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 그 이름도 우습기 짝이 없는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꼬박 다섯 번의 수업이 진행된다. 점심을 먹고는 세 번의 수업이 더 이어진다. 아직 집에 가기는 이르다. 두 시간 더 이어지는 보충 수업을 들어야 한다.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교실로 들어와 앉아서 조용히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해야 한다. 밤 10시까지 꼼짝하지 않고 앉은 채 네모난 책상에 고개를 숙인다. 아직 끝이 아니다. 늦은 밤까지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입시학원을 빼먹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숙제도 꼼꼼히 해야 한다. 남들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 뒤쳐지면 안 된다. 우리 착한 아이들아.
"미친 경쟁의 사회이다. 잘못된 입시경쟁으로 '경쟁 피로사회'가 됐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교실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벼랑 끝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이들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아이들에게 '쉼'이 없다. '쉼'이 없는 아이들은 여유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학생들의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악순환 구조이다."
잠이 부족한 아이들의 눈은 생기를 잃었다. 선생님은 40여 명이 들어찬 교실에서 정해진 수업량을 소화하기에도 버겁다. 학원에서 배워 이미 수업 내용을 알고 있는 학생이 절반 이상이다. 질문이 없는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 법을 배운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공교육은 죽었다.
"교육에서 '덕(德)'은 없어진 지 오래다. '체(體)'도 사라지고 있다. 기계적인 '지(知)'만 남았다. 유일한 목표인 대학을 위해 암기적 '지'만 획득하고, 평가하기 위한 경쟁에서 위너(winner)와 루저(loser)만 있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 모두 불행한 사회다.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한가? '좋은' 기업에 취직하면 행복한가? 좋은 대학에 간다고 좋은 직장에 간다는 보장도 없고, 좋은 직장에 간다고 삶이 윤택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는데, 교육 영역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한 곳이다."
"창의적인 질문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는 질문이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 풍경을 보면 3분의 1은 공부하고, 3분의 1은 떠들고, 3분의 1은 잔다. 절반 이상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우리 교육은 긴 수업량과는 모순되게 효율성이 없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조차 학교에서의 학업 성취를 기대하지 않는다. 학업은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세월호 참사'로 10대들의 희생이 처절하게 더 아픈 것은 그들에게는 복종하는 것 외에는 어떤 자율성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대학에 가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학생들을 가두고 자유 의지를 빼앗은 채 규율대로 움직일 것만을 명령했다. 교육이야말로 혁명이 시급히 요구되는 영역이다.
"2011년 7월부터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을 하면서 많은 교육 의제, 교육 현장의 아픔을 대면하게 됐다. 그동안 고민했던 바를 교육이라는 영역 안에서 실현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인간다운 사회로 가는 기반들을 만들고 싶다. 초중등 교육의 왜곡은 대학서열과 입시경쟁 등 잘못된 입시 제도에 따른 것으로, 이를 공론화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자 한다. 협소한 민족주의, 국가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세계적 시야를 갖추고 보다 큰 세상의 다양한 인간과 문화의 조화로운 공존을 생각할 수 있는 장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
- 서울시 교육감 출마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 같다. 우리 사회 '대표 지식인'에서 '교육행정개혁가'로 삶의 거대한 전환을 한 것인데, 이유가 뭔가.
그동안 '지식인' 조희연의 이미지가 강하고, 학술운동이나 교수운동에서 차지하는 나름의 위치도 있어서 놀랐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출마하기까지 많이 고민했고, 막후에서 좋은 후보를 찾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직선 교육감에 도전하는 일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올해 초만 해도 승산이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사한 것 같다. '시대의 짐'을 지는 심정으로 결단했다.
