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길 수는 있어도 울릴 수는 없었다."
이명박 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실해 보이던 2007년 11월 12일 <프레시안>에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박인규 <프레시안> 발행인(현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이 쓴 '<프레시안> 제3의 주인을 모십니다'라는 글이었다. 부박한 한국 사회에서 깊이 있는 독립 언론을 추구하는 것의 어려움 토로, 그럼에도 접을 수 없는 절박함, 그렇기에 함께해달라는 호소가 어우러진 글이었다. "굶길 수는 있어도 울릴 수는 없었다"는 그 모든 것을 함축하는 말이었다. 프레시앙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를 프레시앙으로 이끈 것도 바로 그 글이었다. 지난해 박 기자는 프레시앙에서 프레시안 조합원으로 전환했다. 프레시앙으로 인연을 맺은 지 7년. 기자 박상규(이하 박상규 조합원)에게 <프레시안>은 어떤 존재인지 28일 물었다.
"이유? 힘들다고 하니까, 그리고 <프레시안>은 한국 사회에 있어야 하는 매체니까."
7년 전 선뜻 프레시앙이 된 이유를 묻자,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말이다. 세간에 동종 업계 경쟁사로 비칠 매체에, 그것도 박봉을 털어 일곱 해 동안 꼬박꼬박 낸 이유를 더 들어봤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경쟁 매체라기보다는 같이 가야만 서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진보의 파이 하나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 파이가 우리(<오마이뉴스>)한테 오는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같이 갈 때 그 파이가 커진다. 한쪽이 무너지면 우리도 힘들어진다."
"동료 매체" 기자이자 조합원으로서 바라본 <프레시안>
프레시앙으로 인연을 맺기 전에도 물론 <프레시안>은 박상규 조합원에게 낯선 매체가 아니었다.
"10여 년 봤다. 동료 매체인 <프레시안>은 깊이 있는 분석을 강점으로 내세우지 않았나. 실제로 그게 강점이었다. 예전엔 그게 매력이었다."
"예전엔", 역시 이 말이 걸렸다.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요즘 <프레시안>을 보면 살짝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데에 비해) 깊이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고, 예전만큼의 깊이 있는 분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고 경험을 더 쌓은 것도 작용하는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가장 큰 건 예전에 <프레시안>에는 어느 분야 하면 누구, 이런 게 있었으나 선배들이 많이 빠지면서 그게 약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매체 환경이 변한 것도 크게 작용하리라 본다."
박상규 조합원이 원하는 <프레시안>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 물었다.
"전보다 <프레시안>에서 젊은 기자 비율이 높아지고 매체 환경도 바뀌었으니 현장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대신 <프레시안>의 강점인 깊이 있는 분석은 전문 필자들이 맡아주는 건 어떨까? 그런 고급 필진이 <프레시안>과 함께하는 건 굉장한 강점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북스의 경우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북스가 돈하고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독자로서만 말하면, 계속 북스를 운영했으면 좋겠다. 언론이라는 게 장사만 신경 써서는 안 되고 사회적으로 의제를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계속 있기를 바란다. 요즘 북스가 축소됐던데, 불가피한 면이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아쉽다. 물론 '북스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어도, 회사가 어려워도 무조건 해라', 이럴 수 없는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지는 <프레시안> 내부에서 더 고민해줬으면 한다."
깊이 있는 분석과 생생한 현장.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는 것처럼 언론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두 날개다. 박상규 조합원 이야기의 바탕에도 두 날개 중 어느 하나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놓여 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원론이다. 그렇지만 이건 직원 수가 <프레시안>의 몇 배에 달하고 수만 명의 시민기자를 자랑하는 <오마이뉴스>도 고민하는 문제다. 두 언론사 모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심했으나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걸 모르지 않음에도 박상규 조합원이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일종의 역할 분담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하면 분석, <오마이뉴스> 하면 현장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박 조합원은 본다.
