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하는 시민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생부터 양복을 입은 직장인,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까지. 사람들은 분향소 앞에 하얀 국화를 놓고, 추모 리본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적고 또 한없이 울었다.
30일 오후 7시께. 분향소에 헌화하려는 줄이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닿았다. 서울시청에는 노란 리본 그림과 함께 "미안합니다"라고 적힌 입간판이 있었다. 시청에는 미안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았다.
이날 장희정(41) 씨는 중학교 1학년 딸아이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묶었다. 두 아이 모두 학원에 다니는데 오늘은 안 보냈다고 했다. 장 씨는 "학원이 중요한 게 아니고,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왔다"고 말했다.
장 씨는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가슴은 아파도 이렇게까지 절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하고 뭔가 못한 것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시청 한편에 추모 글을 적도록 놓인 종이에 "형아 누나들 꼭 살아 돌아와요. 그곳은 많이 춥죠? 꼭 돌아오세요"라고 적었다. 아들이 장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자신을 직장인이라고 밝힌 한 남성(25)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였음에도 수많은 희생을 치른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아픔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펜을 바로 쥔 그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30대 남성은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쓴 뒤 그 글씨 위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울기만 하다 갔다.
고등학교 3학년인 박한주(18) 양은 교복을 입고 친구들 4명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박 양은 "작년에 수학여행에 다녀와서 그 부푼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안다"며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는데, 수학여행 가는 첫날에 사고가 나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양은 "TV를 보니 예전에도 이런 사건들이 계속 반복됐는데, 또 이런 사건이 생긴 게 안타깝다"며 "나라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정자연(20) 씨는 "안산에서 20년 살았다가 작년에 서울로 이사 왔다"며 "알고 보니 (희생자들이) 친구의 동생이거나 동생의 친구였다"고 말했다. 정 씨는 "오며 가며 봤을 친구들인데 함께하지 못하고,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바라만 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날 2시께부터 홍대, 명동 등에서 "가만히 있으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침묵 행진을 했다. 정 씨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살아와서 이렇게 됐다"며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맞는 말인지 의문이어서 행진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 관련 기사 : "이 나라 참사 전통 중 달라진 건 정부 태도 뿐")
추모를 마치고 난 그는 "아이들이 남은 사람에게 가르쳐준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로 분노나 화가 아닌 사랑을 배웠으면 한다"고 했다.
이병욱(56) 씨는 "그냥 미안하단 말밖에 쓸 말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부패사슬들이 이 사건의 주범"이라며 "물신주의, 성공주의에 매몰돼 정의와 정직함을 본보이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께에는 서울광장 옆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세월호 참사 15일째를 맞는 촛불집회가 조용히 열렸다. 시민 300여 명이 촛불을 들었다.
28개 시민단체가 모여 행사를 개최한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이하 원탁회의)는 "우리는 비탄과 분노를 넘어 부끄럽고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부와 대통령은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원탁회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나라를 위해 슬픔을 넘어 행동으로 어른들의 책임을 다하려 한다"며 "오는 5월 3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5월 10일 10만 서울시민 촛불로 시민이 나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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