직접적으로는 지난 2~3년간 민교협 의장을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민교협 두 가지 기본활동이 사회민주화와 교육민주화 지원인데 주로 후자를 하다 보니, 교육단체와 접촉면도 많았고 초중등 교육 의제들에 대해 알게 됐다. 자연스레 나름의 의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우리 교육의 다양한 아픔을 현장에서 접하면서 '비평적 지식인'의 역할을 넘어, 직접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우리 교육에는 정말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인 것에서도 나타나듯, 병든 사회의 문제가 고스란히 교육의 아픔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끌어안고 나름대로 치유하고자 하는 심정을 그때나 지금이나 가지고 있다. 비평가에서 비평을 책임지는 실천가로 변신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크다. 교육자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세월호 관련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메어진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윤에 눈이 멀어 안전을 내팽개친 기업, 위기의 순간에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선장,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재난 시스템 등 너무 많은 문제와 모순이 드러났다. 더욱 황망한 것은 '함께 살아가라'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와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학생은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차가운 바닷물에 잠겼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이들에게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다가, 아이들을 떼로 몰고 다니다가, 끝내는 아이들을 바다에 가두어버린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죽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 교감 선생님, 죽음을 앞둔 위기의 순간에 동생을 걱정하고 선생님을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집단적 심리의 풍향 자체를 뒤바꾼 대사건이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두렵기도 하다.
- '인간' 조희연, '시민사회이론가' 조희연에 대해 알아보자. 모범적인 유소년기를 보냈다고 들었는데, 대학에 들어가 데모를 하고 감옥까지 갔다. 유소년기 소년 조희연과 20대의 청년 조희연은 어땠나.
청년기 독재시대를 살아온 조희연이 있고, 민주화의 역동적인 시대를 살아온 조희연이 있으며, 세계화와 민주화 이후를 살며 고민하는 조희연이 있다.
박정희의 삼선 개헌과 유신시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겨자씨'라는, 약간 보수적이지만 개혁적인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에 조금씩 눈을 떴다. 1972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학생운동에 참여, 이른바 '이념 서클'에 가입하면서 진보적인 인생 경로에 들어섰다. 하지만 스스로를 '2선 지식인'이라고 표현한다. 독재시대에 가장 치열하게 저항한 '1선'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두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친구들을 보면서 늘 부끄러웠다.
75~79년은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시대'다. 극단적인 민주주의 말기, 유신독재의 끝을 달렸던 시기였다. 그때는 '2선'의 삶을 사는 대학생도 가만두지 않고 다 감옥에 잡아넣었다. 유인물을 조금 나눠주고 잠시 데모에 참여한 정도의 대학생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78년에 감옥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감옥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감옥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웃음). 감옥에 있으면서 지적인 깊이를 조금 획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0.26 이후 한순간에 유신체제가 끝나고, 80년 '서울의 봄'이 왔다. 그때 다시 학교로 돌아갈 기회도 생겼다. 복학해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많은 동료들이 노동현장으로 갈 때 대학원에 갔다는 것은 매우 미안한 일이다.
민주화 격동기, 전두환 시대 이후에 시작한 대학원 과정을 83년에 마치고 본격적인 학술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여러 동료와 선생님과 함께 진보 학술운동단체인 산업사회연구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학생운동과 학술운동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 현재 성공회대 교수다. 교수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금 대학생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때는 석사만 마쳐도 지방대 교수로 많이 갔는데, 나는 학생운동 전적 때문에 오랫동안 시간 강사로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1990년 당시 각종 학교로 분류됐던 성공회대에 둥지를 틀었다. 전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 총장과 성공회대를 진보 개혁적 정체성을 가진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교수를 초빙하는 역할을 했다. 지식인운동, 학술운동의 한 부분 성공회대를 키우는 데 나름의 노력을 했다. 이 때문에 현재 몸담은 사회과학부 학생들은 진보적 정체성을 갖고 들어온 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큰 대학의 보수적인 풍토에서 고투하면서 지내는 교수와 조금 다른 조건에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거대한 학벌 위계 속에 놓여 있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학벌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간다. 성공회대 학생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진보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평가를 받는 대학으로 편입할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거대한 학벌구조 자체가 대학 생활을 왜곡하고 있다.
또 과거에 비해서 사회 비판적 지성인의 요소가 약화되는 것 같다. 대학생은 그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국가와 민족의 문제를 끌어안고 싸우는 전통이 있었는데, 요즘은 모두가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학생들이 고통스럽게 대학 생활을 영위하며 사회 비판적인 지성인의 전통을 상실해가는 과정이 참으로 안타깝다.
