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다, 이게 나라인가"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재난 대응 태세를 한탄하면서 어느 일간 신문의 사설이 내건 제목이다. 또 다른 일간 신문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반영한 국가적 대형 참사라고 대서특필하였다. 이런 가운데 세월호 참사에 연루된 업계 비리가 주요 언론 매체를 온통 도배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원성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정부를 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신들을 믿을 수 없다"며 청와대로 행진하다가 경찰이 저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가 과연 국민을 위해서 제대로 일을 하는가에 대하여 심각한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
정부는 진정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가? 사실 이 질문은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약 반세기 전, 정확하게 말해서 1957년 앤서니 다운스(Anthony Downs)라는 학자가 책 <민주주의에 대한 경제이론>이라는, 당시로써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여러 가지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의 하나는 정치가와 관료들의 의식과 태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정치인과 관료가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며 공익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공직자들을 공복(公僕)이라고 부르며, 정치가나 관료를 공인이라고 말한다. 정통 경제학자들도 은연중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정부를 "자비로운 독재자"라고 보았다. 한때 전 세계를 풍미하였던 케인스이론도 정부가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존재라는 묵시적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보통 일반인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 노인들이 특히 더 그렇다. 이들은 정부에 대하여 쓴소리 하는 사람들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정부가 어련히 다 알아서 할 터인데 왜들 저러느냐며 푸념한다. 박근혜 정부가 선거 공약을 밥 먹듯이 어겨도 이들은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앤서니 다운스는 이런 생각을 단연 거부하였다. 그러고는 시장에서의 소비자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치가와 관료들 역시 사리사욕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지만, 이른바 신정치경제학(혹은 공공선택이론) 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적극 받아들였다. 통상 사람들이 시장에서는 사익을 추구하고 공적인 장소에서는 공익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때와 장소에 맞추어 그렇게 '마음속의 기어'를 척척 바꿀 것인지에 대하여 신정치경제학자들은 극히 회의적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도 모두 기어 바꾸기를 귀찮아하면서 저마다 자동변속기 자동차를 끌고 다니지 않는가. 요컨대, 정치가나 관료들도 장바닥에서의 소비자나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공익이 아니라,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활동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정치경제학 학자들의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정경유착이니 부처 이기주의니 하는 말들이 이미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 있지 않은가. 재작년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정치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거의 80%가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욕만 채우는 사람"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분쟁만 일삼는 사람"이라고 답하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많은 우리 국민들이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치가와 관료에 관한 신정치경제학 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정치가와 관료가 국민의 이익을 저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윤을 추구하는 업계와 밀착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사건은 그런 흔적들을 너무나 많이 그리고 여실히 보이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화가 잔뜩 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에 연루된 업계 그리고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만을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기세로 보아서는 업계의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관련 부처 장·차관들이 문책성 경질을 당할 것 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해소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밑바탕에는 고질적인 정부의 무사안일주의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 매체에 나타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진정 국민을 위한 봉사 정신으로 나랏일에 임해왔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사건을 애당초 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왜 공직자의 비리와 정경유착이 이토록 끈질기게 계속되는가? 앤서니 다운스가 또 하나의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쉽게 말하면, 많은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통, 무식하다고 말하면 어리석거나 멍청함을 힐난하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에 관한 한 무식하다는 말은 그런 비하의 뜻을 담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앤서니 다운스에 의하면, 정치에 관해서는 무식한 것이 합리적이다. 달리 말하면, 합리적이기 때문에 무식해진다는 것이다. 신성한 투표권을 현명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 현실을 잘 파악하고 후보자들의 됨됨이와 그들의 공약에 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누가 상을 주거나 박수를 쳐주지도 않는다. 공연히 시간과 정력만 낭비할 뿐이다. 요컨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봐야 개인에게 별 이익이 없다.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정치와 정치가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말고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정치학에 나오는 유명한 "합리적 무지 가설"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으로 행동한답시고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식하면 어떻게 되는가? 개인들의 합리적인 행동들이 모여서 우리를 모두 망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핵심은 국민이 정치가와 관료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표로써 응징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식하면 정치가와 관료를 감시할 수도, 응징할 수도 없다. 앤서니 다운스가 말하듯이 정치가와 관료는 자신들의 사익추구 동기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고 여기에서 정경유착이 무럭무럭 자라며, 세월호 참사 같은 대사건이 터진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는 근원적인 처방은 우리 국민이 정치에 관하여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정치권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필요할 때 단호하게 응징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염원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우리 국민이 거듭났음을 표로써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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