을 풍자하는 만평을 그린 작가가 신문사를 그만둬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작가는 물론 다른 곳에서 매체를 만들어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손문상 작가 말처럼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어떤 라디오 방송이 큰 기업체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면, 그 방송은 압박을 받게 된다. 그런 일들이 많다. 그래서 민중들의 고민에 정확히 답하는 미디어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는 좀 다를 것 같다.
르파주 : 언론 자유와 관련해 우리는 매우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시사만화 세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내 작품을 누가 금지시킨다면, 다른 이름으로 출판해버린다. 또 금지하면 또다시 출판한다. 그런 식으로 저항을 한다. 언제까지고 할 수 있다. 시사만화 작가들도 프랑스의 투쟁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탄압을 받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970년에 그런 언론 검열의 마지막 사례가 있었다. 드골 장군이 죽었을 때인데, 당시 한 신문이 드골 장군의 죽음을 시골 촌부의 죽음으로 비하하는 제목을 달았다. 신문이 나가자마자 정부는 검열을 했다. 그 신문은 프랑스에서 규모가 큰 신문 중 하나였다. (1970년 11월 16일 드골이 세상을 뜨자 주간지인 <아라키리 엡도>는 '콜롱베의 비극적인 무도회 : 한 명의 사망자 발생'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콜롱베는 드골의 고향이었고, 마침 콜롱베에서는 몇 주 전 무도회에서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즉 '전직 대통령 사망' 사건을 시골 촌부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 비유한 것이었다. 이 제목과 관련한 논쟁, 그리고 정부의 검열에 대한 논쟁 등이 뜨거웠다고 한다. 편집자주)
손문상 :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한 신문사에서 일을 할 때였다. 2002년도 겨울이었는데, 한파가 와서 도시의 낙후된 지역의 수도관이 터진 적이 있다. 그곳에 홀로 사는 노인들, 저소득층, 이런 사람들의 처참한 광경이 있었다. 당시 비참한 서민들의 상황을 그렸다. 그랬더니 신문사 간부가 '이런 궁상떠는 그림 그리지 말라. 강남의 고급 독자들 불편해하고, 루이비통 광고 안 들어온다'고 말을 하더라. 이런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른바 '자본의 검열'이 아닌가.
알타리바 : 제 생각에 지금 유럽에서는 점점 더 그런 자유가 줄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작가들이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떠올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제작'을 그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흐름인 것 같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 섹스, 살인 장면 등 때문에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성인용으로 분류됐다가 뒤늦게 항의를 받고 규제를 풀었다는 설명이 나오자) 어쨌거나 저는 살인자들에 대한 책을 썼다. 제가 쓴 책이, 탐정 소설이나 스릴러물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거기에도 살인자가 등장하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정당화된 살인이다.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 나라들은 필연적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때 죽이는 것은 공식적으로 죽이도록 명령된 것이다. 그런 실제의 살인자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나와 같은 가상의 살인자는 검열에 시달리는 초라한 사람이 돼 버린다. 살인의 정당한 이유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제 작품이 한국에서 검열 대상이 됐다고 하는데, 아마 잔혹한 피를 그려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 작품이 성인용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출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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