-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중심에는 교육이 있다"라고 했다. 결국 대학 교육 이전에 초중등 교육에도 많은 모순이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요즘에도 보통의 고1 학생이면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하는 0교시에서부터 8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이후 보충수업에 오후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거나 학원에 간다.
이 나라는 잘못된 입시경쟁으로, '경쟁 피로사회'가 됐다. 너무 불필요한 과잉경쟁, 이른바 '미친 경쟁'으로 온 사회가 피로해져 절대적으로 '쉼'이 필요한, 쉬어야 창의성이 발휘되는 그런 사회가 됐다. 한국 사회 중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이제 경쟁 과잉을 치유하는 것으로 떠올랐다. 올해 <병든 사회, 아픈 교육>(한울 펴냄)이라는 책을 냈는데, 병든 사회와 아픈 교육이 악순환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투 트랙으로 함께 해결해갈 것인지 고민했다. 교육감 후보로 나선 것도 교육의 아픔을 치유하는 노력을 통해 병든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교육의 경우는 엄청난 문제점이 있다. 현재 우리 교육은 '지덕체'에서 '덕'이 없어진 지 오래고, '체'를 위한 시간도 없어지고 있으며, 기계적인 '지'만 있는 상황이다. 암기적 '지'만 획득하고, 평가하기 위한 경쟁에서 위너와 루저만 있다. 한국 사회에서 승자라고 해서 행복한가. 아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향후 '사오정'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 사회는 승자와 패자 모두가 불행한 사회다.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는데, 교육 영역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한 곳이다.
요즘 교실 풍경을 보면, 3분의 1은 공부하고, 3분의 1은 떠들고, 3분의 1은 잔다. 아내도 교사인데, 실제 학교에서 여성 교사가 학생을 감당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심지어 잠자는 3분의 1이 수업시간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할 정도다. 떠드는 3분의 1을 잘못 지도했다가는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목소리를 낮추라고 하는 게 현실이다. 학생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학부모조차 학교에서 학업 성취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업은 학원에서 하는 것이고, 학교는 아이가 탈선하지 않도록 인성 교육만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이 자리를 바꾸고 악순환의 구조 안에 혼재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그래서 교육이야말로 혁명이 필요한 영역이다. 이번에 서울시교육감에 나서면서 슬로건 가운데 하나를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로 내걸었다. 창의적인 질문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의 출발점인데, 지금 교실에는 질문이 없다. 적대적 경쟁 안에서는 서로가 적이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 학생들의 내면은 파괴돼 불행해진다. 교실이 공동체 구실을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교사들 또한 무기력해져서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고, 학교란 그저 기업의 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변했다. 여기에 교육청은 1년에 무려 8000여 건, 하루 평균 20건 정도의 공문을 쏟아내고 있다. 현장 교사들이 무수한 잡무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 교육문제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가 학벌 사회이기 때문이다. 학벌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구조가 타파되지 않는다면, '좋은 대학 가기' 경쟁 역시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초중등 교육은 종속변수적인 성격이 있다. 현재 대학 학벌체제가 특히 고등학교 교육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혁신학교를 세워 노력을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활발히 진행되었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중등교육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기’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 단기적인 목표에 대한 강박이 존재하는 한 혁신을 이룰 수 없다.
