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2일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의료 영리화' 규제를 확 푸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는 줄기세포 치료제와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도 있다. 주요 언론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용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서 가장 위험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눈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줄기세포 치료제와 유전자 치료제 연구 현황과 정부 발표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봤다. <편집자>
전문가들은 줄기세포 연구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경고한다. 안전성이 확보된 치료제가 상용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줄기세포 임상시험을 받았던 10대 소년이 암에 걸렸다.
2001년 희귀병에 걸린 9살 이스라엘 소년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소년은 '모세혈관확장성운동실조증'이라는 병을 앓았는데, 이 병에 걸린 환자는 대개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몸의 움직임과 말을 통제하는 뇌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희귀병이다.
이스라엘 10대 소년, 줄기세포 치료 후 암 발병
이 소년은 줄기세포 임상시험을 받으러 러시아에 갔다. 9살에 뇌와 척수에 타인의 태반에서 유래한 신경줄기세포를 주입받았다. 10살과 12살에 추가로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소년은 건강이 나빠졌고, 13살에는 휠체어를 타야 했다. 소년은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 대학의 연구진들은 소년의 뇌와 척수에서 암을 발견했다. 소년은 14살이었던 2006년에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연구진들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의 의학 국제학술지 <플로스 메디신(PLoS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동종 유래 줄기세포가 소년 환자에게 종양을 유발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줄기세포의 의학적 안전성에 경종을 울리는 비슷한 연구 결과들도 많다. 2009년 독일 연구팀은 중간엽 줄기세포를 주입한 돼지에게서 종양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12년 벨기에와 스위스 등 연구팀은 생쥐에서 골수기질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후 다시 생쥐에게 투여한 결과, 암세포로 전환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알엔엘(RNL)바이오가 법망을 피해 외국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하다가 한국인 환자 두 명이 사망한 전례가 있다. 해당 기업은 환자 사망이 줄기세포 시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물론 줄기세포 연구는 잠재적 가능성이 큰 분야다. 실패 사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줄기세포는 치료받을 환자 자신의 몸에서 뽑는 '자가 유래 줄기세포'와 타인의 몸에서 뽑은 '동종 유래 줄기세포',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의 몸에서 뽑은 '이종 유래 줄기세포'로 나뉘는데, 자가 유래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최근 전향적인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영국의 <BBC>는 영국 의료진이 줄기세포로 뇌경색 환자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9일 보도했다. 의료진은 뇌경색 환자 5명에게 환자 본인의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주입한 결과, 치료 6개월 만에 5명 전원에게 마비 증세가 완화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간 추적 관찰을 해야 하는 줄기세포 치료의 특성상 앞으로 몇 년간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과학 전문지 <디스커버>는 현재 줄기세포 연구 수준을 두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을 뿐"인 걸음마 단계라고 강조했다. 가장 크게 알려진 위협은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적어도 수년은 걸리는 암 발병 위험성이다. 연구자들은 새로 주입된 줄기세포가 암이 되지 않는 방법을 알아야 하지만, 암 발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 치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유전자 치료는 줄기세포 치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1990년에 처음 연구를 시작했지만, 임상적으로 성공한 전례가 거의 없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아직 인간 유전자 치료 제품 판매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4년 1월 중국 바이오기업이 개발한 암 치료제 '젠다이신'을 자국에서 허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치료제는 아직 시판되지 않고 있다.
유전자 치료가 위험한 이유는 치료에 쓰이는 수단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치료하려는 세포(표적 세포)에 직접 삽입할 수 없으므로 일반적으로 '벡터'라고 불리는 바이러스 운반체에 담아야 한다. 바이러스는 표적 세포를 인지할 수 있고, 그 표적 세포에 유전자를 집어넣는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다.
바이러스로 유전자를 옮기는 과정은 인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우선 예상치 않은 면역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침입자로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다. 이 경우 염증이나 장기 부전이 일어날 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또한 일어날 수 있다.
두 번째로 바이러스가 잘못된 세포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벡터가 치료하려는 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에 영향을 미치면, 암을 비롯한 예상치 못한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새로운 유전자가 환자의 DNA에 잘못된 장소에 삽입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9년 미국에서는 유전자 결함으로 암모니아를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는 병(오르니틴 트랜스카복실화효소 결핍증 : OTCD)에 걸린 제시 겔싱어라는 18살 소년이 유전자 치료를 받았다가 4일 만에 다수의 장기가 마비되면서 숨졌다. 연구진은 정확한 사인은 모르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받은 유아 4명 백혈병 발병…1명 사망
유전자 치료의 성공 사례가 있기는 하다. 'X-연결 중증합병면역결핍증(SCID)', 이른바 '버블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희귀병에 걸린 유아가 레트로 바이러스에 의한 유전자 치료로 획기적인 면역 회복을 달성했다. 1998년께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연구에서 유전자 치료를 받은 유아 9명 중 8명이 생존했다.
그러나 생존한 8명 중 4명의 유아에게서 치료 이후 3~6년 사이에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이 발병했고, 한 명은 숨졌다. 연구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유전자 치료를 받은 유아 한 명이 백혈병에 걸린 것이 2008년에 확인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계에서는 안전한 벡터를 설계하는 연구가 시작됐고, 이입된 유전자와 숙주 유전자와의 상호작용, 독성을 정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프랑스 연구진이 평균 9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환자들을 신중하게 추적 관찰했다는 점이다. 짧은 임상시험 과정을 거친 끝에 이미 줄기세포 치료제가 상용화된 한국과는 다른 풍경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한국도 줄기세포 치료나 유전자 치료제 상용화에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유전자 치료는 임상시험 적용은커녕 기초 연구 단계에서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임상시험 적용을 위해 안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의학적·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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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Rachel Cernansky, <Fetal Stem Cell Therapy Causes Cancer in Teenage Boy>, Discover, 2009-02-18이재현, <유전자 치료의 현황과 전망>, 고경력과학기술인(RESEAT), 2005Salima Hacein-Bey-Abina 등, <Efficacy of Gene Therapy for X-Linked 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10-07-22<Why Gene Therapy Caused Leukemia In Some 'Boy In The Bubble Syndrome' Patients>, ScienceDaily, 2008-08-10최규진, <줄기세포 치료와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 규제 완화의 문제점>,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201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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