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 결과를 놓고 이러저러한 분석과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권력기관 인사가 소폭에 그치면서 예상과 달리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 인선 결과는 사실 놀랍거나 예상 밖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의원 선거를 놓고 정부가 그릇된 대북소식통의 보도에 흔들려 박봉주, 김영남 등의 원로들이 퇴진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 사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임기 5년이 만료되어 새롭게 13기 대의원을 구성한다는 것 말고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 엘리트 동향과 관련해 그리 주목할 만한 것이 애초에 아니었다.
이미 김정은 체제의 권력 지도는 김정일 사망 이후 2012년 4월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대강의 윤곽이 그려졌다. 그때 권력승계가 마무리되었고 후계체제는 새로운 수령의 유일영도체계로 전환되었다. 이후 김정은 체제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독자적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당·정·군에서 엘리트 교체를 진행해 나갔다.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과 군부 인사의 세대교체가 진행되었고 2013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최영림 총리 해임과 박봉주 총리 등용이 이루어졌고 급기야 2013년 12월엔 장성택 행정부장의 전격 숙청이 마무리되었다.
즉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는 2012년 4월 첫 모습을 드러낸 뒤 군부와 내각 그리고 당에 대한 장악과정을 거쳐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13기 1차 최고인민회의는 놀랄 만한 새로운 권력지도의 변화가 예견되는 게 아니라 이미 진행된 김정은 체제의 권력지도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새로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했다고 마치 김정은 체제의 권력엘리트의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일부의 전망이 처음부터 부질없는 것이었던 셈이다.
또한 김정은 체제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당적 영도의 정상화에 있음을 감안하면 이번 최고인민회의 인선 내용은 사실 그 직전에 개최된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와 정치국 회의에서 이미 결정되었고 향후 북한 권력지도의 변화는 최고인민회의가 아니라 당 기구의 회의 결과를 주목해야 함도 지적되어야 한다. 최고인민회의의 정치적 결정 기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김정은 체제는 후계시절부터 노동당의 영도적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과 함께 진행되었다. 공식 후계자의 등장도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이뤄졌고 김정일 사망 이후 권력승계의 마무리도 2012년 4월 당대표자회를 통해 진행되었다. 그때마다 최고인민회의는 당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데 그쳤다. 2012년 9월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된다는 보도를 놓고 일부 언론과 전문가가 대대적인 개혁방침을 내놓을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결과는 의무교육 12년제 연장법안의 통과였다. 아직 우리 내부 일각에서 최고인민회의의 정치적 비중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번 13기 1차 회의를 놓고도 최고인민회의가 새로 구성된 만큼 대대적인 인적 교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이 역시 김정은 체제에서 최고인민회의의 정치적 기능을 과대평가한 오류를 반복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기왕에 마무리된 김정은 체제의 권력 시스템을 재확인하고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임기가 만료된 12기 대신 13기 대의원을 새로 선출했다는 형식적 이유 말고는 이번 13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 그리 대단한 정치적 의미와 결정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었던 셈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과를 포함해서 지금 김정은 체제는 권력 승계 이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안정화되고 있고 동시에 대내외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짧은 후계기간과 젊은 지도자라는 약점 때문에 리더십 장악이 불안할 것이라는 애초의 예상과 달리 김정은 체제는 2012년 권력승계 이후 나름대로 확고한 권력 장악과 함께 대내외적인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권력승계를 마무리하자마자 2012년 4월 실패했던 인공위성 발사를 재시도하고 결국은 2012년 12월 궤도진입에 성공시킴으로써 이른바 장거리투발수단 확보에 한 걸음 다가섰다. 곧이어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핵무기와 인공위성 기술을 갖게 됨으로써 김정은은 일단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억지해낼 수 있는 안보능력을 확보했다고 스스로 판단하게 되었다.
또한 어린 지도자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기라도 하듯이 리영호 해임과 군부 숙청, 박봉주 총리 등용과 상(相)급 세대교체 단행, 장성택 숙청과 노동당 전면 쇄신을 단행함으로써 당·정·군 전 영역에서 아버지 김정일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김정은의 독자적인 리더십 장악에 나섰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된 김정은 판 권력지도의 사후 추인에 불과했다.
또한 김정은 체제는 안보능력 확보와 권력 장악 성공에 이어 대내적으로 6.28 방침과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장기적인 경제발전전략에 나섰다. 박봉주 등용과 6.28 방침을 통해 7.1 조치를 계승하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범실시하고 경제개발구법 통과 및 1개 특구와 13개 경제개발구 지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대외개방과 외자 유치를 선언하고 나섰다. 2013년 3월 당중앙위에서 채택한 병진노선은 이제 핵무기 확보를 통해 안전보장을 위한 억지력을 가진 만큼 ‘추가로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을 높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하게 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사실상 병진노선은 1960년대의 경제국방 병진노선이나 2000년대 선군경제노선과는 질적으로 다른 선(先)경제 노선의 논리구조인 셈이었다.
안보위협에 대한 대미 억지력 확보, 장성택 처형으로 확고한 권력장악 완료, 경제우선의 병진노선 등으로 이미 김정은 체제는 그들 나름의 체제 유지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최근 북한의 식량난 완화와 경제사정 호전 등의 실제 상황은 그러한 자신감을 더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대내외 전략 구사와 정책 방향은 이같은 자신감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릇된 대북정책을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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