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목적지도 모른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카자흐스탄으로... 6000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이 강제이주 기간 동안에만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어린 자식이 죽으면 열차 문 밖으로 시신을 버리며 갔다. 도착해서도 굴을 파고 살거나 마구간에서 살며 굶주림을 견뎠다. 간신히 살려 온 자식을 이리가 물어가기도 했다.
기차에서도 죽지 않고, 이리에게도 물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지금의 고려인 1세대다. 이주에서 정착까지의 험난한 시간들을 지나오는 동안 이들은 “째르빼-니, 째르빼-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서로를 부축했다. 러시아어 “째르빼-니”는 우리말로 “괜찮아” 혹은 “참아야 해”라는 뜻이다. 그것은 2세대들에게도 유전되어, 지금도 우즈벡의 고려인들은 삶의 어느 힘겨운 순간과 마주치면 “째르빼-니, 째르빼-니”라고 말한다.
사진가 한금선의 4번째 개인전 <째르빼니-우즈벡의 고려인들>는 바로 이 우즈벡의 고려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2013년 초여름 대구 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구술 기록과 사진 기록을 위해 ‘우즈벡의 고려인’들을 만났다. 양 니꼴라이, 강 라이사, 박 알렉산드로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몸은 우즈베키스탄에 두고 살지만 여전히 적은 조선에 둔 사람들,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들의 현재를 사진에 담았다.
사진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일상에 나타나는 독특한 색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음악이 들려오듯 애잔한 정서가 바탕에 흐른다. 밖의 역사에 관해 비통하게 쓰인 서사시가 아니라, 제 몸과 삶 안에 역사의 부침을 새기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서정시다.
사진가 한금선은 말한다.
“내 사진을 통해 ‘째르빼-니’라는 단어를, 또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금선 사진전 <째르빼니-우즈벡의 고려인들>은 1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오프닝인 19일에는 동명의 사진집(봄날의 책, 2014)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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