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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게 '사기꾼'이라 소리친 남자, 그 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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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에게 '사기꾼'이라 소리친 남자, 그 패기는…

[금정연의 '요설'] 카프카의 <소송>


<제28장> 독자들께 드리는 보고 (2)

<소송>은 서른 살의 생일날 아침 은행원 요제프 K가 '느닷없이' 체포되면서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여덟 시경에 식사를 가져다주던 하숙집 여주인 그루바흐 부인의 가정부가 나타나지 않아, 이제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것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베개를 베고 누워 하릴없이 건너편 노파의 집을 바라보던 K 앞에 한 사내가 들이닥친 겁니다. 그리고 말하죠. 체포되었으니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K는 항의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습니다. K 또한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아요. 제 말은, 물론 저항은 하지만 대단한 저항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의식의 표면에서는 그 사실을 미처 전해 듣지 못했다는 듯 우왕좌왕합니다. 하숙집 주인을 찾아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고, 신분증명서를 내밀며 마치 무언가 오해가 있다는 듯 자신을(자신의 무죄가 아니라)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무용한 시도일 뿐이죠.

"이게 내 신분증명서들이오."
키가 큰 감시인이 곧바로 소리쳤다.
"어린애보다도 더 못되게 구는군요.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요? 신분증명서니 체포 영장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 감시인들하고 말다툼을 벌여 중대하고도 골치 아픈 당신의 소송사건을 속히 결말짓자는 거요? 신분증명서 같은 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우리는 하루 열 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말고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말단 직월일 뿐이오. 우리의 신분에 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이것이 전부요. 그렇지만 우리가 근무하는 상급 관청이 이런 체포 명령을 내리기 전에 체포의 사유와 체포 대상자의 신원에 대해 아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소. 거기에는 착오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소. 내가 알기로는, 하기야 나는 말단 부서의 일밖에 모르지만, 우리 관청은 결코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이끌려서 우리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이게 법이라는 거요. 그러니 어디에 잘못이 있을 수 있겠소?"
"나는 그런 법을 모릅니다."
K가 말했다.
"그렇다면 더 심각하군요."
(<소송>(홍성광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14쪽)

▲ <소송>(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펭귄클래식코리아
주민들의 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죄에 이끌려서 감시인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법이라는 감시인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물론 상급 관청에서야 모든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들이 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오히려 K가 자신의 죄에 대해 그들에게 말해줘야 할 판입니다. 고백의 의무는 그들이 아닌 K에게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비록 요제프 K가 체포는 당했지만 기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체포 사실을 알린 감독관이 직접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군요. 당신은 분명히 체포되었지만, 당신이 직장에 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평소처럼 생활하는 데도 하등 지장이 없고요."
"그렇다면 체포된 것이 딱히 나쁜 일은 아니군요."
K는 감독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난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감독관이 말했다. (26쪽)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다음 일요일에 사건에 대한 간단한 심리가 있을 것이라는 통고를 받고 외곽에 위치한 법정을 찾아 나서지만, 그리고 그것은 전형적인 '카프카적인kafkaesk' 여정이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길게 나열해 여러분을 지루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실은 그보다 제가 지루하기 때문입니다만, 이것은 그저 가외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다만 법원에서 K가 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기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다시금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도무지 이치가 닿지 않는 예심판사와 싸운 후 "이런 사기꾼 같으니! 모든 심문을 거저 줄 테니, 당신이나 받지 그래"라고 내뱉은 후 법정을 빠져 나온 것입니다. 참으로 패기 넘치는 청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런 패기와는 달리, K는 소송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재판을 거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법원을 찾으며, 법원과 소송의 세계가 점점 더 그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잠식해나갑니다. 당연히 직업상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받고, 그는 사회적인 일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유리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저는 지금 옮긴이의 해설을 수정해서 옮기고 있습니다). K는 가망 없는 의뢰를 맡은 사설탐정처럼 법원의 정체를 밝히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의 서툰 시도는 매번 실패로 돌아가고 그는 점차 무기력에 빠집니다. 그러니 일당 25달러를 받는 탐정보다도 운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재미있는 건, 요제프 K의 가정과 예측이 법원에 의해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옮긴이의 해설을 직접 인용하도록 하지요.