"역할 분담? 그런 게 당연히 있다. <오마이뉴스>는 현장에 강하다. 이슈 파이팅에도 강하다. 다만 분석은 사실 약하다. 어떤 사안의 의미를 짚어주는 건 약하다. 독자들이 우리한테서 현장을 보고 <프레시안>에서는 분석,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면 좋지 않을까? 나도 사실 그랬다.
아까 전문 필자를 얘기했는데, <프레시안>에 좋은 필자가 굉장히 많은 것 같다. 그런 필자들을 더 발굴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오마이뉴스> 식으로 말하면, 그들은 지식인 중심의 또 다른 시민기자일 수 있다. 우리는 일반 대중이 많이 쓰고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는 매체라는 성격을 강화하면 좋을 것 같고, <프레시안> 같은 경우 약간 고급스러운 걸 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필자를 조금 더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오마이뉴스>에도 괜찮은 분석 기사, 좋은 필자가 적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프레시안>에도 생생한 현장 기사가 예전부터 있었다. 박상규 조합원의 말은 어느 한쪽은 분석, 다른 한쪽은 현장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프레시안>이든 <오마이뉴스>든 지금까지 버티면서 갈고 닦은 것, 다른 곳보다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두드러지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분석과 현장 어느 하나를 버리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언론사로서 불가능하다. 오해 없으시길.
"조합원과 접촉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박상규 조합원은 직업 기자로 일한 지 곧 만 10년이 된다. 박 조합원은 이른바 '언론 고시'를 준비해 여러 언론사에 입사 원서를 들이미는 다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개천마리(dogs1000) 기자'로도 불리는 박상규 조합원 식으로 '언론 고시' 같은 걸 표현하면 이렇다. "개나 줘!"
박상규 조합원은 <오마이뉴스>에 입사하기 전 시민기자로 활동했고, 입사 후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약하다가 다시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부서로 갔다. 현장 기자일 때 쓴 기사의 내용과 문체에서도 이러한 삶의 궤적이 묻어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의 출발점이다. <오마이뉴스>의 이념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시민기자와 함께하며 쌓아온 조직 차원의 노하우도 많다. 그것이 <오마이뉴스>를 <오마이뉴스>답게 만드는 힘 중 하나다.
박상규 조합원은 그런 <오마이뉴스>에서 30대를 온전히 보냈다. 그에 더해 통상적인 기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전환한 지 1년여, 조합원들과 함께 조직을 새롭게 만드는 법을 하나씩 익히고 있는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접촉이 중요하다. 스킨십, 그게 <오마이뉴스>의 강점이고 그간 쌓아온 힘이다. 사실 일하다 보면 스킨십 문제는 엄청난 노동으로 다가온다. 그걸 10년 넘게 했으니 담당자들의 피로가 쌓인 것도 사실이다. 잘 알지 않나? 그런데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게 없으면 굉장히 섭섭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전화 한 통 해주고 신경 써주면, 그것에 또 감동을 받아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
<오마이뉴스>에는 (주로 기사와 관련해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편집부 외에도) 프레시앙과 비슷한 10만인클럽을 담당하는 사람만 네 명이 있다. 그런데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많이 빠져나간다고 하더라. 늘리긴 참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만도 엄청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노동이 아니다. 어쨌건 접촉이 중요하다."
박상규 조합원은 작가이기도 하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들녘 펴냄)라는, 제목이 발칙한 책도 냈다. 정 많고 눈물 많은 성정처럼 물기 어린 문장이 황량한 이들의 마음을 적시는 책이다. 그리고 지금 박 조합원은 세계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타국의 바람을 맞으며 백석의 시를 읊을 그날을 꿈꾸고 있다. 그런 '박 작가'가 한마디 남겼다.
"<프레시안>에는 편집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어느 출판 관계자가 그러더라. 한 필자가 <프레시안>에 쓴 글을 모아 책을 내려 기사를 출력해서 보니 편집을 참 안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 물론 (<프레시안>에서 누가 담당했는가에 따라 상태가 많이 다르고) 일부 사례겠지만, 좋은 필자들이 많은 만큼 조직 차원에서 더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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