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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린 '불나방', 만만하니 흔드나"

[소방관 동행르포·②] "소방방재청 해체 결사 반대" 외치는 이유

소방관들이 광장에 섰다. 25kg의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들은 지난 7일부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징계 등을 우려해 1인 시위는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소방관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인터넷 공간에서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소방 조직이 탄생한 이래로 이같은 집단 반발은 처음이다.

이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에 편입시키기로 한 정부 안을 재검토할 것, △지방직 소방 공무원들 신분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할 것 등이다. 각기 다른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두 주장은 결국 '국민의 안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점을 향한다.

소방관들은 탁상공론을 멈추고 제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리친다. 이에 <프레시안>은 지난 13일, 그들의 현장에 직접 찾아갔다. 당도한 곳은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 위치한 한 소방안전센터. 이들에게서 국가직 전환 문제에 이어 소방방재청 해체 생각을 들어봤다. 편집자. (☞지난 기사 : "
[소방관 동행르포·①] 목장갑 끼고 불끄던 소방관, 왜 광화문 거리로 나섰나")

▲지난달 26일 발생한 고양터미널 화재 현장을 수습하는 소방대원들. ⓒ연합뉴스

"육상 재난 현장은 소방관들이 제일 잘 안다"

야간 근무 교대를 앞두고 장비 점검에 나서기 전, 대원들이 인터뷰를 위해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대원들은 세월호 참사가 '미스터리' 사건이라고 했다. 사고 당일, 해양경찰관들이 왜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세월호 사건이 해양 사고가 아니라 육지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이었으면, 소방관들은 무조건 들어갔을 겁니다. 사람들이 저희(소방관)더러 불나방이라고 하잖아요. 불만 보면 미쳐서 들어간다고요."

김완기(가명) 팀장은 소방관들이 불길에 뛰어드는 행위에 대해 "거의 본능적"이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본능이 아니라 본능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훈련으로 다져진 습관이죠. 질릴 정도로 현장을 많이 다니니까요. 해경과 소방관의 차이라면 아마도 현장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해상은 육상에 비해 구난 경험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소방관은 화재가 나면 일단 현장에 들어가고 봐요. 건물에 사람이 있든 없든. 그런 게 몸에 배어있어요. 그런데 세월호에는 심지어 사람이 수백 명이 있었잖아요. 머리로 생각한 다음 들어간다? 그땐 이미 늦었다고 봐야죠."

이런 맥락에서, 대원들은 현장 대응 능력이 구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장에선 신속한 대처가 제일입니다. 현장은 언제나 급박하게 돌아가니까요. 그러니 현장을 제일 잘 아는 건 소방관들이죠. 현장에선 서로 눈빛만 봐도 딱 알아요. 아마 우리 대원들 팀워크가 한국 축구 대표팀보다 더 좋을 걸요."

사고 규모가 작을 경우는 현장 팀워크만 좋아도 선방할 수 있다. 문제는 대형 사고다. 사상자 10명 이상의 대형 사고일 경우 일차적으로 시·도지사, 그다음 소방방재청장 보고가 필수다. 이 경우, 현장과 행정이 팀워크를 발휘해야 한다.

"현재 소방 조직은 경찰청으로 지휘 계통이 일원화된 경찰 조직과 달리 소방방재청과 시
·도로 이원화돼있습니다. 아무래도 보고할 곳이 여러 군데니까 대응이 늦어지는 감이 있죠. 현장에서는 한시가 급한데 위에서 서로 말이 엉키면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마냥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고요."

이 때문에 소방 조직 내에선 "지휘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현장의 요구와 달리 소방 조직이 더욱 복잡하게 바뀌게 됐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 탓이다.

ⓒYTN 화면 갈무리

"정부조직개편안, 재난 현장 소외시키는 '개악'"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강력한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겠다며 지난달 27일 국무총리 소속의 국가안전처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지난 11일 국회에 제출했다.

발단은 '해경 해체'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엄벌' 차원으로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문제는 그 불똥이 소방 조직에까지 튀어, 소방방재청 역시 폐지하고 국가안전처에 넣도록 한 점이다.