민교협 의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대학체제 개혁, 학벌체제 개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교육감은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학은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만, 대학 학벌체제가 초중등 교육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한, 개혁에 대해서도 공통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주 급진적으로는 대학평준화와 같은 대안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단계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프랑스 식으로 10개의 국립대학을 통합 국립대학으로 만들고 공동학위를 만들어 각각의 국립대학의 특성 영역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법도 있다. 지역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대학 간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는 대학 네트워크 시스템을 더 확충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학벌 서열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업 교육의 확대와 같이 인문 고등학교 내에서도 진로 탐색을 확대하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진로 탐색 교육을 강화함과 동시에 서울시가 함께 협력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바로 취업과 연결해 안정적으로 노동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학벌 타파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골든브릿지, 용산 등 노동과 생명을 경시하는 현장을 함께 하면서 "사회복지와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한국에서 해고는 곧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민교협 의장을 하면서 2012년 말부터 2013년까지 골든브릿지 노조 파업투쟁에서 사무금융연맹 쪽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1선'은 쌍용차동차나 골든브릿지, 용산 참사와 같이 한국 자본주의의 가혹함 앞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분들이다. 나는 '2선' 지식인으로, 그분들을 지원하며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하층계급이나 노동자에게 한국은 벼랑 끝 사회다.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기감 속에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고 벼랑으로 내몰리는 사회다. 해고를 당한다는 것은 바로 그 벼랑 끝에 서는 것이다. 쌍용차 외 많은 해고자들은 벼랑 끝에서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다. 몇몇의 경우, 극적으로 회사와 타협한 후 일터로 복귀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 그러나 기업이 합의를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 여전한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
- 교육기관 내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계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며,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사회 전체적으로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면서 비정규직 고용 구조를 양산했고, 이런 흐름은 교육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학 시간강사를 포함해 초중고 비정규직 교사 문제도 상당하다. 기간제 교사부터 방과 후 담당 교사, 교무행정 보조사, 급식실 조리사 등의 곳곳에 비정규직이 있다. 일반 대학에 5만 명의 정규직 교수가 있으면, 5만 명의 비정규직 교수 또한 있다. 서울만 해도 초중등교육에 2만 30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확산되고, 그 과정에서 대중들의 삶이 피폐해졌다. 이에 대응해 사회 각 집단과 계급이 저항하면서 이것을 보완하는 복지와 민생 정책을 요구했다. 일부 교육 복지에 대한 요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대중들의 분노와 새로운 복지 요구에 한국의 정치나 정부가 그저 기간제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 과정에 필요한 인력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확대하고, 교사의 업무를 경감하기 위한 교무행정보조사로 기간제 또는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 늘어난 복지 요구에 정치권이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고 편법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복지 감수성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는 복지담론이 출현한 것이고, 거기에 부응하는 아주 낮은 수준의 복지정치가 출현한 것이다. 현재는 전면적인 복지국가로 이행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이지만, 이것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돌파해야한다.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노동 주체의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재편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 이를 위한 정치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 정치권이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한 단계 올라가야 한다. 이를테면 복지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싸움을 전개하는 중도개혁정당, 보수정당으로 변신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계속 지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보정당 스스로는 이명박 정권 이후 당면한 주변화 과정, (심하게는) 게토화 과정에 대해 자기 성찰적 인식을 반드시 해야 한다. 어느 지점에서 스텝이 꼬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의 건강한 성장이 있어야 중도개혁정당도 발전하고 보수정당도 건강하게 된다.
- 양당제 구조에서 고착된 현재 선거 시스템 하에서는 진보정당이 영역을 확보하기조차 쉽지 않다.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나.
87년 형 민주주의는 보수 양당의 독식 성격이 강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기성 정당은 기득권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의 성장을 제약하고 있다. 그래서 최태욱 교수 등이 '협의적(합의적)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수 정당이나 사회 세력이 정치적으로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열린 민주주의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제약하는 것이 바로 남북 대치구조로 인한 반공 분단 의식이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유래한 반공 분단 보수의식이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하고, 이로 인해 쉽사리 '종북 논쟁'이 출현하는 상황이다.
또 하나는 선거제도에 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보수정당과 중도개혁정당에게는 유리하지만 신규 소수정당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굉장히 어렵게 한다. 전면적인 독일식 정당명부제 실시를 통해 소수세력이 제도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협의적(합의적) 민주주의는 많은 제도 변화를 요구한다. 중대선거구제도 생각해 보고, 결선투표제나 정당명부 식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어쨌든 정치권이 더 많은 소수 세력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혁신을 고민할 때다.
- "질 높은 시민운동가를 양성하는 일이 21세기의 성패를 가른다. 시민운동이 전문적 역량을 갖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정치와 시민운동은 어떤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나.
