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어느 쪽에도 견제구를 던지지 못했다.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어느 한 편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한국의 외교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3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을 겨냥한 어떤 메시지도 던지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며 본격적인 우경화 행보로 접어들고 있는 아베 정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며,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과 함께 일본을 비난하기는 힘들다"고 풀이했다.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 중국과 함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회담에서도 한국의 친미적인 경향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회담을 통해 일본에 대한 공통의 메시지를 던지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의 심기가 불편했을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고 일본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정상회담이 예정 시간보다 오래 걸렸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경남대학교 김근식 교수 역시 미국과 일본이 뜻을 모은 사안에 한국이 강력하게 저항하기가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일본에 대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과 일본이 가장 의심하는 것이 한국이 중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런 구도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강력한 대일 메시지를 내놓으면 우리 입장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교수는 중국이 한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았겠냐는 관측을 내놨다. 그는 "중국은 양국이 정상회담을 하고 성명을 낸 것 자체만으로도,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한미일 동맹 구도에서 한국을 끄집어내 미·일을 견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중국은 그 정도가 이번 방한의 최고 목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굳이 한국과 함께 강력한 대일 메시지를 밝히지 않아도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는 해석이다.
북핵에 대한 중국 입장, 정말 달라졌나
한편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성명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중국이 보다 강력한 북핵 반대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해 양국 공동성명에서 북핵을 '심각한 위협'이라고 명시했지만, 이번에는 '확고한 반대'라는 보다 강력한 표현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핵과 미국의 핵우산 모두를 반대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핵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기존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준형 교수는 "한국은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라며 "중국이 계속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는 중국 측의 기존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근식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중국이 북핵 공조에 참여해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른바 '중국 역할론'에 여전히 함몰돼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방한 의도가 한국이 원하는 북핵 공조나 견제가 아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있어 기존보다 강경한 입장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번 시진핑 방한의 목표를 생각해보면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 한미일과 보조를 맞춰 북한을 압박한다는 것은 나올 수가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핵에 대한 애매한 표현이 올해 성명에도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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