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다. 3월 22일 첫 방송된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여자 직장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내 앞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그 직장 동료와 30분 넘게 통화하는 남친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라는 사연을 놓고 패널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은 흡사 JTBC <마녀사냥>의 2부 코너인 ‘그린라이트를 꺼줘’를 보는 것 같다. 홍진영과 홍진호,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의 조합은 지난 2월 종영한 tvN <김지윤의 달콤한 19>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는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코너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다. <마녀사냥> 열풍으로 일반인들의 연애를 상담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을 앞두고 있고, 가요계에서도 소유와 정기고의 ‘썸’을 비롯해 연인들이 ‘밀당’하는 내용의 노래들이 넘쳐난다. 이휘재가 진행할 예정인, 일반인 커플 세 쌍이 30일 동안 연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파일럿 프로그램 <두근두근 로맨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 거대한 홍수 속에서 트렌드를 좇는 자체를 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 틈새 공략을 한다면 재미와 시청률 모두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존재감 없이 홍수에 떠밀려 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아직 방송 초반이라 성급하게 결론내릴 순 없지만, <로맨스가 더 필요해>의 출발은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단 패널 수가 너무 많다. MC 박지윤과 전현무를 비롯, 중년을 대표하는 라미란과 이창훈, 젊은 층을 대변하는 홍진호, 홍진영, 조세호, 레이디 제인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라 불리는 김지윤 소장과 SNS 전문가 등 출연자만 10명에 이른다.
이창훈의 ‘왕년’의 경험담을 토대로 사연에 나타난 문제점을 진단하는 동안, 홍진영과 홍진호는 러브라인을, 조세호와 레이디 제인은 앙숙 관계 구도를 형성한다. 그 사이에서 박지윤과 전현무는 제대로 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패널들에 휩쓸려 토크쇼를 산만하게 만든다. 마치 두 개의 <라디오 스타>를 동시에 보는 느낌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카톡 메시지를 분석하는 SNS 대화 전문가의 등장이다. 메시지를 보낸 시간, 상대방이 답장을 보내는 간격, 그 답장의 내용을 지나치게 치밀하게 분석한 나머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다. 물론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A가 B에게 보낸 메시지를 놓고 호감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문가라는 사람의 입을 빌어 진지한 분석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이 역시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녀사냥>의 신동엽, 허지웅, 성시경, 샘 해밍턴이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들을 내놓긴 했지만, 그 때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말이 절대 정답은 아니다”라며 과한 의미부여를 경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코너의 구성도 문제가 많다. 패널들이 느닷없이 지인들에게 ‘야옹’, ‘사랑해’ 같은 메시지를 보내 어떤 답장이 오는지 테스트하는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미삼아 시도해왔던 게임이다. 일반인들의 연애 사연을 상담하는 ‘연애잇수다’, 남녀가 주고받은 메시지를 해석해주고 패널들끼리 가상으로 실험해보는 ‘썸톡’,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하는 ‘결혼해도 될까요’ 등 <로맨스가 더 필요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려는 욕심이 지나치다.
물론 첫 방송이니만큼 다양한 코너를 시도해본 뒤 반응이 좋은 코너를 선별해내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모든 코너들을 안고 갈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제작진들은 무엇이 더 필요한지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더 빼야 재밌을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마녀사냥>이 재밌는 건, ‘남자들의 여자 이야기’에 집중한 토크쇼이기 때문이지 단순히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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