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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단 생각하는 대한민국 청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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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단 생각하는 대한민국 청소년입니다"

[현장] 세월호 첫 고등학생 연합 집회

12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피켓을 나눠주는 이도, 받아드는 이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했다. 나이도, 사는 곳도 각기 다른 중고등학생 80여 명이 이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집회가 잇따랐지만, 고등학생들이 직접 주최한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집회의 최초 제안자는 성남의 한 고등학교 총학생회 소속인 정기훈 군이다. 정 군은 최근 SNS를 통해 "고등학생도 알 건 안다"는 제목의 '사발통문'을 돌렸다. "여당과 야당이 세월호 희생자 학생과 유가족을 욕보이는 상황에서 안타까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이 한 날 한 자리에서 우리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자리를 갖자"는 것. 이 글은 삽시간에 온라인 상에 뿌려졌고, 80여 명의 학생들을 광화문에 집결시켰다.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첫 '세월호 고등학생 연합 집회'. ⓒ프레시안(최형락)

사회를 맡은 정 군을 필두로, 발언에 나선 학생들은 가만히 있기를 강요하는 사회와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가감 없이 토해냈다. 그러면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외롭지 않게 하지 않고, 유가족들의 뜻대로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뭣도 모르는 고등학생이라 하지 말아주십시오"

첫 번째 발언의 주인공은 박의현 군이었다. 박 군은 "지금 우리는 100일 넘는 시간 동안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1년, 10년이 넘도록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며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 의해 선동돼 나왔다"는 세간의 비아냥에 대해 반박했다.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 선동돼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선동된 거라고 한다면 선동됐다고 합시다. 저는 학교에서 이윤보다 생명이 최우선이라고 말한 것에 선동당했습니다. 도대체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아주 당연한 가치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어딨나요.

뭣도 모르는 고등학생이라 하지 말아주십시오. 초등학생도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압니다. 저희더러 종북이라면 종북일 것이고, 선동당한 뭣도 모르는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신 우리가 광화문에 모일 일이 없도록 저는 끝까지 이윤보다 생명이라 외칠 것입니다"

다음 발언에 나선 양지혜 양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 사회는 사람을 죽고 싶게 하고, 죽이는 체제"라고 했다.

"저는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소년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느낀 건 한 인간의 역사가 소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앞에서 성우 아버님을 뵈었습니다. 아버님은 성우 초음파 사진부터 배에 가기 하루 전 사진까지를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물음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회는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 노동자는 갈아 끼울 부품, 생명보다 이윤이 중요한 사회라고 합니다. 세월호를 통해 저는 절망도 많이 했지만, 우리는 내 옆자리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세월호를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그럼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발언 사이사이 '성인' 참가자들이 박수와 함께 "잘한다", "장하다"라는 추임새를 넣었다.

▲'고등학생 연합 집회'를 기획한 정기훈 군. ⓒ프레시안(최형락)

소신 있는 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회자 정 군은 "겁내지 말자"며 말을 보탰다.

"저도 이 자리에 서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과,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수능 준비로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EBS 최ㅇㅇ 선생님이 주옥같은 말을 남기셨는데요. '한국사를 건조한 텍스트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문자 속에 깃든 인물의 삶과 그들의 뜨거움 느끼라'는 것입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떠올려봤습니다. 우리는 한 집권당에 거슬리는 발언조차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지만 당시 학생들은 훨씬 더 거대한 일제라는 두려움을 딛고 지금 이 사회를 있게 했습니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 모습을 떠올려보니,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겁내지 맙시다"

처음이자 마지막 집회? 연락처 공유 여부로 '격론'

집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학생들은 이날 집회 일회성으로 할지, 앞으로 지속할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만민공동회를 연상케 하는 진지한 토론이었다. 격론의 발단은 자신을 '중고등학생 사회개혁 연대' 소속이라고 밝힌 최준호 군의 발언에서 시작했다. 이날 모인 학생들끼리 연락처를 주고 받고 조직을 꾸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자는 제안을 한 것.

"저는 원주시에서 달려왔습니다. 그만큼 오늘이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본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4.19도 5.18도 모두 중고등학생들이 주도했습니다. 우리들이 힘 모아서 제대로 한 번만 시위하면 이 나라는 통째로 뒤집어지고 중고생을 위한 전혀 다른 나라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이 집회를 멈추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열고 또 열어서 결국 우리가 투표권을 얻어서 선거철마다 중고등학교 찾아와 표를 구걸하는 세상 만들어야 합니다. 각자 전화번호 공유하고 이 집회를 끊임없이 이어나가는 게 어떨까요"

최 군의 발언에 환호가 터졌다. 이에 사회자 정 군이 "오늘 모임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순수하게 유가족의 의사를 반영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발언 중 모임 취지에서 벗어난 발언은 기각하겠다"고 했다. 웅성거렸던 좌중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시 "사회자의 의견에 반대한다"며 즉각 반대 의견을 냈다. '깨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모 양은 "주최측 입장에서 이해는 하지만 이 세상에 정치가 아닌 게 어딨나. 가만히 있지 말자. 우리도 생각하고 주장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라며 "지속적으로 토론하면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이 양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이날 집회는 공식 해산됐다. 그러나 학생들은 흩어지지 않고 자발적으로 연락처를 공유하기 위해 농성장 뒤에서 다시 모였다. 다음 문화제를 위해 농성장을 비워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최 군이 "세종대왕상 앞에서 모이자"고 했고, 스무 명 넘는 학생들이 약속 장소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이들은 "집회시위법 위반"이라는 경찰 측의 제지에 막혔고, 결국 광장 복판에서 서로 연락처를 공유했다. 이들은 최 군을 중심으로 추후 '카카오톡' 단체방을 개설하기로 하고,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연락처 공유'를 위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학생들이 경찰에 막혀 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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