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이 병원 내 '독점 내부 거래'를 고착화함으로써 공정거래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자회사 남용 방지책으로 '부당 내부 거래 금지'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안했지만,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공의료팀,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16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병원 영리 부대사업 확대와 자회사 설립 가이드라인의 위법성에 대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또한 "조만간 환자, 의료인 등 고발인을 모집해 보건복지부를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병원-자회사 간 독점 거래, 공정거래법 위반"
송기호 변호사는 "보건복지부가 허용하려는 영리 자회사는 오로지 그 병원에서 하는 부대사업을 위탁받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하는 회사"라며 "이는 특정 사업자에게 독점 사업권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병원 부대사업을 몰아주도록 하는 설립 목적을 지닌 영리 자회사를 출범하는 것 자체가 '독점 거래'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어긋나는 차별적 조치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영리 자회사 남용 방지책으로 '부당 내부 거래'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 송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부당 내부 거래'는 기업집단이 내부 계열사에 제공하는 인적, 물적 지원인데, (오로지 내부 거래를 하기 위해 탄생한 자회사에) 부당 내부 거래를 제한하겠다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외부 투자자에게 병원 자회사 경영권 확보 길 터줘"
영리 자회사와 모회사인 병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지목됐다. 자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병원이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그동안 의료법인이 부대사업을 할 때 임대나 위탁 수입을 높게 잡았었지만, 이제는 위탁 계약할 당사자가 자회사가 됐다"며 "의료기관에 유리하게 계약을 체결하려면 자회사의 영업비용이 증가하므로 모순이고, 자회사의 영업 이익이 감소하면 출자자인 의료법인의 배당 이익이 줄어드는 악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의료법인이 자회사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기 위해 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데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외부 투자자들이 나머지 지분 7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병원의 자회사를 사실상 지배할 길을 터줬다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 어긋나도 처벌할 법적 근거 없어"
문제는 이러한 내용의 정부 가이드라인이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송 변호사는 "복지부 장관이 어떤 의료법인에 자회사를 허용할지, 자회사가 어떤 사업을 할지도 결정하겠다는데, 이러한 결정에 아무런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치주의의 기본 질서조차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병원과 영리 자회사가 '부당 내부 거래'를 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면, 해당 병원에 시정명령, 설립 허가 취소 등 관리·감독을 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실제로 처벌에 돌입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은 "가이드라인에 위반됐다고 해서 의료법인을 규제하는 것은 형법상 죄형법정주의,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꼬집었다. 정소홍 민변 공공의료팀장도 "아무리 남용 방지 장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영리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내용과 너무 배치된다"며 "하위 법령이 상위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법질서를 뒤집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시행규칙 개정으로 병원 장사 허용"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영리 자회사, 부대사업 확대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번번이 법 개정에 실패했다"며 "법 개정으로 안 되니 시행규칙 개정안으로 꼼수를 부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건강기능식품 판매는 배제한다면서 식품 판매업 전체를 허용하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판매업은 제한하면서 연구 개발은 허용하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건물 임대, 건강 마케팅과 결합할 식품판매업, 목욕장업, 수영장, 체육시설장,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연구개발 명목으로 환자에게 의료비가 전가될 수 있다"며 "이번 조치는 환자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아 병원의 장사를 허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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