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담장에는 요즘 장미가 한창이다. 자칫하면 딱딱하게만 보일 수 있는 커다란 시멘트 건물이 빨간 꽃송이들과 어우러지니 제법 그럴싸한 풍경이 됐다. 정문 앞에 적힌 '자유 평등 정의'란 문구가 최종심급의 위엄과 맞물려 낭만을 한층 더한다.
이인근(50) 씨는 그런 풍경 앞에 나 홀로 서 있다. 대법원 앞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어, 대신 피켓 두 개를 들었다.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합니다", "NO CORT! 이 기타를 만들던 손이 7년째 멈춰있습니다"라는 글귀가 그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24시간을 이곳에 있다 보니 일교차를 온몸으로 느낀다. 대법원 앞에서 그를 만난 27일 오후, 서울 낮 기온은 26도까지 올랐다. 햇살이 따가운데도 "씻을 수가 없으니 선크림은 잘 바르지 않는다"며 "이러다 검버섯 피겠어요"라는 농을 던졌다.
"폐업 빙자한 정리해고…7년 싸움의 시작"
이 씨가 대법원 앞에 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를 포함한 (주)콜텍의 정리해고자들은 지난 2012년 2월 23일에도 이곳 대법원 정문 앞에 있었다. 5년에 걸친 부당해고 법정 싸움에 드디어 종지부가 찍힐 거라 굳게 믿었던 날이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 씨는 서른네 살에 통기타를 만드는 콜텍 대전공장에 입사했다. 당시 월급 40~50만 원.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을 받으며 산업재해와 뿌연 먼지가 가득한 공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에 떨며 지냈다.
"주문량이 줄면 우르르 내보내고, 주문량이 늘면 새로 사람을 뽑고, 비수기이면 다시 우르르 내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2005년 7월 말인데, 그때도 10여 명이 강제 사직을 당했어요. 7월 말이면 휴가 기간이잖아요. 휴가비라도 달라고 했는데 미스터 박(박영호 사장)이 그것도 거절했어요. 동료들이 질질 울면서 나가는 걸 지켜봐야 했지요."
그렇게 휴가가 끝나고 일터에 돌아왔을 때, 이번엔 '20~30명이 연말에 나가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다. 이 씨와 동료들은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한다. 2006년 4월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를 설립했다.
노조가 생기고 딱 12개월 후인 2007년 4월, 회사는 돌연 대전공장에 대한 '휴업 후 폐업'을 공고한다. 매년 당기순이익을 66억 원 이상 내던 회사가, 얼마 전에도 '주문량이 늘었다'며 임금을 9%가량 올리는 데 합의한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 38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했다.
11년을 바친 공장에서 이 씨는 그대로 쫓겨나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생산성 저하에 폐업'이란 회사 쪽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보단 노조가 생겨 인력을 마음대로 늘리고 줄일 수 없으니 '폐업을 빙자한 정리해고'로 노조를 없애버리려는 계산이 깔렸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기 아들한테 경영권을 승계하기 전에 무노조 기업을 만들어주려는 게 있었을 거예요 일단. 또 한 축으로는 인도네시아(피티콜트)랑 중국(콜텍대련유항공사)으로 물량을 많이 돌리다 보니 국내공장(부평공장·대전공장)에 대한 구조조정도 하고 싶었을 거고요."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이기겠구나 했는데…"
이렇게 시작한 부당 해고 싸움이 벌써 8년째다. 해고 때 중학교 1학년이었던 큰딸은 어느덧 대학교 2학년생이 됐다. 그 세월, 한강 인근 송전탑에서 30일간 고공 농성도 해봤고,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콜텍 본사를 점거도 해봤다.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따져도 봤고, 이들을 지지하는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Cort 기타 불매운동' 등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한 축이 기나긴 법정 투쟁이다. 근로기준법 24조가 정한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 등이 충족된 해고였는지를 따지는 법정 싸움에서, 각급 재판부는 때마다 엇갈린 결론을 내놨다. 2007년 충남지방노동위원회 부당 해고 판정. 2008년 중앙노동위원회 해고 정당 판정. 2009년 서울남부지방법원 해고 정당 판결. 2009년 서울고법 부당 해고 판결.