정부 안에 따르면, 현재 차관급인 소방방재청장(소방총감)은 1급인 소방본부장(소방정감)으로 격하된다. 재난 발생 시에는 장관급인 국가안전처장이 중앙재난대책본부장 역할을 수행한다. 아울러 세월호와 같은 대형 재난의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중앙재난대책본부장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한 마디로 '옥상옥(屋上屋)'이죠. 겨우 (소방방재)청이랑 시
·도랑 손발 맞춰서 굴러가던 조직을 왜 또 복잡하게 만드는지…"

보고 절차가 늘어난다는 점 외에, 대형 재난 발생 상황을 지휘할 수장 역할을 현장 경험이 전무한 일반직 행정공무원이 맡는다는 점도 문제다. 김 팀장은 "현장을 소외시키는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군 조직을 예비군 중장이 지휘하는 거나 경찰 조직을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 지휘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현장 한 번 가본 적 없는 분들과 우리가 말이 잘 통할까요. 현장과의 괴리가 더 심각해질 겁니다. 책임 소재는 더 모호해지고요. 조만간 육상에서도 세월호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단 얘기입니다."

소방 조직 내 반발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최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문제들이 직제개편위 구성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민간위원 아홉 명이 직제위에 들어갔는데 조직, 인사 분야 전문가 6명에 해양 전문가 2명이고, 소방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어요. 소방 전문가를 빼놓고 안전을 논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조직개편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현장 근무자들로선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재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방향에 대해선 우리 조직 내부에서도 논의가 필요하거든요. 조그만 구멍 가게 하나를 차리더라도 사업성 검토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리지 않나요. 국가의 대사(大事)인데, 세월호 참사 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서두르는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소방관들의 모임인 소방발전협의회의 회장인 고진영 전북 군산소방서 소방장이 도심 더위속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지방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이 뒤로 밀려나는 것만큼은 볼 수 없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안 발표 이후로 소방 대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서강원(가명) 대원은 "솔직히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잘못한 건 우리(소방)가 아닌데. 같은 제복 공무원이지만 경찰이나 직업 군인에 비하면 소방 공무원들은 힘이 없거든요. 그래서 '만만한 게 우리 조직이니까 이렇게 흔들어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방관 각자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단체로 의견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소방 조직은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6년과 2007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소방관의 단결권을 보장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긴급 재난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파업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다른 나라에는 다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안 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관련 기사 : "고양이 구하다 죽은 소방관은 국립묘지 못 간다?")

"최소한 소통 창구는 있어야 해서 직장 협의체라고 꾸릴까 하는데 쉽지 않아요. 그러니 단순히 처우 문제뿐 아니라 이런 중대 사안이 있어도 서로 소통할 수가 없어요."

다행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소방관 글이 화제가 되며 '소방해체 반대' 서명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소방관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소방 조직이 들고 일어난 게 처음이잖아요. 묵묵하게 현장에서 일해야 할 저희가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칠까봐 염려도 됩니다. 하지만 감수할 문제죠. 구조 현장이 뒤로 밀려나는 것만큼은 볼 수 없으니까요. 저희가 많이 버는 걸 바라고 이 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시민들이 격려해주시고 좋아해 주시니까 버티는 거죠. 그저 현장에서 사명감 갖고 일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설움을 토해내던 대원들이 결국 눈물을 보였다. 조용히 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30년 차 송재욱(가명) 지역소방본부 계장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전화벨이 세 번 이상 울리면 불안하거든요. 직업병이죠. 아마 재작년 크리스마스 전날인가 밤에 당직을 서고 있는데 11시 반쯤 전화가 왔어요. 아들이더라고요. 평소엔 그런 얘기 잘 안 하던 애가 <타워>라는 영화를 봤다면서 '아버지 직업 자랑스럽다'고 하는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차마 아들한테 소방관 하라는 말을 못하겠어요. 이 조직을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후 5시 40분, 장비 점검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자 대원들이 서둘러 눈물을 닦고 센터 밖으로 나갔다. 무더운 날, 방화복을 입은 그들은 다시금 현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끝)

▲장비 점검 후 구호를 외치는 소방관들.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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