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도 않은 청와대와 언론의 갈등상이 최근 더욱 격화되고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3일 '기자적 자존심을 갖고 글을 쓰십시오 - 정부비방의 단순 반복행위 부끄럽지 않습니까?'라는 글을 청와대브리핑에 게재했다.
특히 홍보수석실은 이 글에서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의 이름을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홍보수석실은 "얄팍한 글재주로 먹고 사는 게 동아일보 기자냐"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가 청와대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자 글의 일부를 삭제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주나 간부에 코드 맞춰도 글은 똑바로 써라"
홍보수석실은 당초 "직업적 전문성은커녕 오로지 얄팍한 글재주 하나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동아일보 기자인지도 모르겠다"며 "특히 이 신문의 정치부 기자라면 그 업이 더욱 쉬워 보인다"고 글을 시작했다.
하지만 특히 이 부분이 물의를 빚자 약 세 시간 만에 문제 부분이 삭제됐다. 홍보수석실 내 대표적 매파로 분류되는 한 비서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글에 대해 홍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이 정도의 글이 올라오는 줄은 몰랐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홍보수석실은 청와대브리핑의 글에서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가 23일자 신문에 쓴 기사를 지목하며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비방을 위한 비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이 기사는 '청와대와 내각이 정책방향을 맞추며 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코드 맞추기이므로 잘못된 것'이라는 희한한 전제를 깔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보수석실은 "이 신문은 청와대와 과거 여당, 청와대와 내각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어김없이 '당정 엇박자' '국정 혼란' '당정청 불협화음'이라며 비판했다"며 "어떨 땐 한 목소리 낸다며 때리고 어떨 땐 한 목소리 못 낸다고 때리니 대체 어쩌라는 말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보수석실은 "듣는 사람이야 헷갈리지만 쓰는 사람이야 반노무현 외길이니, 이렇게 쉽고 무책임하게 기사 쓰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보수석실은 "세련되고 건강한 비판이 아쉽다. 부디 기자적 자존심을 갖고 글을 쓰기 바란다"며 "회사 안에서야 사주에게든 간부에게든 코드 맞추는 일을 해도 좋지만 글은 이름이 남지 않습니까?"라는 직설적 비난으로 글을 마무리 지었다.
발단은 이건희 삼성회장
동아일보와 청와대의 이같은 공방의 발단은 사실 삼성 이건희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이 얼마 전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안 차리면 5∼6년 뒤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한 마디 하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위기론'에 관한 기사가 넘쳐 흘렀다.
그 뒤 청와대브리핑에서 '재벌 회장이 한마디 하자 호들갑을 떤다'고 언론을 비판했고 은근히 '경제위기론'에 동참했던 일부 보수적 경제관료들이 다시 청와대와 호흡을 맞추며 돌아선 것.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제지의 한 기자는 "이건희 회장이 한 마디 하자 호들갑을 먼저 떨다가 관료들에게까지 '코드' 혐의를 씌운 보수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많다"면서도 "청와대의 이같은 인신공격식 대응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으로 실명비판' 나선 홍보수석실
현 정부의 대언론전선 최전방에 서있는 홍보수석실은 지난 해 12월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중도적인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를 향해 '하이에나 행태'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당시 '하이에나' 글을 작성한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 홍보수석실 내 '매파'에 대한 청와대 내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 뒤 윤승용 홍보수석이 취임하면서 한동안 유화 국면이 유지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시 난타전으로 돌아선 것.
그러나 막상 '실명비판'에 나선 홍보수석실이 이 글의 작성자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익명으로 실명비판'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또한 인격모독성 글을 청와대브리핑에 버젓이 게재했다가 별 설명도 없이 삭제하는 절차가 더해져 구설수를 자초하고 있다.
전체댓글 0