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라는 유족들의 절규가 청와대를 향했다. '생환자 0명'이란 정부의 무능에 분노한 여론이 끓어올랐다. 급기야 굳건하던 지지율 과반이 붕괴됐다.
무너진 지지율이 불안해서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추가 사과'를 예고했다. "대안을 갖고 앞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도리"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세월호 침몰 참사 14일째 나온 '착석 사과' 이후 사흘 만의 언급이다.
'변명 아닌 변명'도 여지없이 길었다. 박 대통령은 "한 사람이라도 더 실종자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또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고, 대안을 갖고 앞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결국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의 '대국민 사과'가 '사과'가 아니었음을, 박 대통령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유족들의 반발에 밀려 나온 '사과 예고 발언'에서도, 대통령 자신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번엔 종교인 열 명을 앞에 두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유언비어와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짐으로써 국민과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주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게 돼 정말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일은 국민이나 국가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이번 사고를 수습하면서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해 절감했다"며 '정부의 무능'을 재차 탓했다. 이 와중에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의식, '내 탓'은 여전히 없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의 발언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내용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사과를 단계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나. 그런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사람은 또 누가 있나"(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라는 반문도 나온다.
유족에게 '유감' 표한 靑…역효과만 낳은 '사과 아닌 사과'
대통령은 "너무나 많은 유언비어"가 유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며 나무랐지만, 세월호 침몰 이후 보름 남짓의 시간 동안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은 정부 스스로이기도 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대통령의 사과를 안 받아준 유족에게 '유감'을 표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민경욱 대변인의 개인 생각'이라고 서둘러 수습에 나섰지만, 한참 늦어버린 '뒷북' 사과도 모자라 역효과만 낳았다.
여기에 민 대변인은 재차 대국민 입장 발표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기와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얼마 뒤 "어제 사과가 나온 마당에 대변인이 다음 사과가 어떻게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말을 바꿨다.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 관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허둥지둥하고 있는 청와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1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거듭 들고나왔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서, 여전히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네 차례 사과 모두 '참모 앞에서'…'본인 책임' 없고 '남 탓' 일관
'남 탓'과 '뒷북'이란 수식어로 요약되는 박 대통령 특유의 사과 화법 역시 여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정부 대응의 문제점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원인을 "과거로부터 쌓여온 적폐"라고 지목했다.
비단 이번 참사뿐만이 아니다. '원전 마피아' 문제가 불거질 때에도, 철도 민영화 문제로 철도노동자들이 장기간 파업을 벌일 때에도, 심지어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로 '부정 선거' 논란이 일 때에도 박 대통령은 일관성 있게 '과거 정부 탓'을 했다.
취임 이후 총 네 차례 사과했지만, 사과의 내용에 '자신'은 없고 과거 정부나 공직자의 무능을 힐난하는 '남 탓'만 있었던 것 역시 꾸준히 논란을 낳았다.
여기에 네 차례 모두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 등 참모들을 앞에 놓고 모두 발언 식으로 이뤄진 '간접 사과' 형식이었고, 이마저도 최대한 시일을 끌다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마지막 순간에 입장을 표명하는 식이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폭력 사건과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때에도 각각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과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힐난했을 뿐, 숱한 반대를 무시하고 윤 전 대변인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나 남재준 원장을 끝까지 싸고 돌았던 본인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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