K가 처음으로 법원에 출두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에게 날짜는 통보되었지만 시간은 언급되지 않았다. K는 자기 마음대로 아홉 시로 정하고 법원으로 출두하지만 열 시에야 법원 사무처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제 법원으로부터 한 시간이나 늦었다고 비난을 당한다. 소설의 끝에서도 K는 법원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채 사형 집행인들을 기다린다. 이 같은 예측만으로도 실제로 형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송의 진행 과정에서 그에게 모습을 드러낸 건 단지 법원의 하급 조직뿐이다. 법원 전체와 그 핵심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K가 벗어날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366~367쪽)

이어서 옮긴이는 <소송> 안에 삽화로 제시되는 '법 앞에서'의 시골 남자와 마찬가지로 K 역시 하급 재판소의 발언들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한 채 본인 스스로 자신의 소송을 쓸데없는 방법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 도대체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 막스 브로트. (출처 : radio.cz)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표준적인 해석을 끌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소송>을 신의 심판과 은총이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한 막스 브로트의 관점에서라면 본질은 당연히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은 언제나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역사하시니까요. 인간이기에 K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신의 아량에 의해 그는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뭐가 은총인지는 저에게 물어도 소용없습니다. 아마 더 비열한 명칭을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은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은총이겠죠. 물론 당신은 브로트의 해석이 제가 거칠게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의 은총 또한, 이따위 말보다는 훨씬 더 섬세한 것이라고요. 그러나 그렇다면 당신과 신의 섬세한 감각으로 저 역시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두시기를 바랍니다.

▲ 테오도르 아도르노. (출처 : jamesgordonfinlayson.net)

다음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비인간적인 오스트리아의 관료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아도르노의 해석입니다. 이 경우 본질이라는 것은 제도 그 자체입니다. 무용하고 비인간적이며 다만 사람을 지치게 할 뿐인 바로 그 제도. 별로 재미있는 해석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카프카가 바우어와 겪은 약혼과 파혼 과정을 그린다"고 본 빈더의 자서전적인 관점입니다(잠시 덧붙이자면 세상에는 이보다 많고 훌륭한 해석들이 존재하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 중 세 개만을 소개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역자 해설에 소개되어 있어 인용하기가 편하다는 이유, 그것뿐입니다). 그것은 작품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현대의 독자들과 어설픈 심리학에 끌리는 딜레탕트들이,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선호하는 해석일 것입니다. 이 경우, K의 죄는 명백하고 법원의 정체 또한 명확하겠지요. 카프카 자신의 죄책감, 그리고 그것을 불러일으킨 보편적인 마음의 구조라는 말입니다.

이 경우, 그것이 관료제를 닮았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결국 무의식이라는 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진실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복잡하고 관료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현실의 관료제는 우리를 어떤 진실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요? 글쎄요, 그건 이 자리에서 논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파혼입니다. 카프카는 왜 그런 선택을, 그것도 두 번이나, 해야만 했을까요? 아아, 파혼이라니, 신혼인 제가 다루기에는 부적절한 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일이죠. 힌트는 바로 청원서를 좀처럼 작성하지 않는 변호사에게 분통을 터트린 K가 본인이 직접 그것을 작성하기로 결심하는 부분에 있습니다.

▲ 프란츠 카프카. (wikimedia commons)
오늘 K는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든 꼭 청원서를 작성할 생각이었다. 사무실에서 쓸 시간이 나지 않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집에 와서 밤에라도 써야 했다. 밤 시간으로 모자라면 휴가라도 얻어야 했다. 다만 그 일을 중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업무에서뿐만 아니라 언제 어떤 경우에도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청원서는 물론 거의 끝이 없는 일이었다. 그다지 불안해하는 성격이 아니더라도 조만간에 청원서를 완성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변호사가 청원서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이는 게으름이나 술책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기소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금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부 기억에 되살려서 표현하고 여러 각도에서 검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작업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런 일은 아마 언젠가 퇴직을 한 후에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는 노인이 몰두하기에 적합하고, 노년의 기나긴 날들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K가 모든 생각을 자신의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이때, 아직 승진 가능성이 많고 어느새 부지점장한테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매시간이 대단히 빨리 흘러가는 이때, 그리고 젊은이로서 짧은 저녁과 밤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이때, 이런 청원서를 작성하는 일이나 시작을 해야 하다니. 이런 생각을 하니 다시 탄식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164~165쪽)

처음에는 식은 죽 먹기이고, 다만 수치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에 이르기까지 전부 기억에 되살려서 표현하고 여러 각도에서 검토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그것은 글쓰기입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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