시민혁명을 통해 출현한 근대 민주주의는 원형적인 괴리를 내장하고 있다. 이것은 대중(인민)의 '자기정치'와 혁명을 통해 출현시킨 제도로서의 '대의정치' 간의 괴리이다. 민주주의는 대중(인민)이 최고의 자기 결정권과 자기 통치권을 갖는다는 의미인데, 이런 민주주의 이상이 현실의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의 민주주의는 대중(인민)들의 목소리보다 대표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 구조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뿐 아니라, 사회주의 정당에서도 '과두제의 철칙 현상'(정치조직 특히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조직에서 상위층의 몇몇 지도자들이 그 조직을 계속 지배하려는 권력욕으로 인해 원래의 조직 목표를 망각하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더욱 중요시하는 목표 대치현상)이 존재한다. 모든 정당에서 소수 기득권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감시하는 시민정치나 시민운동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근대민주주의의 원형적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대중(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중(인민)과 정치의 긴장관계가 유지되어 서로에게 견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인민)이 정치에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시민운동의 규모나 영향이 확장돼야 한다.
우리의 시민운동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한국의 운동을 부러워한다. 대만의 경우 노동운동이 굉장히 정치화되어 있다. 운동이 정당정치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어 사회운동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우리나라가 그나마 독립적 운동의 전통이 꽤 강하게 존재할 때 이를 기초로 대중(인민)이 정당을 공격하거나 압도할 수 있고, 시민후보가 정당후보를 앞설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나름대로의 정치와 사회운동과의 전통적 관계를 계속 살려야 한다.
- 그럼에도 우리나라 역시 시민단체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아닌가 싶다. 1994년 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오늘의 참여연대를 만든 주축이었다. 참여연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민영 내가꿈꾸는나라 기획위원장 같은 젊은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1994년 9월 참여연대를 만들었다.
첫 번째 비결은 당시 참여연대가 국민들이 열망했던 시대적 과제인 반부패, 투명성, 권력 감시 등을 선도적으로 자임하고 수행했었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그 시대의 시대적 과제를 파악하고 부응하면 자기 역량보다 더 많은 주목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전까지 운동은 이념적 관점에서 주제를 포착했는데, 참여연대는 당시 대중들이 가장 희망하고 해결하기를 원하는 의제를 연구했다.
두 번째로 박원순 변호사 같은 출중한 시민사회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교수였기 때문에 비상근 사무처장이었고, 박원순 변호사가 최초의 상근 사무처장이었다. 그는 변호사직을 던져버리고 시민단체 상근 간사로서 활동하면서 참여연대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세 번째는 실사구시적 캠페인 전략일 것이다.
물론 모든 조직이 영원히 선도적으로 남아 있기는 어렵다. 한 시민운동이 민주화를 배경으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민주화 이후 세계화의 조건에서 어떻게 자신을 혁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콘텍스트(context, 맥락)에 부응하는 스스로의 혁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2단계의 참여연대 운동, 시민사회 운동 말이다.
- "국민들의 열망, 새로운 맥락의 변화에 민감하라"는 말은 여론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가.
여론에 민감하라는 것보다는 시민운동 그 자체의 업그레이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화 시기에는 기업·국가·권력·정당 모두가 문제투성이였다. 그래서 ‘문제 제기형 시민운동’만으로도 충분히 점수를 따고 국민적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업 및 정부와 정당도 이전에 비해 투명성이나 절차적 민주성에 대해 상당한 변화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의 시민운동은 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권력 감시 역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주목받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심층 취재형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존의 시민운동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 초창기 멤버였던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시장이 됐다. 지난 시절 동료로 박 시장의 시정을 평가한다면?
