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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불만족'보다는 가까운, 좌절과는 거리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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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불만족'보다는 가까운, 좌절과는 거리가 먼

[프레시안 books] 홍은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까치수염, 2014년 5월 펴냄), 이 책의 첫 장을 열었을 때 나는 진도에 있었다. 100일 넘도록 사랑하는 가족의 머리카락 한 올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 내동댕이쳐진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였다.

진도 실내 체육관에 들어선 순간,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공기만으로도 이곳에 남은 가족들의 깊은 절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의 한숨이 만들어냈을 그 무거운 공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이는 없으리라.

어둠 속에선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진도에 있을 때면 나는 이성 대신 안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여러 감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 대신 가슴만 살아 숨 쉬니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책을 덮어 고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여기서 맞닥뜨리는 온갖 감정들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나를 지배하는 정서는 슬픔과 절망이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최대한 그들의 심정 가까이에 닿고자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인간미 넘치는 인간임을 확인하고 안도하곤 했다. 여기까지였다면 좋았으련만, 안도의 감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발 더 나아갔다.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다가도, 나는 때때로 내가 그들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빠져들곤 했다. 나조차 모른 척하고 싶을 정도로 불경한 감정이었다. 나는 한동안 나라는 인간의 인격을 의심할 정도로 자괴감에 빠져야만 했다.

그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불경한 감정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까치수염
진도를 빠져나오자, 종잡을 수 없이 어지럽게 흘러가던 감정들도 더디지만 결국 가라앉았다.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짓다가도 영화관을 나오면 언제 울었느냐는 듯 멀쩡해지는 것처럼. 마음을 추스르고, 진도에서 덮어뒀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죄책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들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불경한 마음을 또다시 확인한 탓이다.

다리가 자유스럽지 못하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이 투쟁이었다. 버스를 타는 것도, 길거리에 널려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투쟁이었다. 자칫하면 차에 치이고, 지하철 리프트에서 추락해 죽거나 크게 다친다. 장애인의 삶은 저자의 표현대로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삶이었고,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차별인 삶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권리가 그들에게는 낯설고, 번거롭고, 무엇보다 위험한 일이다.

저자는 비장애인에게 사소하고 평범한 일이 장애인에게는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절묘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휠체어 이용자가 밭에 들어갔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한 것처럼."

그러나 이런 생생한 묘사는 도리어 나와 그들의 거리를 벌려 놓았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동시에 역시 나는 그들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사실 비장애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의 근원에는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데서 오는 안도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더해 내가 장애인이었더라면 불편함을 견디며 장애를 극복할 자신이 없다는 점도 있다.

우리는 이미 장애를 소재로 한 많은 픽션, 논픽션에서 인간 '승리' 사례를 목격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지만 의지와 용기로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사는 인간의 이야기'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창해)>이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라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고 결국은 '성공했습니다'로 끝나는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장애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데 결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비교적 투쟁하지 않는 일상을 살아온 나는 오히려 장애를 극복하고 신화가 된 이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끼고, 때론 비인간적이라고 느끼기까지 했다. 이들은 나와 달리 고난을 견딜 준비가 된 채로 태어난 초인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를 돕기 위해 왔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나만의 오해는 아닌 모양인지, 저자는 국내 장애인 운동의 들불을 지핀 노들장애인야학 공동체의 20년 역사를 담은 이 책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거라는 환상을 내려놓아 달라"고 간청한다. 장애인들의 'ㄱ, ㄴ' 배우기, 어렵게 말해 학습권 투쟁에서 시작한 노들 야학은 이동권 투쟁을 통해 저상버스를 탄생시켰고, 활동 보조 서비스 제도화를 이끌었다. 노들의 탄생을 지켜보고, 20대 초반부터 노들과 함께 나이테를 그려간 저자는 노들의 20년 역사를 아름다움으로만 포장하지 않는다.

노들 야학을 찾는 장애인들은 생각보다 배움에 대한 열의도 적고 투쟁에 대한 의지가 미약했고, 다수의 강학(講學)이 때가 되면 언덕을 내려가 다시 올라오지 않아 야학에 남은 학강(學講)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화합하자며 어렵사리 다 함께 간 놀이동산에서는 휠체어 입장이 불가하자 결국 비장애인들만 즐기다 오는 '분열의 추억'이 탄생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을 읽어 줄 당신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모든 것을 기꺼이 견딜 만큼 소중하게 지켜 주고 싶은 것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한 잔 술이 간절할 때'의 느낌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쿨하지 못한 연애를 해봐서 사랑 뒤에 따라오는 쿰쿰하고 복잡한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한 잔 술이 간절할 정도로 서로 지지고 볶고 다퉜지만, 그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고 서로 견뎠다. 활동가들은 학강들에게 보채지 않았고 학강들은 무조건적인 도움이나 동정을 바라지 않았다. 그게 그들이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방식이었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돕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 노들장애인야학 사람들이 7월 3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한 현장 수업에서 장애인 평생 교육 기관에 대한 무상 급식을 요구하며 바닥에 분필로 '밥은 인권이다'라는 글씨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기

노들은 '노란 들판'의 줄임말이다. 농부처럼 우직하게 땀 흘려 일하고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함께 나누자는 뜻이다. 우직하게 이어져 온 노들의 20년 역사를 훑고 있자니, 소설가 김연수가 저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쓴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저자는 쿰쿰한 과거를 내뱉으면서도 또 동시에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도 그 길을 자꾸만 걷게 되는 매혹의 순간"을 얘기한다. 그것은 노들의 구성원이 장애라는, 어쩌면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이해하려는 행위를 통해 살 값어치를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하여 노들은 이름답게 온갖 차별이 몰아치는 위험한 세상 속에서도 저항의 가치를 잃지 않고 우직하게 공동체를 지켜나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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