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6월 12일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주지하다시피 국민참여재판은 직업법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형을 결정하는 제도다.
목적 중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법에서 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의 재판을 통하여 국가공권력의 권력 남용이나 인권 침해를 견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참여재판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든든한 보루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배심제나 참심제와 같이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를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사법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다. 참여정부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에서 국가공권력 남용 견제할 인권지킴이
정부가 개정안을 제출한 것은 약 6년 동안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의 최종형태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원래 잠정적인 형태였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하고 경과를 분석한 후, 최종적인 형태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정부의 개정안 제출은 이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 개정안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질식시킬 내용들로 가득하다.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시민들에게 주지도 않고 시민의 인권 보호도 후퇴시키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①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② 검사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권과 배제결정권을 부여하며, ③ 재판부는 공소사실 이외에 검찰 주장의 요지도 배심원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④ 법원의 배심원 평결 배척사유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부 개정안, 인권보호 위한 국민참여재판 질식시킬 내용 가득
정부안의 첫 번째 문제는 국민참여재판의 범위를 확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축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안은 공직선거법위반 사건 중 징역 1년 미만의 사건을 참여재판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무부는 김어준·주진우 선거법 위반 사건, 안도현 시인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안도현 시인의 경우 배심원의 의견과 법관의 의견은 최종적으로 같았다. 즉, 1심에서 배심원들은 무죄, 법관은 유죄로 의견이 나뉘었으나 항소심 법관은 배심원들의 의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들의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증거이다. 정치적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닌 한 선거법 위반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는 일반 시민인 피고인의 권리다. 이를 함부로 축소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정부안은 제도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축소할 뿐 아니라 검사에게 국민참여재판 배제신청권을 부여해 국민참여재판의 범위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나아가 개정안은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이 배제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 역시 법률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피고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 : 공직선거법위반 사건 제외해 국민참여재판 외려 축소
또한 정부안은 정부가 동의했던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안과 모순된다. 사법개혁위원회는 2005년 "중죄 형사사건부터 시작하여 그 성과를 보아가면서 다른 유형의 사건에도 도입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것을 건의했다. 신중하게 시작하되 일반 사건에도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하는 것이 사법개혁 당시의 합의였다. 정부안은 이러한 행정부와 사법부의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
정부안의 두 번째 문제는 검사가 국민참여재판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번 정부안에서 검사의 권한은 대폭 강화되었다. 개정안은 검사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권, 국민참여재판 배제신청권을 부여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가의 권력남용에 대한 인권옹호제도이다. 원래 시민인 피고인을 위한 제도이다. 검사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거나 배제신청을 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을 검찰의 시각에서 재단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검사에게 변호인의 주장을 반박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재판장이 검사의 주장을 다시 설명하도록 한 것 역시 문제다. 검사는 수사기관으로서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압도적인 국가기관에 맞서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권리를 강화하여 공평하고 대등한 재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개정안은 원래 강력한 권한을 지닌 검사에게 또 다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무기대등의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 : 피고인 권리 줄이고 검사 권한 대폭 확대
정부안의 세 번째 문제는 배심원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배심원의 평결 내용이 논리법칙 또는 경험법칙에 위반되는 경우'와 '평의·평결의 절차 또는 내용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을 배심원 평결 배척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하더라도 이런 사유가 있다면 배심원의 평결을 무시하고 법관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포괄적이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개정안에 따르면 배심원의 평결이 대법원 판례에 위반되는 경우 법관은 배심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의 의견은 법관재판보다 대법원 판례에 위반하는 경우가 많기 마련이다. 법관들은 대법원 판례를 법률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라면 배심원들의 상식적인 판단은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적으로 배척된다. 배심원 평결의 효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결국 시민의 권리를 법관이 가져가는 것이 된다.
세 번째 문제 : 배심원 권한 약화시켜 들러리로 전락 우려
이번 정부의 국민참여재판 개정안은 국민참여재판을 후퇴시키는 개악이다. 피고인과 배심원의 권리는 축소하면서 검사와 법관의 권한은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국민참여재판을 형해화(形骸化)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사법개혁 당시 행정부와 사법부가 합의한 국민참여재판의 확대 약속도 어기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 개정안을 제출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은 법무부가 주도했다. 법무부 장관의 책임이다. 비록 한국의 법치주의가 폭력적 법치주의이고 약자에 적대적인 법치주의이지만 법무부 장관은 어디까지나 인권옹호 업무를 관장한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인권을 지키는 것이 기본 임무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가 중의 한 명이다. 국가기관이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의 권한을 견제하고 시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법무부 장관은 그렇지 않다. 시민의 권리를 악착같이 빼앗아 국가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이런 법무부장관 아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사건, NLL 대화록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국민참여재판 개정안도 그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는 법무부 장관을 보는 것은 이 정권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 김인회 교수의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로, 한국 사회와 사법제도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올곧은 해법을 전할 예정입니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을 거쳐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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