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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바다에 남겨두지 않을게"…세상에서 가장 슬픈 듀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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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바다에 남겨두지 않을게"…세상에서 가장 슬픈 듀엣

[현장] 세월호 참사 100일, 서울광장 울린 '거위의 꿈'

이미 고인이 된 학생의 노래가 서울광장에 울려퍼졌다. 생전 가수가 꿈이었던 열여덟 살 고등학생은 영상과 목소리로나마 2만여 명의 시민 앞에, 평소 꿈꾸던 커다란 무대 위에 섰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24일 오후. 단원고 2학년 고(故) 이보미 학생과 가수 김장훈이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이 흘렀다. 듀엣곡이지만 무대 위엔 김장훈 씨만 홀로 섰다. 관객은 물론 가수도 울었지만, 정작 영상 속 보미 학생만은 해처럼 맑은 표정이었다.

▲ 고 이보미 학생과 가수 김장훈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듀엣곡'. ⓒ프레시안(최형락)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해."
"…언니가 말야. 기념품 못사올 것 같아. 미안해."
"얘들아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보미 학생의 노래를 배경으로 영상에 나타나자, 유가족은 물론 시민들도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304명(사망 294·실종 10)이 한꺼번에 희생된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0일. 이날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잊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배는 바다로 침몰했지만, 희생된 이들조차 '망각의 바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 100일, 잔인한 시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이 24일 서울광장에서 추모공연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손문상)

전날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후 8시께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미리 모여있던 시민 2만여 명이 모두 일어나 박수로 유족들을 맞았다. 생각보다 많은 인파와 "힘내세요"라는 응원에, 유족들의 눈가가 붉어졌다.

꼬박 38시간, 50km를 걸어온 여정이었다. 무더운 여름 장맛비 속에 힘겨운 걸음을 내딛었지만, 유가족이 보낸 지난 100일의 잔인한 시간보다 더 힘들지는 않을 터였다.

▲ 서울광장에 운집한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손문상)

▲ 추모 공연에 나선 가수 이승환 씨. ⓒ프레시안(최형락)

'네 눈물을 기억하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추모 문화제는 시 낭송, 연극, 노래 공연 등으로 꾸려졌다.

"아빠 이마에 걱정이 가득해 보여. 왜 안 왔지? 얼마나 외치면서 기다렸는데. 우리가 얼마나 창문을 두드리며 기다렸는데…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 나도 카톡 보내고 싶었는데 내 휴대폰이 너무 후져서 못 보내서 미안해."

연극인 류성식 씨의 1인극 <초혼>이 무대에 오르자, 유족들이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우리 아들 스마트폰 빨리 바꿔줄걸." 연극인의 독백에 한 어머니는 "미안해, 미안해"라고 오열하며 가슴을 쥐어 뜯었다.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동협 학생의 어머니 김성실 씨는 무대 위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침몰 직전,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에서 "정말 살고 싶다"고 절규했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 꿈이 있다"고 외쳤던 아들은 결국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관련 기사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라임…故김동협 군이 남긴 영상)

"동협아 우리는 괜찮아. 우리는 엄마 아빠라서, 또 많은 국민들이 눈물과 격려로 함께 하기 때문에 괜찮아"

담담하게 편지를 읽어내려가던 어머니는 결국 아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을 하다가 흐느꼈다.

"동협아 그래도, 그래도…실은 모든 엄마 아빠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은…내 새끼 너무 보고싶고, 그립다는 거야. 단원고 2학년 예쁘고 착했던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오후 10시20분께. 모든 공연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다시 비가 쏟아졌다. 유족들 중 누군가 "애들이 우나봐"라고 읊조렸다. 유족들도 시민들도,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굵은 빗방울이 유족들의 노란 우산 위에 쓰인 아이들의 이름으로 떨어졌다.

▲ 다인아, 윤희야, 진아야…. 엄마, 아빠들은 먼저 떠난 자식들의 이름을 우산 위에 썼다. 우산을 들고 100리가 넘는 길을 걸었다. 추모문화제가 끝나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거리에서 참사 101일 맞은 유족…경찰, 유가족 추모 행진 막아

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채 1km가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이미 서른여덟 시간을 걸은 유족들에게 광화문광장까지 가는 길은 가장 멀고 험난했다.

▲ 304명의 영정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304명의 영정 사진이 새겨진 현수막을 앞세워 행진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경찰이 막아섰다. "신고되지 않은 집회이므로 바로 해산하라"는 기계적인 경고음이 폴리스라인 건너편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고, 시민들과 경찰이 실랑이를 거듭한 끝에 유족들은 1시간 만인 새벽 0시께 가까스로 광화문광장 농성장에 도착했다. 유족 2명은 이 과정에서 실신해 구급차로 후송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광장 앞에 세워진 높다란 차벽을 보고 한 유족은 "사람 막는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네. 그런데 이 나라에 사람 살리는 기술은 없어"라며 쓰게 웃었다.

농성장에 있던 종교인들과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광화문광장에 도착했지만, 결국 청와대로 향하는 길은 뚫리지 않았다.

"우리가 총을 가졌나, 무슨 폭력을 행사하나. 그저 대통령이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한 유족의 오열에도 경찰은 꿈쩍하지 않은 채 해산을 명령하는 경고 방송만 내보냈다. 시민들과 유족들은 이에 맞서 "국회가 포기했다, 대통령이 책임져라"고 외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다.

폭우 속에서 3시간을 버틴 유족들은 결국 새벽 3시께 농성장이 있는 국회로 향했다.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물러난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장이 유족들을 다독였다. 참사 100일 후에는 특별법 제정으로 "덜 미안한 부모가 되고 싶다"던 유족들은, 결국 참사 101번째 새벽 역시 차디찬 거리에서 맞아야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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