박원순 변호사는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이다. 아이디어가 엄청 많아 '걸어 다니는 아이디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실행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평소에 엄청난 자료를 분야별로 잘 정리해 두기 때문에 책을 쓸 때 유용하게 사용한다. 수천 명의 전화번호도 항목별로 잘 정리한다. 그는 참여연대를 떠난 후에도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등에서 또 다른 성과를 이뤄냈다. 이 단체의 운동은 기존의 참여연대와 같은 권력 감시형 운동과는 다른, 나눔·공유·사회적 경제운동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시민단체를 탐방하면서 마을 만들기, 풀뿌리 주민운동,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에 주목했고, 이와 관련한 책도 내면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 과거 시민사회운동에서 자신이 체험했던 것을 시정을 통해 실현하는 지점에 와 있다. 과거 토건경제 중심의 서울시정에서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열린 행정 중심의 포스트-토건경제형 시정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서울 교육도시 플랜'을 발표했는데, 교육을 지자체의 중요한 행정 영역으로 설정하고 받아들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박 시장의 시정은 일종의 생활 정치형이 아닌가 한다. 기존의 정치중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그가 하는 포스트-토건경제형 사회경제적 시정은 시장의 공습에 맞서 연대성에 기초한 자기 보호의 노력 하나이고, 시장경제의 가혹성을 보완해주는 새로운 돌파구 중 하나다. 나아가 기존의 기업중심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관계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 '분노한 대중'에서 '무기력한 개인'으로 분화한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일가족 자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사회를 향해 던졌던 분노가 스스로에 대한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복지국가란 가장 미천한 자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 보듬어 안는 완충지대가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복지 공무원, 학생도, 노인도 자살하는 나라다. 청년자살률과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스스로를 유지해주는 지원 장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것은 자살이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사회적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조건을 응시하고 사회적 문제로 설정,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개인이 자살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조건에 체념하지 말고, '무기력한 에너지'를 '분노의 에너지'로 또 '개혁의 에너지'로 바꿨으면 좋겠다. 현재 대한민국을 있게 한 힘은 대중의 역동적 에너지의 발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도했다고 하는 한국의 압축적 산업화 과정도 크게 보면 대중들이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에너지, 즉 잘 살고자 하는 에너지, 근면의 에너지가 촉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민주화도 독재를 넘어서 민주적인 체제를 만들고자 하는 대중들의 정치적 에너지가 촉발해 거대한 사회적 힘으로 발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살은 사회 에너지가 죽는 과정이다. 이것은 우리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업화나 민주화 과정에는 ‘내가 투쟁하고 싸우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최소한 우리 사회의 일정 개인이나 집단이 절망으로 가지 않도록, 자신의 에너지를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 더불어 사회 일각에서 가파른 보수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에서 저명인사가 거리낌 없이 여성의 권리를 제한해야 하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여성 혐오 현상도 심해졌다. 특히 2030세대에서 그 증가가 두드러진다.
2030세대의 과격한 보수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 간 경쟁관계에서 나타난 적대성이 타자와 약자를 향해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회적 울분을 여성이나 약자에게 가학적으로 표출하는 양상이다. 결코 건강한 상황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비정상적인 교육 결과물일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형성하고 스스로 건강한 사회적 판단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초중등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초중등 교육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무조건 승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성으로 표현되는 교육이다. 공존의식, 동행, 동반, 협동과 같은 것을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미국 백인 아이들과 인디언 아이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주고 풀어오라고 하면, 백인 아이들은 혼자 골방에 앉아서 풀고 인디언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도란도란 모여 토론한다고 한다. 어려운 문제를 함께 푸는 인디언의 전통을 배워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경쟁과열 과정에서 협동을 잃어버리고, 우의(友誼)를 잃어버렸다. 2030세대의 보수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잉여'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청년이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것 자체가 사회의 문제이고, 후진성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행복한 사회,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 청년이 출세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처세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리고 최소한의 '쉼'을 갖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 청년들에게 "현실 문제에 눈 감지 말고, 개인적으로 적응하지 말고, 열정을 갖고, 희망을 갖고 분노하자!"라고 말하고 싶다.
- 조희연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한 평등과 만나는 무한 자유이다. 자유란 살아가는 데 있어 자기 결정권을 갖느냐의 문제이다. 독재시대에는 독재의 탄압이 자기 결정권을 제압했는데, 이것을 투쟁으로 극복하고 정치적 자기 결정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개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제한하고 침식하고 있다. 자기 자녀와 동반 자살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주의도 자유라는 가치와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이렇듯 자유는 진정한 가치이고, 자유를 온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시민운동이고 사회운동이고 개혁운동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승자를 향한 개인의 이기적 욕망만이 극대화한 상황이 됐다. 이 상황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면서 인간의 이타적인 가치와 결합하고, 그걸 통해서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적 삶을 실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고 목표다.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김예리 비례대표제청년포럼 부위원장이 진행했으며, 한림대 정치경영연구소 손어진 선임연구원과 조경일 연구원이 정리했습니다.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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