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걸렸다.
김새롬(28) 조합원이 기자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건 지난 20일 열린 홍세화 선생 강연에서였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교육 자리였는데, 거기서 우연히 김 조합원을 만났다. 기자는 김 조합원이 프레시안 조합원인 줄도 몰랐다.
김 조합원은 의사다. 예방의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대한전공의협의회 집행부를 맡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이 조합원이라니, 반가운 마음에 '이 주의 조합원' 인터뷰를 신청했다. 김 조합원은 흔쾌히 수락했다.
가장 궁금했던 질문, '언제 조합원이 됐느냐'고 물었다. 작년 말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고 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주도하는 '서리풀 논평'을 보면서 <프레시안>과 연이 닿았다. 그러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는데, 읽기만 하기 죄송스러워서 페이퍼 회원으로 가입"했다.
두 번째 궁금한 질문. 홍세화 선생의 강연은 왜 들었는지를 물었다. "원래부터 (홍세화 선생이) 유명하시니까 간 것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제가 예방의학을 전공하니까 의사 사회나 병원 말고도 사회적인 것에도 관심이 있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의사 커플인 김 조합원은 "남편이 응급의학과 전공의라서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강의에) 노출을 시켜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이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남편을 '꼬셔서(꾀어서)' 같이 갔다"고 했다. 그 뒤에 그녀가 덧붙이는 말에 빵 터졌다. "빨간 약을 타야죠." (웃음)
"왜 의사는 환자와 라포를 쌓기가 어려울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전공의들은 열심히 일한다. 일주일에 평균 100시간이나 일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주 80시간 노동제'를 시행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할 정도다. (홍세화 선생은 20일 강연에서 "지금은 주 40시간 노동제가 정착됐지만, 180년 전만 해도 노동자들이 하루 16시간을 일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 김 조합원의 한숨이 보이는 듯했다.)
김 조합원은 "전공의들은 열심히 일하고 환자 생각도 많이 하는데, 병에 대해 설명할 시간도 없고 환자들과 라포(신뢰와 친근감)도 쌓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의료전달체계가 정립이 안 되고, 전공의들이 노동 착취에 가깝게 일해서 그렇단다. (☞ 관련 기사 : 당신의 의사가 수술실에서 졸고 있다면?)
김 조합원은 괴로웠는데 인턴을 할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왜인지도 모르고" 했다. 갑갑한 마음에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과가 "막연히 예방의학과"라고 느꼈다. 전공의로서 '왜 우리는 좋은 의사가 되기 어려운가'라는 질문에 천착한 것이다. 그때부터 뉴스도 읽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가입도 했다.
'남편이 집에 안 들어와'…술김에 쓴 글이 대박
대한전공의협의회 집행부도 그런 끈이 닿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계기가 조금 독특하다. 나름 신혼이었는데 "남편이 집에 안 들어와서"다.
남편이 작년에 레지던트 1년 차였는데 병원에서 밤새 일하느라 자꾸 집에 안 들어왔다. 김 조합원은 너무 화가 나서 술김에 글을 써서 인터넷 신문에 올렸는데, 대박이 났다. 그 인연으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김 조합원에게 집행부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당신의 의사는 지난밤 몇 시간이나 잤을까요?'라는 포스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공의의 노동 강도는 환자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스웨덴은 하루에 입원 환자를 7명만 보는데, 한국 의사는 40~80명 봐요. 당연히 의료의 질 차이가 나죠."
"의사로서 의료 영리화 반대합니다"
의사인 김 조합원에게 요즘 뜨거운 이슈인 '투자활성화 대책'에 대해 물었다. "열렬히 반대한다"고 했다.
다만, 지난해 이뤄진 '의사 파업'에 대해서도 김 조합원은 전공의로서 할 말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의사들의 '의료 영리화 싸움'을 자영업자인 개원 의사와 대기업인 대형 병원의 싸움으로 규정하지만, 사실은 의사의 절반은 전공의이자 노동자인 '페이 닥터'(봉직의)라는 것이다. 김 조합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영리화 정책이 '전문가주의' 혹은 '의사로서의 양심'에 반한다고 했다.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면 지금보다 더할 겁니다. 어떤 병원에서는 의사에게 환자를 많이 보게 하거나 돈 없는 환자는 퇴원시키겠죠. 괴롭고 자괴감에 빠지고, 자기 가슴 깎아 먹는 일이라서 힘들어요. 그래서 젊은 의사들이 (의료 영리화를) 우려하죠."
김 조합원은 "진료를 보지 않는 의사로 쭉 살 텐데, 의사로서 긍지를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화적, 제도적인 의료 문제를 아주 조금이나마 푸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프레시안>에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다가가기 어렵다"는 애정 어린 조언이 왔다. "<프레시안>은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참 좋은데, 뭔가 홍보가 잘 안 돼요.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다가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픽도 산뜻하지 않고요. 젊은 친구들도 다가갈 수 있는, 그래서 친구가 많아지는 <프레시안>이 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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