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부터 어두침침한 복도를 따라가니 모퉁이께 3.3제곱미터(1평) 남짓한 방이 나왔다. 대낮인데도 불을 켜기 전까지는 껌껌했다. 공기가 탁했고 창문은 없었다. 침대와 책상 겸 옷장이 가구의 전부였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김영(22) 씨가 사는 고시원이다.
바닥에 놓인 여행용 캐리어로 방은 꽉 찼다. 사진을 찍으려다 캐리어에 발이 걸렸다.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당황했다. 황급히 사진을 찍으니 이번에는 옆방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시끄럽다고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더는 민폐를 끼칠 수 없어 쫓기듯 나왔다.
"가격 대비 만족하고 있어요."
밖에 나왔을 때 김 씨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홍대와 신촌 인근에서 고시원 5군데를 돌아다니다가 가격에 좌절하고 어렵게 지금 사는 곳을 구했다. 19만 원짜리 방을 얻었다고 좋아했던 그였다. 그는 앞으로 4년간은 계속 고시원에서 살 계획이다.
김 씨는 대학 신입생이다. 등록금을 벌려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 3년 동안 포도 농장, 공사장, 캥거루 고기 가공 공장 등에서 일했다. 호주에서 악착같이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로 쓸 돈을 모아 올해 서울에 왔다.
호주의 주거 환경과 서울을 비교하면 어떤지 물었다. 호주는 1인 주택 형태이고, 집에 앞마당에 뒷마당까지 있어서 여유롭다고 했다. 월세가 비싼데 사람값은 더 비싸서 감당할 만 하다고 했다. 지난해 호주의 최저임금이 15.96호주달러(1만5600원)였다. 그는 시급 2만 원을 받았다. 반면 한국은 최저 가계 소득 대비 월세가 부담된다고 했다.
서울에 와서도 김 씨는 시급 6000원을 받으며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에 고시원에 들어가서 자려고 누우면 가끔은 "벽이 몸을 조여오고 천장이 내려오는 착각이 든다"고 했다.
"여기 사는 사람 중에 정규직은 없어요"
이대호(가명·22) 씨는 26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공동 주거'를 택했다. 월세 80만 원인 방 3칸짜리 집에서 7명이 함께 산다. 59.5제곱미터(18평)에 거실이 있는 지층 같은 반지하 집이었다. 7명이 살기에는 좁아보였지만, 고시원보다는 나아보였다.
이 씨는 가난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홀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이 씨는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일을 구하면 어머니가 수급권에서 탈락할까 봐" 일용직을 전전했다.
"여기 사는 사람 중에 정규직은 없어요. 프리랜서, 알바, 일용직, 시간제 일자리까지 다 비정규직이에요. 개인 생활을 포기하면 한 달에 10만 원을 아끼고 살 수 있어서 저도 고시원을 가는 대신 공동 생활로 타협한 거죠."
이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방을 가진 적이 없다. 그는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고 했다. "환기 잘 되고 빛도 들어오는 방. 돈 없으면 그게 안 돼요."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주택은 "대학생만 되는 줄 알아서" 아예 지원할 생각도 못 했다. 그는 대학생이 아니다.
이 씨에게는 '환기 잘 되고 빛도 들어오는 방'은 사치라고 했다. 그는 "집을 위해 노력하면 내 인생을 바쳐야 할 것 같고. 마흔 살까지 모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떠밀려 살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지나가듯 했다. 집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떠밀려 사는 것 같았다.
청년 주거 빈곤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민달팽이 유니온이 인구주택총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청년 주거 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전국의 20~35세 청년 가운데 23.6%인 28만1000명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에 사는 주거 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인구 주거 빈곤율인 13.6%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서울에 혼자 사는 20~34세 청년의 주거 빈곤율은 36.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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