이때까지 핵심 쟁점은 대전공장과 (주)콜텍 본사와의 관계였다. 회사는 수익성이 낮은 대전공장은 본사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됐으므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대전공장에서만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대전공장은 생산, 본사는 영업·판매로 서로 보완 관계에 있으므로 콜텍 전체 차원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따져야 한다고 맞섰다.
고등법원은 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고등법원은 2009년 11월 "대전공장만 아니라 콜텍 전체 상황을 봐야 한다"며 "66~117억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부채비율도 동종업종 평균보다 낮았으므로 38명을 정리해고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 희망의 문을 연다.
"고등법원 판결 나오고는 희망이 넘쳤지요. 판결문이 워낙 잘 나왔기 때문에 이게 대법원에서 뒤집힐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이기겠구나…."
그러나 '믿었던' 대법원은 이런 기대를 한순간에 꺼트렸다. 이전까지는 논란이 돼지도 않았던 새 쟁점과 논리를 갑자기 꺼내 들면서다. 당시 대법원은 '장래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 감축도 정당할 수 있다'며 '대전공장의 경영악화가 콜텍 전체 경영악화를 막기 위한 불가치한 조치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끝나는 줄 알았던 법정 투쟁에 '2년'이란 세월이 털썩 얹어지는 순간이었다. 파기환송심의 재심리, 상고, 다시 대법원 판결. 거기에 '장래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구조조정이라니. 싸움 5년 만에 이 씨 등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날 마시려고 담가놓은 승리주가 있었는데…. 대법 판결 듣고 나와선 그냥 비참하게 처져 있었어요. 대전공장과 콜텍 본사가 연결된 사업체란 걸 이제야 인정받았는데, 대전공장 경영위기가 극복 안 될 경우 콜텍 전체에 영향을 미칠지 안 미칠지를 따지라니요."
'전관예우' 안대희…"그런 권력욕 때문이었나"
당시 이런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주심 중 한 명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다. 콜텍 해고자들에게 절망을 한가득 안긴 안 전 대법관은, 이 사건을 파기환송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이후 이 씨는 안대희라는 이름을 잠시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대법원 앞 24시간 1인 시위 나흘째였던 22일, 안 전 대법관에 대한 국무총리 내정 소식을 듣고 다시 그가 떠올랐다.
"아 그 안대희. 우리 정리해고 판결한 그 안 씨. 그렇게 권력욕이 있어서 우리 사건은 그렇게 판단하고 새누리당에 간 거구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렇게 전관예우를 받도록 쌓아올린 판결들 중 하나가 우리 판결이지 않겠어요."
콜텍 노동자들은 지난 1월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패소했다. 여기서 역시 콜텍과 대전공장이 하나의 회사임은 인정됐지만, "대전공장의 정리해고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사업부 정리이므로 정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에서 긴박하다고 하면 정말 산이 무너지고 그런 상황, 기업이라면 당장 부도 위기에 처해있는 그런 상황인 거잖아요. 그런데 법원은 법전에 있는 명백한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려요. 세상에 몇십 년 몇백 년 흑자만 내는 기업이 어디 있어요. 미래에 적자가 안 나는 기업은 어디있고요. 안대희 말대로면, 어떤 경우에도 정리해고가 가능한 거예요. 법과 법원이 스스로 근로기준법 24조를 무력화한 겁니다."
지칠 법도 하지만 이 씨는 포기할 수가 없다. 이대로 싸움이 끝나면 수많은 기업이 박영호 사장의 '폐업을 빙자한 정리해고'를 벤치마킹할 거란 우려 때문이다. 또 이대로 포기하면 박영호 사장이 '이때다' 하며 공장을 새로 가동해 더욱더 악착같이 노동자들을 착취할 거라고 본다.
그는 그래서 오늘도 24시간 피켓을 들고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마지막 희망인 대법원이 심리 한 번 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을 기각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 심리 날짜가 잡힐지도 알 수 없어 언제 이 1인 시위를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씨가 대법원 정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법의 근본 취지에 맞게 판결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건뿐 아니라 모든 사건을, 저 앞에 새긴 저 '자유 평등 정의'처럼 평등에 입각해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면 좋겠어요. 자본과 권력의 시녀 역할에서 벗어나 약자와 서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 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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