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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젠 '망각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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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젠 '망각과의 싸움'이다

살아남는 사람들의 '기억 투쟁'…"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잊힐 때"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476명을 태운 배가 찬 바닷 속으로 가라앉은 지 88일. 배에 탄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시간을 이미 한참 넘겨 이제 계절이 바뀌었지만, 많은 이들이 세월호와 관련한 '기억'조차 가라앉지 않도록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날을 잊지말자는 '기억 투쟁'이다.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족들과 마을 주민들이 마주 앉았다. 지난 5월부터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진행해온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판을 전달하고 유족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작은 마을 공동체인 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뒤 "잠을 이룰 수 없어" 자발적인 서명운동을 시작, 총 45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마을 내에서 자체적인 촛불 문화제도 진행했다.

"내 새끼 죽은 이유 알고 싶은 것, 무리한 요구인가요?"

유족들은 아직 '그 날의 고통'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전국을 순회하며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국회에 찾아가 몇 번이나 뜬 눈으로 밤을 새며 국정조사 및 특별법 제정을 목이 터져라 요구해온 유족들이지만, 간담회 장소에 함께 한 어린 학생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결국 간담회는 학생들이 교실을 떠나고 나서야 진행됐다.

"8일 만에 아들 찾고, 70일 만에 유품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빨아서 태웠어요. 88일이 지나니까 수면제 없으면 잠을 못 잡니다. 아직까지 우리 애가 옆에 없다는 것을 실감 못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아서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혼없는 삶을 살고 있어요.

우리 아들이 여자친구를 한 번도 못 사귀었어요. 그게 너무너무 한이 돼요. 놀러도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다른 사람들에겐 하찮은 일인데 그걸 못 했어요. 이렇게 저희 일처럼 가슴 아파하고 도와주신 것, 너무 감사드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단원고 학생 휘범 군의 어머니는 결국 아들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형은 갔지만 동생에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 아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라도 꼭 알고 싶다"고 했다.

유족들은 하나같이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분노했지만,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들이 협의체 참여가 거부당한 채 국회에 묶여 있는 상태다. 이날 오후 세월호 유가족 150여 명이 국회 앞에서 또 다시 노숙 농성을 시작한 이유다.

성호 군의 아버지는 "서명운동을 할 때마다 시비거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 새끼 의사자를 만들려고 그런다, 보상을 더 받으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며 "저희는 그런 것 필요 없다. 아빠니까, 엄마니까, 내 새끼 죽은 이유를,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게 가족들의 바람"이라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죽은 자식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恨)"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저는 외국에서 일하다가 소식을 듣고 애 옆으로 가는 데 하루가 걸렸어요. 애 옆으로 가면, 애를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빠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내 새끼가 죽어가고 전 세계에서 방송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고, (해경도) 떠오르는 시체만 건졌고.내 새끼가 죽어가고 있는데 기다리라고만 하고. 그걸 저희는 알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저희가 지닌 한입니다. 아빠니까, 엄마니까, 알아야 해요. 내 새끼가 죽은 이유를."

▲12일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공연.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선명수)

'망각'과 싸우는 사람들

단원고 생존 학생 75명은 지난달 25일 첫 등교를 하면서 "사람이 진짜 죽을 때는 잊힐 때"라며 희생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잊지 않기 위한' 노력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유족들이 국회 농성을 위해 간담회장을 떠난 뒤, 성미산학교에선 주민들의 작은 추모 공연과 추모 영상 상영, 추모시 낭송이 이어졌다.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인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엔 벽보와 노란 리본 등 "잊지 않겠다"는 마을 곳곳의 흔적을 담담하게 담었다. 더 어린 학생들은 작은 종이배를 접어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4월16일 그날 이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촛불문화제와 서명 운동 등을 통해서라도 '그 날'을 기억하고자 노력 중이다. 한 주민은 유족들에게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지 마세요. 저희가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돕는 것이 아니에요. 옆에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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