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쇼크'가 정치권을 강타했다. 23일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의 표심도 '세월호 전과 후'로 갈린 분위기다.
12일 새누리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면서 주요 승부처의 여야 대진표가 확정됐지만,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대형 참사 발생 후 선거 전망도 안갯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월호 참사 뒤 여권 초비상…'분노의 표심' 우려
당초 이번 지방선거는 새누리당이 다소 우세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세월호 변수'로 인해 백중세로 돌아섰다. 통상 대형 재난 사고는 정부·여당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 긴장하는 쪽은 여권이 될 수밖에 없다.
여권에 대한 불신은 당장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 뒤 60%대의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40%대로 급락했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지지율이 5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대형 선거를 앞두고 비상이 걸린 것은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참사 직전까지만 해도 야당과의 지지율 격차로 승리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참사 이후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빠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12일 발표된 5월 첫째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은 38.1%였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40%대 이하로 추락한 것은 대선 전인 201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인한 '분노의 표심'이 투표장에서 발현될 경우, 여권에겐 그야말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판세부터 변화 조짐이 보인다. 서울의 경우 선거 초반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에게 추월을 허용했던 박원순 시장은 다시 정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고 있다. 경기지사 선거 역시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가 넉넉하게 선두를 달리던 초반 분위기와 달리,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의 맹추격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 다 싫다"…세월호 후폭풍 '정치 거부'로 표면화
그러나 여권에 대한 불신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 역시 소폭이긴 하지만 동반 추락하고 있다.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대안 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한 탓이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지난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의 합당 발표 후 잠시 반등한 것 외엔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총제적인 '정치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평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더플랜'의 양대웅 대표는 "이번 참사가 일차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책임론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야권도 같은 정치권으로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반적인 '정치 불신'이 가중되는 분위기"라며 "대형 참사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정치권 전체에 대한 '반정치', '탈정치'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참사가 청와대와 관료조직, 정당 등 모든 공적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을 넘어 전면적인 '정치 거부'로 표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 대표는 또 "야권이 단순히 '정권 심판론'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이번 참사의 여파가 정치 테두리 안에서 소화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야 모두를 거부하는 무당파의 급증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정례조사에서 무당파의 비율은 세월호 참사 전인 4월 셋째 주 15.0%에서 2주 만에 31.1%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통상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무당파가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야권 스스로 이런 '정치 이탈'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사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의 대응 능력도, 이렇다 할 진상 규명이나 메시지도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 방관했다는 것이다. 실제 참사 직후 야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섣불리 정권 심판론을 내걸다간 자칫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투표는 일종의 선택 행위기 때문에 한 쪽을 응징하기 위해 다른 쪽을 밀어주겠다는 의사가 동반돼야 투표소로 향하게 된다"며 "단선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가 새누리당에 불리하지만, 여권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실제 투표장으로 향할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투표율…野 '무당파 흡수'에 판세 달려
무당파의 급증은 선거의 유동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어느 한 쪽의 '완승'을 기대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관건은 투표율이다.
4년 전인 2010년 6.2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4.5%로, 이는 1995년 1회 동시 지방선거 당시의 68.4%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 역시 이번 6.4 지방선거처럼 선거 직전 천안함 침몰과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해 초반의 '여당 우세' 구도를 뒤흔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2010년 만큼 높은 투표율을 기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의 표심이 투표 행렬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치 불신' 분위기와 맞물려 선거 무관심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당파의 급증 역시 이런 예측을 뒷받침 한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율이 하락하면 참사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여당보다 야권이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상 투표율이 낮으면 정부·여당에,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에 유리한 것이 선거판의 공식이다.
김종배 씨는 "여권에 대한 불신이 야권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표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오히려 여권 고정 지지층은 박근혜 정권 보위 차원에서 투표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양대웅 대표 역시 "자녀의 안전 문제에 민감한 40대의 무당파 이탈이 두드러지는데, 야권이 꾸준히 준비하고 대응 능력을 보여줬다면 야권 표로 흡수됐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무당파 증가로 인한 투표율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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