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한나라당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부쩍 '진보적 가치'를 설파하며 자신을 '실용적 진보'로 규정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유독 미국에 대해선 여전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회 청문회와 언론 보도를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환경오염 미군기지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특별히 문제가 될 것 없다"는 입장이고 한미FTA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사기성 발표'와 그 결과
26일 국회 환경노동위 청문회에서는 "반환 미군기지의 오염치유 문제를 논의한 지난해 7월 열린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는 결렬됐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
하지만 당시 SPI 직후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는 합동으로 "오염 조사가 완료된 29개 기지중 15개 기지를 반환 받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이같은 '사기성 발표'로 인해 반환미군기지의 환경치유 기준은 미국 측의 그것을 따르고 최소 4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오염치유 비용은 사실상 우리가 떠안게 됐다.
이에 대해 전날 김장수 국방장관은 "협상 시간을 끌어봐야 갈등만 야기할 뿐, 한미동맹에 이롭지 않다고 판단해 환경부 장관과 협의해 결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동맹을 위해 양보했다는 말이다.
이미 지난 2004년부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왔지만 당시 외교부를 중심으로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이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고 단언했었다.
결국 2005년에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국정상황실, 공직기강비서실 등이 이 문제를 집중 점검했고 "외교부와 국방부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특별히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이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시민사회 쪽의 요구도 있고 해서 청와대 내부에서도 연구한 적이 있었다"면서도 "절차를 비롯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다만 환경부와 국방부가 서로 협력을 잘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마치 한미동맹을 위해 환경문제를 떠안은 것처럼 보도가 됐던데 국방부의 해명에 의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며 "환경문제 뿐 아니라 경제사회적인 종합적 고려를 통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동맹 때문이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부담을 지게 됐단 말이다. '그러니까 청와대의 판단은 절차나 결과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천 대변인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면서 "(국방부와 환경부) 양자 간의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보라는 정도에서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답했다.
용산기지 이전을 비롯한 일부 미군기지 반환은 현 정부가 자신의 치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국무회의에 한미FTA 협정문이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한미FTA 문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날 천 대변인은 "한미FTA 협정문에 30일까지 서명하기 위해선 국무회의와 대통령 결재가 나야 하는데 오늘 국무회의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추가협의와 한미FTA본협정문 서명은 별개로 진행한다는 기존의 방침 변화를 시사한 대목.
천 대변인은 "그 이유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측과 추가협의를 진행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본협정 내용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면 그것을 수용하는 형태로 간다"면서 "그게 아니면 기존 협정문에 사인하겠다는 방침이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미국 측의 추가협상 내용을 수용해 이번 주말께 임시국무회의에서 처리한 다음 30일에 한꺼번에 서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협상 때도 일방통행이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 추가협상 역시 김현종 본부장이 미국에 달랑 이틀 방문해서 결정한다는게 적절하냐? 정부규정에도 협정문 변경 등은 관련단체의 의사를 수렴하게 되어있다'는 지적에 천 대변인은 "그 문제는 통상교섭본부에 물어보는게 나을 것 같다"고 피해나갔다.
그는 "이번에 추가협의로 제안된 7개 항목이 거기(협정문 변경)에 적용되는지도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어느 장단에 춤추랴
이날 노 대통령은 대학 총장들과 토론 자리에서 "우리 사회는 배려가 너무 작고 강자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면서 "강자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정책이 일방통행 할 때 사회는 분열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모든 완장 찬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권한을 자기 이익으로 환원시키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수백 년 동안 아직도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갈등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얼마 전에는 한미FTA 반대 파업 조짐에 대해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고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사전공권력 투입도 검토한다"고 화답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진 잘 모르겠지만, 말보단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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