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불법 근로자 파견(불법 파견) 혐의를 받아온 시간이 10년이다. 2004년 노동부가 사내하청 127개 업체, 9234개 모든 공정을 불법 파견으로 판정했고, 뒤를 이어 대법원이 2010년과 2012년 현대차의 사내하청 사용을 '불법 파견'이라 인정했다.
그럼에도 여지껏 파견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는 '0명'이다. 불법 상태가 10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물론,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반면 '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온 노동자들에겐 해고, 징계, 고소·고발, 230억 대의 손배·가압류 등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이뿐이 아니다. 생산 현장 안에서는 불법 파견 '증거 인멸' 작업이 야금야금 진행 중이라고 노동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296일 철탑 농성을 벌였던 최병승 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조합원은 19일 열린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검찰의 기소 유예와 법원의 판결 연기로 범죄 현장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업 ①] 사내 하청 자리에 직영 비정규직 사용
최 씨가 말하는 '증거 인멸 작업'의 대표적인 방식은 직접 고용 기간제인 '촉탁 계약직' 사용이다. 과거 현대차는 산업 재해나 휴직 등으로 일정 기간 정규직 노동자가 자리를 비우면, 그곳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비상 도급' 또는 '단기 하청'이란 이름으로 대체 투입했으며, 이를 노동부와 대법원은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했다.
따라서 법에 따라 해당 인력을 정규직 전환해야 함에도 현대차는 촉탁 계약직 채용이라는 '꼼수'를 택했다. 불법 파견 문제가 생긴 자리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계약 해지 및 업체의 공정 반납 방식으로 몰아내고, 또 다른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 또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투입해 불법 논란을 빗겨가고 있단 것이다.
최 씨는 "노동부가 불법 파견 판정을 내린 이듬해인 2005년 1공장 지원반(단기 하청의 하나로 '하루' 대체 인원들을 뜻함) A조에는 직영 6명, 정규 하청 32명, 한시 하청 2명이 일하고 있었고 이들을 정규직이 관리했었다"며 "그러나 2014년 1공장 A조에 남은 사내하청 지원반 인원은 고작 3명"이라고 말했다.
촉탁 계약직 사용과 관련해,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도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고 했다. "사내하청을 고용 방패막이와 노동 강도 전가를 위한 스펀지로 인식한" 지부가 현대차와 2012년 11월 '직영 촉탁계약직 운영 관련 별도 합의'를 하는 등 현대차의 불법 은폐를 "적극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해줬다"는 지적이다.
[작업 ②] 양도양수식 업체 변경에서 자산 매각식 변경으로
촉탁 계약직 채용과 더불어 현대차는 하청 업체를 교체하는 방식도 바꾸었다. 기존에는 업체를 변경해도 기존 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고용이 승계되는 '양도양수' 방식을 써 왔다. 예컨대 A 업체에 일감을 주다 B 업체로 바꿀 때, 두 업체가 특약을 체결해 고용을 승계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달리 말해, 하청 업체들에 노무 관리 독립성이 없었음을 뜻했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은 2007년 6월, 아산 공장 해고자 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6명의 근속을 첫 업체 입사일을 기준으로 계산해 고용의 연속성을 인정했다.
그러자 현대차에서의 업체 변경 과정은 '양도양수'에서 '자산 매각'이란 새로운 형태로 진행된다. 'A 업체 폐업 공고 → B 업체가 A 업체의 자산을 인수 → A 업체와 현대차가 새 도급 계약 체결 → A 업체가 경력직 신규 채용 공고'의 방식이다.
최 씨는 "아산 판결 이후 울산 3공장에서 처음으로 사내하청 업체 지엠에스가 폐업했고, 경남산업이 현대차와 새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 과정에서 경남산업은 지엠에스의 사무용 비품을 사들이고, 작업자는 기존 업체에서 퇴직 절차를 밟은 후 새 업체에 신규채용 돼 근속이 단절됐다"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측이 이 같은 업체 변경 방식을 2010년 대법원 불법 파견 판결 이후에도 지속하자, 그해 11월 15일부터 25일간 울산공장 점거 파업을 벌였다. 이때에 계기가 된 게 하청업체 동성기업의 폐업이었다.
현재 현대차의 업체 변경 방식에는 '업체 통폐합' 형태도 추가됐다. 최 씨는 "2012년 대법원이 판결에 따라 신규업체 설립 방식을 통한 불법 은폐 효과도 사라진 결과"라며 "현재는 노조의 감시가 강한 곳에선 업체 통폐합 방식이, 사각지대에선 자산 매각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 ③·④] "눈 가리고 아웅" 식 설비 이관과 작업 표준서 철거
세 번째는 설비 이관 문제다. 과거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들은 원청의 생산 설비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일을 처리했다. 이를 두고 대법원과 노동부는 '하청업체에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없다'며 불법 파견 판정을 내린다.
그러자 현대차는 일부 설비를 하청업체에 유상으로 이관한다. 다만 현대차의 생산 설비 대부분은 고가품이라 하청업체가 이관 가능한 장비는 제한적이었다.
최 씨는 "비교적 가격은 싸지만 설비 축에는 끼는 장비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이관됐다"며 "기계에 새겨진 현대차 마크 위에 협력업체 이름의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판정과 대법원 판결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됐던 것은 '작업 표준서'였다. 최 씨는 "하청업체의 작업 표준서가 게시된 공정에 촉탁직과 정규직이 일하는 상황이 생기자, 아예 작업 표준서들이 철거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작업 ⑤] 공정 재배치 통한 원·하청 노동자 '분리'
이 같은 작업들을 진행한 결과, 현대차는 2004년 노동부에 제출했던 이른바 불법 파견 '개선 계획서'의 거의 모든 내용을 실행으로 옮긴 게 됐다. 현대차로선 '불법 개선'이겠지만 노동자들로선 처벌 없는 '불법 은폐'가 거의 완성됐음을 뜻한다.
마지막 하나 남은 작업이 있다면, 이는 원·하청 노동자 혼재 작업 문제를 푸는 일이다. 앞서 노동부와 대법원은 원·하청 노동자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혼재 돼 일하기 때문에, 각 업무가 독립적으로 진행될 수 없어 불법 파견이라고 결론 내렸다.
최 씨는 현대차가 '공정 재배치를 통한 블록(Block)화'를 꾸준히 시도해 혼재 문제를 풀려 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직영 노동자들 사이 사이에 흩어져 있는 하청 노동자들을 한곳으로 모아 '블록'을 형성, 원·하청 혼재 문제를 옅게 만든단 얘기다. 이 역시 "2010년 대법 판결 이후 빠른 속도로 추진 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최 씨는 "앞서 한국GM 창원 공장에서도 공정 재배치를 통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 불법 파견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현대차가 불법을 은폐할 수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검찰과 법원이 빠르게 기소 및 판단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아닌 그중 3500명을 선별해 2016년까지 신규 채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000여 명에 대한 채용을 마친 상태다. 아울러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와 사측은 지난 4월, 잠시간 중단됐던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재개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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