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 '싹쓸이'다.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중부 벨트를 장악했다. 당초 승리가 점쳐지던 충남지사 선거 외에도 충북지사, 대전시장, 세종시장까지 모두 새정치연합 후보가 당선됐다.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새정치연합과 그 전신인 정당이 중원 지역에서 모두 승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중원을 잡는 자가 전체를 잡는다'는 공식은 이번 선거에서 깨져, 새정치연합은 예상 밖 '충청 대승'을 거두고도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패해 전체 선거의 승기를 잡진 못했다.
캐스팅보트 '중원' 잡아라…안희정, 대권 '앞으로'
전통적으로 충청 지역은 전체 선거 승패를 좌우할 승부처로 불려왔다. 영호남의 지역주의 투표가 강한 구도에서, 매번 충청권이 전국단위 선거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충청권에서만 문재인 후보보다 28만여 표를 더 확보해 대권을 손에 쥐었다. 여야 지도부가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2일 일제히 충청 지역을 찾으며 표 몰이에 나선 이유다.
여야의 중원 싸움은 이번 지방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지난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전과 세종시 두 곳, 민주당이 충북과 충남 두 곳의 단체장을 확보해 이미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룬 상태였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이후 전체 선거의 판세가 박빙으로 치달음에 따라, 여론 변화에 민감한 수도권과 함께 좀처럼 표심의 향배를 종잡을 수 없는 충청 지역이 최대 승부처로 부상했다. 최근까지 여론조사에선 충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전은 새누리당이 각각 우세한 상황에서 충북과 세종은 백중세 지역으로 꼽혔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뒤집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승'이었다.
충남의 경우 새정치연합 안희정 후보가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를 상대로 낙승을 거뒀다. 특히 안 후보는 이번 재선에 성공하면서 야권의 '대권 잠룡'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새누리당보다 훨씬 낮은 정당 지지율을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야권의 유력 주자로 떠오른 셈이다. '노무현의 남자'라는 정치적 명함을 떼고 '정치인 안희정'으로 홀로서기 하는 기반 역시 마련했다.
대전에선 '대역전극'이 벌어졌다. 선거 초반 20%포인트 넘는 격차로 뒤지던 새정치연합 권선택 후보가 새누리당 박성효 후보를 맹추격해 결국 '탈환'의 승리를 거뒀다. 권 후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심판 여론에 힘입어 막판 '뒷심'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막판까지 피 말리는 접전을 벌였던 충북지사 선거에선 현역인 새정치연합 이시종 후보가 새누리당 윤진식 후보에 맞서 2%포인트 차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수성했다. 고향(충주)과 출신 고교(청주고)가 같은 두 후보는 2008년 18대 총선에 이어 두 번째 맞대결을 펼친 끝에 두 차례 모두 이 후보가 승리했다.
첫 광역급 선거를 치른 세종시에선 새정치연합 이춘희 후보가 새누리당 현역 유한식 후보를 상대로 거뜬한 '탈환'의 승리를 거뒀다. 세종시장 선거 역시 두 후보의 재대결로, 2년 전 시장 선거에선 유 후보가 승리했지만 늘어난 '공무원 표심'이 이 후보에게 쏠린 것으로 보인다.
지역정당 없는 첫 선거…'무주공산' 野가 잡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충청 대승'은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충청권의 지역 연고를 앞세운 정당 없이 치러진 첫 선거로, '무주공산'에서 야권이 이례적인 싹쓸이를 한 셈이다.
지난 1~3회 지방선거 때는 자유민주연합, 4회 선거엔 국민중심당, 5회 선거엔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 등 지역 기반 정당이 있었다.
그러나 한 때 충청권의 '맹주'로 불릴 정도로 위력적이던 이들 정당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 1~2회 선거에선 자민련이 3곳 모두를 싹쓸이 했지만, 3~4회 선거에선 한 곳(3회 충남지사)에서만 승리하고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5회 선거에선 자유선진당이 1곳(대전), 민주당이 2곳(충남, 충북)에서 승리했다.
다만 자유선진당은 기초단체장 13명과 광역의원 41명, 기초의원 118명을 배출하는 등 대전과 충남에서 광역·기초의회 모두 원내 1당으로 의회를 장악했다. 충청 출신 거물 정치인의 '대'가 끊기면서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거대 정당에 밀려 힘을 잃었지만, 여전히 기초단위에선 그 기세가 남아있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명맥을 이어오던 지역정당이 완전히 사라졌고, 선진당 당적이 있었던 단체장과 의원들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역의 '맹주'가 사라지면서 충청권이 여야 모두가 공을 들이는 최대 접전지로 부상한 것이다.
'보수적 野性'의 충청, 새정치 '신승' 배경은?
충청권의 또 다른 특징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여당이 장악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진보·개혁 성향 정당이 승리한 적도 없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권에선 자민련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선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권에선 선진당이 차지하는 식이었다. 정리하자면 '보수적 야성(野性)'이라는 충청 지역의 독특한 정서가 이어져온 셈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압승한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 충청 지역 민심이 더욱 보수화됐다는 분석도 나왔었다.
그러나 판세는 안갯 속이었다. 지역정당인 선진당이 새누리당에 흡수되면서 보수 정서가 강화됐지만, 세월호 참사로 현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네 곳 모두에서 결과를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어느 한 쪽이 몰표를 가져가기 어려운 '스윙 지역(특정 정당의 우세가 두드러지지 않는 지역)'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심판 투표'가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힘을 싣는 '보수적 정서'를 누른 것으로 풀이된다. 네 곳 모두 새정치연합 후보가 이겼지만, 네 곳 중 두 곳이 아찔한 표차의 '신승'이라는 점이 이런 지역적 특징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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